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94

소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버트 보콕 지음. 양건열 옮김. 시공사. 경제에 대한 책인 줄 알고 펴들었는데 프랑스 독일 철학자들 이름이랑 무슨 주의, 무슨 주의가 줄줄이 나오는 책이었다. 처음엔 지레 겁먹고 닫아버릴까 했는데 두께가 얇아서 그냥 읽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의외로 꽤 재미가 있었다. 결론은 허무했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지으며 노동에서의 소외가 자본주의의 주된 문제라고 지적을 했는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소비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소비에서의 소외가 주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당연한 얘기 같기도 한데, 사실 이 책은 특별한 이론을 전개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소비를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분석하면서 정리해주고 ..

딸기네 책방 2008.12.03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재닛 아부-루고드. 박흥식, 이은정 옮김. 까치 읽어야겠다고 생각한지는 오래 됐다. 알라딘 보관함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망설였던 것은, 아주 흥미를 끄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너무 학술적이고 전문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렇게 마음의 짐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석 달 전 이 책을 주웠다. 거짓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웠다.’ 사무실에 누군가가 버려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냉큼 챙겨놓았지만 역시 책을 펴들기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정말 좋아하는 포맷에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 사실 올 해 나의 ‘독서성적’은 형편없다. 이런저런 일들과 신변의 변화로 바빠..

딸기네 책방 2008.11.30

다시 찾아간 '비밀의 정원'

[계림세계명작-3] 비밀의 정원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저/한상남 역/곽선영 그림 | 계림(계림북스) 아이에게 그림책을 약간 벗어난 아동소설을 사주고 싶어서 교보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이 시리즈로 ‘아라비안 나이트’를 사서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어, 이걸로 골랐습니다. 제게 ‘비밀의 정원’은 잊지 못할 책입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는 계몽사 50권짜리 동화집이 있었고 친구네 집에도 역시 계몽사 50권짜리 동화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전집의 버전이 달랐어요. 친구 것이 더 새거였지요. 친구 집 책에는 ‘비밀의 화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정말 어찌나 재밌었는지, 친구가 귀찮다고 놀러오지 말라는데 일요일까지 찾아가서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결국 다 읽었어요.도둑질하듯 읽었던 재미난 동화책. 소..

딸기네 책방 2008.11.10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옮김. 하늘연못 나는 기만에 찬 불신 행위를 잊게 하고, 양심의 발언을 압살하는, 기계. 나는 나에게 걸터앉은 자가 바라는 것보다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과격한 오토바이. 나는 어쩔 수 없는 심정에서 방랑길을 떠나는 자에게 어울리는, 파란 오토바이.논리에만 매달려 미래를 통찰하려고 하는 자. 시냇물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자. 읽다 만 책에 침을 흘리며 잠자는 자. 이부자리에서 빗소리를 듣는 데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 자. 무슨 일이 있어도 단정한 태도를 흩뜨리지 않고, 예의를 잃지 않는 자. 분을 잔뜩 칠한 음란한 여자한테 혼나고 싶어 하는 자. 명석한 두뇌와 진드기 같은 어머니 때문에 꼼짝 못하는 자. 그들 쪽도 그렇겠지만, 그..

딸기네 책방 2008.10.27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The Conscience of a Liberal폴 크루그먼 | 예상한 등 | 현대경제연구원books 10년은 된 것 같다. 뉴욕타임스에서 크루그먼의 컬럼들을 읽으면서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경제 혹은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도 전혀 없고 별로 생각 같은 것을 해본 일이 없어서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유명한 학자, 유명한 컬럼니스트라고 하니 이라는 책(뒤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을 하나 사서 읽어봤는데 지금은 아무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것 때문에 경제 문제에 억지로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큰 맘 먹고 라는 제목의 이 책을..

