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 칠레, 또 다른 9·11

딸기21 2014. 1. 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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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에 숨지기 전, 마지막 방송 연설에서 했던 말이다. <칠레, 또 다른 9·11>(서해문집)에는 아옌데의 저 말이 붙어 있다.



"라디오 마가야네스는 곧 끊어질 것이고, 차갑게 식은 금속 장치에 갇혀 제 목소리는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겠지요. 저는 언제까지나 여러분들 곁에 있을 겁니다. 적어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존엄성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민중은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민중은 무너지거나 총탄세례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민중에게 굴욕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를 믿고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기승을 부리면 또 다른 이들이 이 어둡고 비통한 순간을 극복해낼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머잖아 드넓은 길이 열리고,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아옌데의 고별연설 일부분이다. 책에서 옮겨온 것은 아니고, 이태전 올린 포스팅에서 가져왔다.  이번에는 책에 실린 1971년 아옌데의 연설에 담긴 '각오'를 옮겨본다.


"칠레혁명을 지켜내겠습니다. 인민의 정부를 방어해내겠습니다. 그게 바로 인민들이 제게 부여해준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제게 총탄을 퍼붓지 않고는, 인민의 과업을 완수하고자 하는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아옌데가 산티아고의 어느 경기장에서, 쿠바 대표단을 환송하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은 아옌데가 쿠데타군과 맞서 싸우다 숨진 뒤(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싸우던 아옌데가 마지막 순간에'자살'한 것으로 거의 결론났지만 그 점은 중요하지 않다), 아바나에서 연설하며 아옌데의 이 말을 인용했다. 


"총탄을 퍼붓지 않고는, 인민의 과업을 완수하고자 하는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라 했던 아옌데는 스스로의 예언대로 적들의 총탄에 숨졌다. 그 날은 1973년 9월 11일이었다. 그날의 참사를 뒤에서 조종하고 죄악을 저지른 미국이 뉴욕에서 뜻밖의 보복을 당하기 28년 전 벌어진 일이었다. 


책은 '9·11 이전의 9·11'에 대한 아리엘 도르프만의 글,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아옌데의 딸 베아트리스가 전하는 아버지와의 작별 순간, 파블로 네루다의 처절한 싯구와 네루다의 아내 마틸데가 전하는 '시인의 죽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칠레 쿠데타와 미 제국주의에 대한 카스트로의 통렬한 비판도 나온다. 


빅토르 하라.


아옌데 집권 전부터 시작된 미국-칠레군부의 혁명 전복 공작을 연표로 정리한데다가, 옮긴이인 한겨레신문 정인환 기자의 칠레 취재 뒷얘기가 함께 실려 있어 얇으면서도 튼실하다. 카피라이트를 보니 도르프만 이름으로 돼있는데, 국내에선 도르프만으로는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외 지음'이라 돼 있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나누어 읽었다. 빅토르 하라가 남긴 시, 그의 아내 조안 하라가 재구성해 전하는 빅토르 하라의 마지막 일주일을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읽는 것은 힘들었다. 언제 눈물이 쏟아질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런 글을, 카페에 앉아 유유자적 읽을 수도 없지 않은가. "공포를 노래할 수밖에 없을 때 노래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라는 시인의 절규를, "살아 있어 느끼는 공포 죽어가며 느끼는 공포/너무나 많은 순간 속 나를 본다/저 무한의 순간 침묵과 비명이 내 노래의 끝이다"라고 외치는 빅토르 하라의 마지막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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