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끊어지지 않는 사슬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조 트로드, 알렉스 켄트 윌리엄슨. 이병무 옮김. 다반 5/6 벤저민 스키너의 이 르포로 구성된 노예제 추적기라면, 이 책은 통계자료와 개념과 국제법과 국제 규약을 가지고 현대판 노예제의 실태를 전한다. 르포가 아닌 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따지자면 스키너의 책이 훨씬 앞선다. 하지만 스키너의 책이 미국 정부의 노예제에 대한 입장과 세계 각지 노예 현실 르포를 뒤섞어 산만한 느낌이 드는 데 비해 이 책은 건조하지만 훨씬 짜임새 있다. 학자들의 '보고서'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책은 먼저 노예제를 철폐하기 위한 싸움의 역사를 소개하고, 현대의 ‘노예제’라는 이 낯익고도 낯선 개념에 대한 정의와 다양한 형태들을 소개..

딸기네 책방 2013.08.02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세상'

아마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옛이야기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언어학자 니콜라스 파라클라스는 우리 사회에 대해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굶주림도, 노숙도, 실업도 없는 사회, 필요할 때면 공동체가 언제든지 그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느긋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결정권자들이 필요가 있을 때만 다스리고, 다스릴 때도 공동체의 의론과 합의와 승인을 얻어서만 다스리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여자들이 생산과 생식의 수단을 조절하고 집안일은 최소한이 되고 육아는 하루 24시간 필요할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범죄가 거의 없거나 아주 없고, 공동체의 갈등은 죄의식이나 형벌 같은 개념과 무관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보상을 해 주는 것에 ..

딸기네 책방 2013.06.27

타쉬-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

타쉬-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 Tashis Neue Welt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은이) | 엄정순 (옮긴이) | 오라프 슈베르트 (사진) | 샘터사 눈이 보이지 않는 여행자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티베트 소년 타쉬는 라사에 있는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닌다. 그의 고향은 머나먼 산골 마을. 타쉬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은 방학이 되어 타쉬를 고향 집에 데려다준다. 그 길에서 타쉬가 보내온 날들, 마음의 눈으로 본 티베트의 풍경과 티베트 사람들의 생활과 타쉬의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이 학교를 세운 텐베르켄은 시각장애인이다.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설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라사에 학교를 세운 뒤 타쉬 같..

딸기네 책방 2013.06.26

가을에서 겨울로 오는 사이에 읽은 책들

책을 별로 안 읽네, 요새는... 꼭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9.20 마틴 리틀, 킴벌리 윌슨 . 미지북스. 10.5 나오미 클라인 드디어 다 읽다! 벼르고 벼른 지 몇년 만에... 명불허전 10.6 앤드루 존스 제목이랑 영 안 맞음. 책은 세계화론을 다룬 주요 인물들(왈러스틴에서 마르코스 부사령관까지)의 논지를 살피고 '세계화학'이란 학문의 궤적을 통해 세계화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훑어보는 내용. 다행히도 거론된 저서들 중 읽은 것이 많았다... 제법 재미있었던 책. 이젠 '세계화론/세계화학의 역사'까지 나오는구나... 10.7 오린 하그레이브스 휘슬러 모로코 여행 가기 앞서 오래전 사두었던 큐리어스 시리즈 꺼내어 읽다. 여행안내서는 아니지만, 잘 몰랐던 모로코의 역사와 국가 개괄 등이 정..

아라사키 모리테루, 오키나와 현대사

오키나와 현대사 아라사키 모리테루. 정영신, 미야우치 아키오 옮김. 논형. 8/22 근래 읽은 책들 중 아라사키 모리테루를 언급한 것들이 많아서 궁금하던 차였고, 마침 집에 이 책이 있어서 옳다구나 하면서 집어들었다. 주로 1970~80년대 이후로 오키나와에서 펼쳐진 '운동'들을 조망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항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다. 아열대의 바다와 비밀의 숲 같은 것이 아니라, 평화와 생태의 상상력 말이다. 류큐는 무기가 없는 왕국이었다는 식으로 류큐의 과거를 둘러싼 신화(인지 허구인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가 퍼져있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해 있으면서 일본이 아닌 것을 지향한다. 그 '일본이 아닌 것'은 국민국가의 실체를 벗어던진 미래형 공동체를 가리킨다. 실체가 있냐고? 그..

딸기네 책방 2012.09.19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사이에 읽은 책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부키 7/18 신식민지주의론 : 글로벌화시대의 식민지주의를 묻는다 "新"植民地主義論니시카와 나가오. 박미정 옮김. 일조각. 8/9 나니아 나라 이야기 1~7C.S. 루이스 글,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8/17 국경을 넘는 방법 : 문화·문명·국민국가. 니시카와 나가오. 한경구, 이목 옮김. 일조각 8/16이 책을 먼저 읽고 신식민지주의론을 읽는 것이 순서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몇년 더 먼저 나온 것이니까.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다 재미있었고 의미깊었고 생각할거리를 천 톤씩 던져주는 책들이었다. 다윈의 대답 3-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 Divided Labou..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석달 전 교토에 여행을 갔다가, 교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들른 적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큰 건물들이 일본에는 많지만, 특히나 이 히가시혼간지라는 절은 건물의 크기가 워낙 컸다. 정토진종의 절인데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이 고즈넉했다. 그곳 갤러리에서 뜻밖의 전시를 만났다. 조용한 갤러리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인임이 확실한 어떤 문인의 이름이었고, 그 옆에는 일본어로 '재일(자이니치)코리안' 즉 식민지 시절 일본에 끌려갔거나 건너갔다가 정착하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이들은 남북한이 갈라지기 전에 일본에 간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인도 북한사람도 아닌 '재일'이라고만 불린다. 일부는 조총련계, 일부는 민단계로 갈려 있지만 자..

딸기네 책방 2012.08.27

루이스 응꼬씨 '검은 새의 노래'

검은 새의 노래 Mating Birds 루이스 응꼬씨. 이석호 옮김. 창비(창작과비평사). 6/27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은 존 쿳시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문화부 책상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워다놓고 2년 가까이 묵히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확인해보니 원작이 출간된 게 1987년, 아직 백인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다. 남아공의 대표 작가 격인 쿳시가 백인인 반면, 이 소설을 지은 응꼬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흑인이다. 책은 한 흑인 청년의 옥중 고백 형식으로 돼 있다. 한글판 제목은 ‘검은 새의 노래’이지만 영문 제목은 ‘짝짓는 새들’이다. 화자인 청년은 흑인들 중에선 제법 교육받은 사람으로 대학물까지 먹었지만 백인 소녀를 성폭행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처지다. 스위스에서 온 정신분석학자는 청년..

딸기네 책방 2012.08.24

빛은 내 이름

빛은 내 이름 1, 2 veinte anos, Luz. 엘사 오소리오. 박선영 옮김. 대교북스캔 6/28 아르헨티나 ‘더러운 전쟁’ 때 벌어진 ‘도둑맞은 아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 이사벨 아옌데의 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소설이랄까. 정적이나 반대세력을 학살하는 군부독재정권. 여기까지는 수많은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 도둑질’에 이르면 ‘대체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반정부 세력으로 찍힌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해 죽이는데, 그 중 임신한 여성 수감자들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군인 가정이나 부유층 가정으로 넘긴 것은 대체 어떻게 봐야 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니..

딸기네 책방 201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