딸기네 책방

시장의 진실

딸기21 2008. 12.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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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진실 : 왜 일부 국가만 부유하고 나머지 국가는 가난한가

존 케이 저/홍기훈 역 | 에코리브르 | 원서 : Culture And Prosperity



신뽀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중구난방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서 좀 지루했다. 그러다가 중반부 지나가면서 논지가 비교적 명확해지고 재미도 더해갔다. 


요는, 경제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시장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완전경쟁시장’을 중심에 놓고 무조건 시장만 옳고 정부 개입은 나쁘다 했던 (밀턴 프리드먼식) 경제학계 주류의 생각이 잘못됐었다는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제학’ ‘금융자본주의’ ‘통화주의와 시카고학파’가 지탄받는 세상이 된 지금은,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의 주장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한국 정부여당 등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저따위 논리가 반성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금융위기 전에 쓰인 것인데, 왜 완전경쟁-시장제일주의가 현실을 해석하고 개선하는데 착오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은 작동하지만 향상 그리고 완벽하게 운영되지는 않는다. 다원주의적 시장구조는 혁신을 중진하고, 경쟁적인 시장은 소비지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만, 시장의 결과가 효율적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포괄적인 근거는 없다. 사회적·경제적 제도들은 시장경제에서 정보의 교통을 관리한다. 이 제도들은 문화와 가치, 법과 역사에 의존한다.” (422쪽) 


책의 원제는 ‘문화와 번영’이다. 저자는 경제적 번영은 총체적인 사회 제도에 달려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시장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제도의 일부분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측면에서 저자는 시장을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 부른다. 시장이 제도 안에 ‘임베디드’ 되어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기술적인 이식(移植)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낙후된 경제권을 번영으로 이끌 수 없다. 이것이 ‘빈국을 부국으로 바꾸기 위한 선진국들의 이식작업’이 실패한 이유다. 


“생산성은 단순히 자본과 기술 기용성의 결과가 아니며, 또한 개개 노동자들의 숙련도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현시대에서 기술은 어디서나 개발될 수 있고, 지본과 기술은 국가 간에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국가간) 경제적 차이는 생산성과 생활수준이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제도와 서로 교차하는 경제적 환경의 복잡한 산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경제생활은 그들이 속한 시스템의 산물이다. 이 책은 우리의 경제생활을 규정하는 제도들에 관한 것이다. 경제제도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정황의 일부로서만 기능한다. 이것이 내가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고 기술하는 것이다.” (43쪽) 


“부국들과 빈국들 간의 차이는 각각의 경제적 제도의 질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40년의 실망 후에 개발기관들은 이것을 인식했고, 채무국 정부에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방은 대개 너무 미약하다. 러시아에 제공된 것은 미국식 제도가 아니라 미국 비즈니스 모델의 비책이었다. 시장제도-소유권의 보장, 최소한의 정부의 경제적 개입, 규제완화-는 단순하고 보편적일 것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처방들이 이행된다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장에 관한 진실은 이보다는 더 복잡하다. 부국들은-글자 그대로-시민사회와 정치적·경제적 제도들이 수세기를 거쳐 이룬 공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공진화는 빈국에 이식할 수 없다.“ (440쪽) 


책의 전반부는 경제현상 전반을 간략하게(그러나 쉽지는 않다) 설명하면서 경제학의 맛을 보여준다. 중반부터는 프리드먼식 경제학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사회 제도의 ‘공진화’를 통해 시장이 번영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비판 대상은 통화주의/시장제일주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식 비즈니스 모델(ABM)’이 된다.


“ABM의 등장은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허용했다. 주식시장의 계속되는 상승은 금융서비스분야에서 매우 큰 이익을 창출했고,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은 자연적으로 자신의 급여와 월스트리트의 성과급을 비교하게 되었다.

