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최희봉 옮김. 부키
한 해의 마지막 책. 정말 올해엔 읽은 권수가 부끄러운 수준이고나. 지선이 덕분에 알게 되어 주문해 읽었는데,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나름 ‘호황’이었다는 2000년 무렵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아줌마 기자’가 직접 낯선 도시로 날아가 체험해보고 책으로 썼다.
에런라이크는 국내에는 <긍정의 배신>으로 더 먼저 알려졌던 것 같은데, 실제로 쓴 것은 <노동의 배신>이 더 먼저라고. 체험의 강도, 그 용기와 실천력은 기자로서 본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 저널리스트의 체험담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너무나 절절하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밑바닥 바로 위(이 비참한 현실조차드 사회의 바닥이 아니라는 것!)의 임금을 받아가며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그렇게 생활의 수지타산을 맞춰보는 것이 가능한지/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는 것’이 당초 저자의 목적이었다 한다.
실제로 몸 쓰는 일(웨이트레스/치매환자 요양시설 도우미/월마트 매장직원/청소회사 직원 등)을 하면서 저자는 육체적 고통과 수치심을 겪으며 ‘저임금 세계’와 마주친다. 중산층 고학력자들의 세계에선 보이지도 않았던 그 세계에서 동료 저임금 노동자들, 매니저란 이름의 하층 관리자들과 부대끼며 느낀 솔직한 감정들이 무엇보다 재미있었다(이런 때에 ‘재미’라는 단어는 참 어울리지 않지만).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 여기가 미국이라는 것을,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입을 꼭 닫고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유권을 포기하는 현상은 임금과 빈곤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독재라고 표현할 환경에서 보내고 있다면 미국이 민주국가라고 마냥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283쪽)
뭉뚱그려 ‘사회적 임금’이라고 통칭하는 공공서비스 예산은 깎이고 감옥과 치안에 들어가는 투자는 계속 늘어 간다. 사회 전체적으로 억압에 드는 비용 때문에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복구하거나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다. 종국에 덕을 보는 사람들은 억압의 대행자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중략) 경제정책연구소가 생활임금을 다룬 수십 개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어른 한 명에 자녀가 둘인 가정의 경우 시간당 14달러에 해당하는 연간 3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인 노동자의 약 60%에 해당하는 절대 다수가 시간당 14달러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286쪽)
빈민들에게 통하는 토끼굴이 내가 중상층으로 돌아오자마자 등 뒤에서 순식간에,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고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시각적 특성 때문에 빈민들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빈민들은 부자들을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부자들은 빈민을 볼 기회가 거의 없고 일부 공공장소에서 마주친다 해도 가난하다는 걸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290쪽)
신흥 빈곤층, 이전까지 중산층 아니 중상류층이던 사람들이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경제침체기 때 직장을 잃고, 집을 뺏기고, 모아놨던 자산마저 잃고 빈곤층이 된 것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불경기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역시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이다. 이들의 상황은 1980년대 탈산업화가 시작된 후부도 지속적으로 악화일로에 있었다. 2008년과 2009년 블루칼라 계층의 실업률은 화이트칼라보다 세 배나 빠르게 늘어났다.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노동자가 실직지가 될 확률 또한 백인보다 세 배나 높았다. 이미 충분히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 악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병원 진료를 포기하는 것이다. 살기 어려워지면 지출을 줄이는 또 다른 품목은 식비이다. (301쪽)
눈물을 떨구며 식당에서 뛰쳐나오고, 동료의 아픔을 보며 격분하고, 때론 이타심과 순수한 즐거움을 맛보고. 그리고 마침내는 분노하고. 이 사회에,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서 빼앗고 또 빼앗음으로써 부와 편익을 유지하는 사회에 대해. “가난뱅이들은 다 가난한 이유가 있는 거야, 미국은 복지가 너무 많아(요새 한국에서도 이런 개소리 하는 자들 많더라마는), 없는 사람들은 그 나름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어.” 이러면서 가난한 이들에게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빼앗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말미에서는 체험을 통해 느낀 것들과 함께 여러 통계를 제시하면서 ‘왜 임금을 높여야 하는지’ ‘왜 사회적 임금이 필요한지’를 설파한다.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0) | 2014.01.23 |
---|---|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 칠레, 또 다른 9·11 (0) | 2014.01.22 |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다시 읽다 (0) | 2013.10.17 |
끊어지지 않는 사슬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0) | 2013.08.02 |
이탈로 칼비노, The Tribe with Its Eyes on the Sky (0) | 2013.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