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민주주의는 민중의 몫

딸기21 2008. 7. 29. 17:52

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 45년 투쟁의 역사

버틸 린트너 저/이희영 역 | 아시아네트워크




현대 버마의 역사와 반식민 투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 등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 정도로 보면 되겠다. 


아웅산 수찌라는 인물의 ‘신화’에 도전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것 같은데, 딱히 수찌가 ‘이래서 문제다’ 라고 할만한 부분은 안 보인다. 수찌가 오랫동안 정치활동이 금지된 채 집 안에만 갇혀 있다보니 정치적 역량을 키울 기회를 못 가진 데다 외돌토리처럼 개인 수양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걸 수찌가 모자라기 때문 혹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보긴 힘들 것 같다. 말 그대로 상황이 그러한 걸 어떡하란 말인가. 그것은 수찌의 잘못이 아니라 군부 정권의 잘못이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아무튼 수찌가 자칫 버마 민주화 운동의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벽’ 정도?)가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버마에 한번 가보지도 않은 나는, 그렇다고 수찌가 없는 편이 나은지, 지금이 수찌를 비판해야 할 시점인지를 잘 모르겠다. 버마 민주화운동가 마웅저씨 만났을 때에도 ‘수찌라는 인물의 한계’에 대해 물어봤는데, 버마 사람들도 그런 것은 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수찌가 수퍼우먼이 되어 버마의 ‘민주화 이후’까지 책임져줄 거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거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저 수찌는 민주화를 상징하는 ‘구심점’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구심점이 있는 편이 물론 없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아직은 버마에서 ‘민주화 이후’를 생각하기엔 이른 것 같다. 버마인들이 얘기하는 8888항쟁도 올해로 20주년이 되었지만 탄슈웨 독재정권은 끄떡없어 보인다. 사이클론 나르기스 때문에 그 난리를 치고 100만명이 죽었네 이재민이 되었네 하지만 여전히 버마가 자랑하는 ‘블러디 루비’는 팔려나간다니. 미국과 서방처럼 ‘중국 탓’을 해야 하려나?


세상 어떤 독재도 ‘끝’이 없을 정도로 강고하진 않다. 피노체트도, 박정희도, 사담 후세인도, 모두 ‘끝장’을 봤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낙관론을 가지고서 ‘버마에도 민주주의의 꽃이 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비록 겉보기엔 균열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작년 양곤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항쟁과 나르기스로 인한 타격 등을 거치면서 버마 군정이 온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수찌가 아니라 버마 민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