ABM의 순 도구적 동기들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패배하게 된다. 이윤이 시장경제의 목적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은 그것에 대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즉, 목적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고 그 수단들을 이익이 나게 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만을 외곬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이윤이 많은 회사는 이윤 위주 회사가 아니다. 적응의 결과는 최대화의 결과와 비슷하나 최대화의 산물은 아니다.“ (425쪽)


요즘 유행(?)하는 ‘생물학적 경제학’이라고 봐야 하려나, 진화론-적응(옮긴이가 앞에서는 ‘적응’이라 해놓고 뒤에서는 ‘순응’‘순응적’이라고 번역해 헷갈리게 만드는데 ‘적응’이 맞을 듯) 개념을 중심으로 미국식 경제학을 비판한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물학의 고전적인 전제가 절반의 진실일 뿐인 것처럼, ‘인간은 이기적이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탐욕은 곧 선(善)이다’라는 개념들의 집합체인 미국식 경제학 역시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부분에서 도킨스식 이기주의-이타주의 개념과 경제학이 접목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합리성이 동기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예측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개인들이 이기적이 아니어도 이기적 행동이 이타심을 만들어낸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경쟁적인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한 기업이다. 이러한 주장은 프리드먼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을 결속시켜주지만, 둘 다 틀렸다. 이러한 주장은 행동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적응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성적 행동과 적응적 행동은 반드시 같지 않을 수도 있다.” (264쪽)


꽤 재미있는 경제학 개론서인데, 개론으로 보기엔 좀 문장이 꼬여 있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저자의 말투도 그리 문어체는 아닌 것 같고(이른바 비비꼰 ‘영국식 유머’들이 섞여 있다) 번역은 정말 꽝이다.



▷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는 현대 아프리카의 부패하고 자만심이 강한 정치인 중 예의범절과 고결성이 눈에 띄는 인물이다. 계획개발을 신봉한 사회주의자인 그는 21년간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그가 통치한 나라는 제l차 세계대전 시 독일에서 영국으로 넘어간 동부 아프리카의 탕가니카와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를 통합한 국가다.

공기관과 민간 원조자들은 낙후된 환경에서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고자 탄자니아에 엄청난 원조를 제공했다. 서방 자문관들은 다르에스살람에 호텔을 잔뜩 세웠다. 니에레레는 자국민 중에서는 인도 독립 당시 인도의 중앙계획을 관리했던 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결코 찾을 수 없었다. 탄자니아의 현재 1인당 GDP는 니에레레가 대통령이 되었던 해보다 더 낮다. 은퇴 뒤 니에레레는 자신의 생을 특징짓던 정직함과 소박함과 함께 자신과자신의 정책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 채 잊혀갔다. (345쪽)


▷ 영국과 프랑스는 탈식민화 과정을 질서 있게 추구했으나, 벨기에는 가방을 싸서 (대개는) 본국으로 가버렸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곧 4개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대부분의 광물자원은 카탕가 지역에 분포했고, 모이스 촘베(Moise Tshombe)라 불리는 서방의 꼭두각시가 명목상으로만 지배했다. 최초 수상인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는 서방 보안요원의 묵인 아래 살해되었다. 스웨덴 출신으로 당사 국제연합의 시무총장이었던 다그 함마르셀드(Dag Hammarskjold)는 콩고민주공화국의 평화 유지 임무 도중 의문스러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서방이 콩고민주공화국에 개입한 역사는 한마디로 수치스럽다. 서방 국가들은 공포적인 정부와 무장 반군을 지원하고, 범죄자들에게 정치인이라는 올가미를 주어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동기는 냉소적이고, 정책은 무익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무정부 상태였고, 광물생산은 붕괴했다. 국제기구와 민간은행을 통해 상당한 액수의 돈이 도적들에게 건네졌다. 세계은행이 20년 이상이나 모부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 (348쪽)


▷ 시장에 관한 진실

-경쟁시장은 매수자와 매도자 간에 정보의 큰 차이가 있을 때 실패한다. 거래는 대개 사회적 정황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처한 가장 중요한 위험들은 대개 시장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가정에서, 공동체 내에서, 그리고 정부에 의해 다루어진다. 증권시장은 사업의 여러 분야 간에 자본을 분배하고,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제도이기보다는 정교하고 전문적인 투기장으로 더 잘 설명된다.

