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소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딸기21 2008. 12. 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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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버트 보콕 지음. 양건열 옮김. 시공사.



경제에 대한 책인 줄 알고 펴들었는데 프랑스 독일 철학자들 이름이랑 무슨 주의, 무슨 주의가 줄줄이 나오는 책이었다. 처음엔 지레 겁먹고 닫아버릴까 했는데 두께가 얇아서 그냥 읽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의외로 꽤 재미가 있었다. 결론은 허무했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지으며 노동에서의 소외가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라고 지적을 했는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소비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소비에서의 소외가 주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당연한 얘기 같기도 한데, 사실 이 책은 특별한 이론을 전개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소비를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분석하면서 정리해주고 있다. 욕망, 정체성, 소외, 상징 이런 것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읽어서 이해 못 할 내용은 없고, 뭐 딱히 새롭게 들리지도 않았다.

책에서 언급한 학자들 중에는 얼마 전 100세 생일을 맞은 레비-스트로스처럼 생존해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그의 주요 작업도 이미 오래전에 이뤄진 것이고, 마르쿠제니 부르디외니 라캉이니 하는 이들이 소비 문제를 다룬 것도 이미 시간이 좀 지나간 일이다.

특히 책의 전반부는 거의 2차대전 이후, 40~50년은 더 지나간 시대에 나온 분석들을 다루고 있다. 대량 소비가 ‘전지구적인 현상’이 된 1980년대 이후 글로벌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특별한 분석이 좀 덧붙여져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런 면에서, 맨 뒷부분에서 살짝 언급만 하고 지나간 ‘20세기 말의 몰 워커(mall walkers)’ 얘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재미난 연구들이 나와 줬으면 싶다.

저자가 언급한 소비에 대한 연구들은 환경/기후변화 담론이 지배적이 되기 전 시대의 것들이어서, 소비를 분석함에 있어서 환경/기후변화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식민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자본주의의 글로벌 착취구조는 오히려 고착화돼 직접적인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소비의 ‘도덕성’ 문제를 ‘가치중립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쉽다. 간단히 환경 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 폭탄을 난사하기 앞서서 상식 있는 소비자라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너무 탐욕스럽게 소비만 하다 보니 지구를 해치고 남의 것 빼앗으려 하는 것 아닌가, 양차 대전 등 전쟁이 사회를 압도했던 시기 전쟁에 나가있던 남성들이 ‘평화의 시기’를 맞아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 기존에 ‘소비=여성’으로 젠더화됐던 것을 뒤집었다는 분석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소비(그 바탕에 있는 무한 탐욕, 물질주의)가 약탈과 착취와 전쟁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에너지 낭비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석유전쟁들은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허구헌날 싸움질하는 사회들에서는 적어도 총질보다는 소비가 평화적인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며 “이걸 더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이론화할 필요가 있는 것은 소비가 세계 전체에서 계속 커지고 있고 소비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싱거운 소리를 한다.

소비를 열심히 분석하는 이유는, 그것이 저자의 말마따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를 일으키는 주요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요약한대로 ‘소비=상징의 소비’이고 ‘상징=욕망을 생산하는 장치’다. 이 소비는 애당초 실재하는 물체 자체가 아닌 상징 자체에 대한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쓰고 또 써도 욕망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무한 욕망과 무한 소비의 싸이클인 셈이다.

소비 대국은 잉여를 찾기 위해 점령의 길로 나가야 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소비를 보장하기 위해 세계의 패권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소비는, 지구를 망치고 글로벌 착취/약탈구조를 만든다. 동시에 소비는 그 자체로 특정 국가/지역의 문화/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메커니즘이 된다. 정작 소비는 착취 국가에서건 피착취국가에서건 모든 ‘소비자’들을 소외시켜버린다. 무한 소비의 싸움에서 승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밖에는 없다.

마르쿠제 들뢰즈 가타리 라캉 헤겔 부르디외 등등을 연구하는 게 “이 메커니즘을 알고 깨뜨리자”는 목적에서인지 그냥 심심해서 꼼꼼히 분석해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알고 깨뜨리자”는 쪽으로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알고 깨뜨리기 위한 대안으로는 여러 가지 반물질주의 생태주의적 아이디어들을 얘기할 수 있을텐데, 저자는 ‘왜 소비가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을 안 해본 모양이다.

소비의 사회심리학이니 정신분석학이니 하는 것을 우아하고 복잡하게 분석하다가(이 과정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연결된 종교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주요 종교가 대부분 친환경적이라고 누가 그래? 기독교 세계관의 반환경적 관점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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