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딸기21 2014. 1. 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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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의 도구가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국가적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국제적인 장에서 이 도구를 계속 사용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만큼이나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인간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것, 인간의 주거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아무리 다른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민주적 목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융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계몽이 확대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실제적인 관계에 대한 의식이 커질 때만 가능합니다. 타인의 존엄이 손상되면, 여러 인간 중 하나인 자신의 존엄도 줄어든다는 각성이 생겨야 하는 겁니다. 

전쟁의 파괴 과정 자체를 세계의 진보라는 희망과 열망과 꿈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무력은 평화와 마찬가지로 추상물이 아닙니다. 무력을 목적과 방법이라는 주어진 틀의 외부에 자리한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다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장만 보면, 어느 점잖은 반전운동가의 글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냉전의 설계자' '봉쇄정책의 주창자'라 불리는 미국 외교관 겸 국제정치학자 조지 케넌의 강연문이다.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가람기획)은 수십년 전 케넌의 강연문, 정확히 말하면 1951년과 1984년의 강연에다 '포린어페어스' 기고 등을 묶은 것인데 국내에서 케넌의 책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로 '믿고 보는' 유강은 번역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토록 중요하고 특히 한반도와도 관련 있는 케넌의 책이 왜 이제껏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케넌이 미국 국무부 장관급의 고위층이 아니었고 1950년 고등연구소로 옮겨간 뒤에는 조용히 학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 둘째는 국무부를 떠난 뒤 케넌 스스로 제안한 '봉쇄정책'이 점점 '군사화'되는 걸 보면서 미국 외교정책에 몹시 비판적인 입장을 돌아서 현실에서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이 때문에 케넌은 '봉쇄정책의 주창자'라는 타이틀로만 남았을 뿐, 그가 주장한 내용을 세세히 접할 기회는 없었다는 것. 나 역시 케넌의 이름만 이 책 저 책에서 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넌의 이 강연록은 정말 재미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19세기 말부터 2차 대전 때까지 미국 외교정책을 좌우한 '시각'과 개념틀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맨 앞에 책의 내용 전반에 대한 미어샤이머의 비평이 실려 있다. 케넌의 '논리적 모순'에 대해서는 미어샤이머가 이것저것 짚었지만 딱히 중요한 지점들을 지적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케넌은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이상주의와 미국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오만함), 국수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로 흘러가기 쉬운 민주주의 자체의 맹점 등을 들며 20세기의 전쟁들이 '전면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주장한다. 케넌은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책에는 '현실주의'가 뚝뚝 묻어난다. 

전투에서는 '승리'라는 게 있을 수 있는 반면, 전쟁에서는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상대 국민 전체의 태도와 전통이나 정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라면, 군사적인 수단만으로, 또는 단시간 안에 승리를 달성하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아마 이런 점이 우리가 느끼는 혼란의 근원일 겁니다. 

전면적 승리라는 개념이야말로 과거에 우리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치고 미래에도 가장 큰 손해를 야기할 위험한 망상입니다. 전면적 승리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오늘날 우리의 국경 밖에서 벌어지는 성가시고 불쾌한 많은 일들에 대해 새로운 태도가 나타날 겁니다. 유쾌하지도, 다행스럽지도 않은 인체의 물리적 현상을 대하는 의사의 태도가 이런 것이겠지요. 초연하고 냉정하며 기꺼이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 말입니다.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는 국제정치 이론간의 대립 차원이 아니고,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현실적' 혹은 '현실주의적'이라는 맥락에서도 케넌은 참 현실주의자다. 소련에 대한 전방위 봉쇄를 주장하지만 핵무기 경쟁에는 반대하고, 베트남전에 반대하고, 훗날 이라크전에 반대한 것(케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인 2005년에 사망했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핵무기 경쟁과 미국의 베트남, 이라크 침공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오히려 케넌은 이상주의자로 보이기까지 한다. 케넌 스스로 자신의 제언들이 (워싱턴의 정치 속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현실을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는 언제나 외부에서 단일한 악의 중심을 찾아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돌리려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니카라과나 시리아 같은 나라의 통치자들이 소박한 마르크스주의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독립적인 정치 행위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들이 주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모스크바의 지령이나 이데올로기적 압력에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 많은 미국인들의 눈에 악은 언제나 단수형으로 보여야 합니다. 


핵무기의 파괴성 자체,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는 실질적인 확실성 때문만이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도 핵무기는 자멸적인 무기입니다. 이처럼 자멸적인 동시에 합리적인 군사적 목적에 적합하지도 않은 무기에 집착함으로써... 우리의 사고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극단적으로 군사화하는 결과가 생겨났으며, 이런 점이야말로 전후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이 됐습니다.
이런 군사화는 대외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군사화는 우리 국가경제의 심각한 왜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매년 국민소득의 막대한 부분을 무기 생산과 수출에 지출하고 거대한 규모의 군대 시설을 유지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이제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극심한 금단 증상을 겪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수백만 명이 군복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백만 명이 군산복합체에 생게를 의존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책의 어느 부분은 지난 10여년을 휩쓴 '테러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오만과 실패를 염두에 두고 읽었다. 그런가 하면 뒤쪽의 어느 부분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레 남북한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케넌은 이 또한 미국의 잘못된 전략이 만들어낸 실패의 사례로 본다)에 대해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련을 완전히 복속시키거나 뜯어고치려 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한 지적을 보면서 우리 안의 냉전 잔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한 나라로서 현대 전제 정치의 굴레 속에 사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았다. 전체주의는 일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걸릴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다. 이런 체제 아래서 사는 것은 어떤 민족 전체가 저지른 특정한 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그 민족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이다. 

전체주의 아래서 시민과 정치 당국의 관계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절대로 순조롭고 단순하지 않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과 우리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보면,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부역자와 순교자로 깔끔하게 나눌 수 있고 그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는, 우리 마음에 드는 확신이 자리할 여지는 없다. 


손쉽고 유치한 반응에서 벗어나 소련의 비극을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의 비극으로 보는 데 뜻을 모으자. 그리고 소련 국민들을 인간이 자기 자신과 공존하고 고통받는 이 행성의 자연과 공존하는 더 행복한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고되고 오랜 싸움을 함께 하는 동지로 바라보자. 


나는 이것은 주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촉구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국의 국민 생활 자체의 정신과 목적의 문제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메시지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일치해야 하며, 세계의 존경과 신뢰를 자아낼 만큼 충분히 인상적인 메시지여야 한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여전히 이런 국가적 성격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케넌은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같기도 하고,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런 책을 지마켓에서도 판다는 건 참 재미있다. 지마켓에서 이런 책을 사 읽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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