딸기네 책방 2008.10.22

털 없는 원숭이야, 겸손해져라

털 없는 원숭이 The Naked Ape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문예춘추사 이상하게 모리스하고는 크게 인연이 없었는데, 이 책은 정말 읽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꼼꼼이 책 읽는 동안 나도 뭐 하나 뒤적여봐야겠다, 하다가 어린이도서 근처에 있는 것이 하필 생물학 책이어서 이걸 손에 쥐게 됐다. 워낙 책 읽을 때 밑줄 쫙쫙 쳐가며 지저분하게 읽는지라 역시나 이 책에도 볼펜 줄을 그었다. 그러니 돈을 내는 수밖에. 여러 가지 번역으로 나와 있는데 모두 번역자가 쟁쟁하다(김석희, 김동광, 이충호). 나는 그 중에서 김석희 선생 번역으로 읽었다. 물론 번역은 깔끔했다. 문예춘추사에서 나온 것이어서 편집은 좀 구닥다리 같았지만. 저자는 현생 인류가 원숭이 종류에서 그저 조금 밖에 달라진 게 없다면서, 아마..

코튼 로드- 목화의 도시에서 발견한 세계화의 비밀

코튼 로드- 목화의 도시에서 발견한 세계화의 비밀.에릭 오르세나. 양영란 옮김. 황금가지 어찌나 멋을 냈는지 기름이 줄줄 흐른다. 프랑스 사람이 쓴 책이라서 그런가,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만큼이나 감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좋게 보면 별 다섯 개, 지겹다 오버한다 느끼면 별 2개. 말리에서 미국, 브라질, 이집트, 우즈베키스탄을 오가며 ‘목화의 길’을 따라 세계화를 짚어 가는데, 목화라는 작물을 통해서 본 세계화와 그 속에 얽혀 있는 사람들을 다룬다는 발상은 매우 좋았다. 다만 뜬금없는 상념들이 섞여 재미가 반감됐다. 그나마 현장성이 가미된 부분에서도 자기 자랑(난 이렇게 민감하며 지적이고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낌이 많이 났다. 세계화와 민영화 기타 등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여러 ..

딸기네 책방 2008.10.06

자히르

우리 꼼꼼이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독서토론 준비(헐~ 초딩 1학년이 웬 독서토론~)를 시키신다고 해서 도서실에 앉아 기다렸다. 시골분교처럼 조그만 학교이지만, 나름 도서실은 잘 되어있다. 책 구경하다가 파울로 코엘료의 를 발견했다. 코엘료 좋다, 싫다, 한심하다, 뭥미 하는 사람들 많지만 나는 를 엄청 재밌게 읽었다. 가슴 두근거리며... 난 책 읽던 중간에 어디론가 날아가서 사막을 달리게 되었다. 그 때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는 진부한 결론으로 가게되었지만. 자히르에 대한 설명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보르헤스의 이 생각났다. 나는 10여년 전 보르헤스를 접하고 나서 좀 헤맸다. 마음이 붕 떠서 몽환의 도서관들을 떠다녔었다. 다른 것도 다 그랬지만, 별..

딸기네 책방 2008.09.21

그레이트 게임- 머가 그레이트야 -_-

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저/정영목 역 | 사계절 | 원서 : The Great Game: On Secret Service in High Asia 사계절에서 나온 책치고는 편집이 그래도 그럴듯하다. 이 출판사의 책들은 아직도 ‘운동권 책’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혐의를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은 지도도 많고 중간에 사진도 있고... 원본이 충실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내 선입견을 좀 깨뜨려준 것은 사실이다. 옮긴이의 실력이야 정평이 나 있는 바이고. 중앙아시아, 오늘날로 따지면 아프가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인도 북부-파키스탄-중국 서부(얼마전 테러가 발생했던 신장위구르 지역)로 이어지는 지역들을 먹으려고 영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박 터지게 고심했던가를..

딸기네 책방 2008.09.17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 진의 새로운 역사에세이

권력을 이긴 사람들. 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하워드 진의 새로운 역사에세이. 문강형준 옮김. 난장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었다. 하워드 진의 책은 벌써 몇 권 째 읽지만 이번에도 역시 감동적이다. 역사에 대한 낙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 특히나 2MB 시대라는 황당무계한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들으라고 하는 얘기 같기도 하다. 노학자이자 실천가의 굽힘 없는 태도와 강건한 메시지는 항상 마음을 울린다. 이 울림이 나의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도, 군대의 지휘관도,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도 아니지만, 불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수많은 영웅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연방법에 저항해 경제 제재 아래에..

딸기네 책방 2008.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