-조정은 중앙집권적 지시보다는 자생적 질서의 기구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달생된다는 것이 보편적 사실이다. 그러나 자생적 질서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조정수단은 정부개입, 사회제도, 기업들 간의 합의의 산물이다.

-지식과 정보는 복잡한 현대경제의 주요 산물이다. 그것들은 수많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있는 경쟁시장에서는 생성될 수 없다. 발견의 희열과 인류에의 만족 같은 비유물론적 동기부여(열의)가 영리추구보다는 혁신에 더 중요한 자극제였다. (395쪽)


▷ 미국 비즈니스 모델(ABM)은 인간적 동기에 대한 순진한 접근, 재산권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분석, 불완전한 정보에서 효율 유지의 불가능성, 위험시장의 오해, 협력과 조정문제의 억지해석, 사회적 성공이 의존하는 신지식의 창출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 ABM의 마지막문제-소득과 부의 분배의 합법성-가 있다. ABM의 네 번째 전제는, 분배는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고유사안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396쪽)

만약 미국 비즈니스 모텔이 시장경제가 기능하는 방법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 경제는 어째서 그렇게 성공적인가? 해답은 이제 명백해야한다. 즉, ABM은 미국경제를 설명하지 않는다. (398쪽)


▷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은 19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는 정부와 기업들에선 계획경제의 전성기였다. 당시 가장 많이 얽힌 경제학자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로, 그의 문필적 재능은 케인스와 맞먹을 정도였다. 

1960년대에 대기업들은 수석 경제학자와 전운 직원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업무는 거시경제적 사건들과 산업경향을 예보하는 것이었으며, 가격 매기기, 산업 진화 혹은 시장 위치 같은 미시경제적 사안들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의 황금기는 급격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계획체제는 쇠퇴했다 1960년대부터 인플레이션이 가속환되고, 1973년 유류파동으로 악화되자 거시경제학에 대한 믿음이 감소되었다. 경제가 잘못 되어가자 정치인들은 경제학자들을 희생양으로 하는 농담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장 경향에 민감한 경제학자들은 응당 불신되었어야 할 케인스 경제학의 자리를 차지할 목적으로 보수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정책을 위해 단순하고 새로운 하나의 이론, 통화주의의 응원단으로서 자신들을 재발견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전문 경제학자가 되었다. 프리드먼과 게리 베커를 포함한 시카고 경제학자들은 인기 있는 신운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고, 경제학이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경제학자들은 경영정책이 아닌 공공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려던 기업가 집단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기업연구소(AEI),카토연구소(Cato Institute),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e) 같은 기관들이 그들에게 공공무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경제학자들-케네스 애로와 폴 새뮤얼슨을 포함한 신고전주의 전통의 지도자들을 포함해-은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 같이 대개 자유주의자들이다. (414쪽)


▷ IMF가 거시경제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세계은행은 제임스 울펀슨 총재와 스티글리츠 수석 경제학자의 지도 하에 빈곤 감소를 강조하는 중간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미국 재무부에 의해 세계은행에서 쫓겨났으나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힘입어 IMF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긴장이 폭발하게 되었다.

스티글리츠의 공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lMF 수석 경제학자인 켄 로고프(Ken Rogoff)의 반격으로 경제학적 지식과 경제정책 간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 개인들과 기관들 사이의 말다툼으로 축소되었다. 중심적 메시지-경제학은 전통적이고 정치적인 지혜에 시장 효율성과 미국 비즈니스 모델의 단순화를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一는 사라져버렸다. 스티글리츠는 그의 주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 하는 반세계화 활동가들에게 우상으로 받들렸다. (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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