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저/정영목 역 | 사계절 | 원서 : The Great Game: On Secret Service in High Asia
사계절에서 나온 책치고는 편집이 그래도 그럴듯하다. 이 출판사의 책들은 아직도 ‘운동권 책’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혐의를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은 지도도 많고 중간에 사진도 있고... 원본이 충실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내 선입견을 좀 깨뜨려준 것은 사실이다. 옮긴이의 실력이야 정평이 나 있는 바이고.
중앙아시아, 오늘날로 따지면 아프가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인도 북부-파키스탄-중국 서부(얼마전 테러가 발생했던 신장위구르 지역)로 이어지는 지역들을 먹으려고 영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박 터지게 고심했던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영국 사람이니 책의 시간은 다분히 ‘반러시아적’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지구상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을 무시한채 ‘(자기들이 만든) 지도 상의 공백지대’에 깃발을 꽂으려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면 되겠다.
저자는 “이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모험가 한명 한명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썼는데, 말마따나 탐험가, 군인들의 모험은 흥미진진하다. 책은 <재미는 있다>. 특히 책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드, 타슈켄트를 다녀온 적이 있는 내겐 이들 오아시스 한국(칸국)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을 수밖에. 어찌되었든 저자들은 숱한 주민들의 목숨을 벌레만도 못하게 알고 학살을 자행한 영국군(러시아군도 마찬가지이겠지만)의 더듬이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역자 후기에 적힌 대로,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꼼꼼히 지적해가며 반발해가며 읽어야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역시나 우리는 ‘1세계’가 아닌 ‘3세계 출신’이니 말이다. 굳이 눈 흘겨가며 꼽게 보려 노력하지 않더라도, 한눈에 보기에도 저자의 시선은 영국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이다. “영국인들을 죽이는 잔인한 이슬람 원주민들”에 대한 비판은 황당할 정도다.
나야 중앙아시아에 관심이 좀 있으니 그럭저럭 내 짧은 여행 경험을 떠올리며 재미나게 읽었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이 영-러 제국주의 탐사경쟁을 이렇게 기나긴 분량으로 자세하게 읽을 필요가 꼭 있을까 싶다. <자료> 차원에서 이런 책이 번역돼 나와 준 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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