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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폐허에서-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딸기21 2014. 1. 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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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폐허에서-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판카지 미슈라.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1/29



조너선 스펜스의 <천안문>을 '범아시아 버전'으로 읽은 듯하다. 실제로 등장인물 중 중국의 상당수(캉유웨이, 량치차오, 천두슈 등)가 겹치기도 한다. 


인도 출신인 저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공격과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가 서양을 이기기 위해 어떤 고민과 모색을 했는지 보여준다. 아시아 대륙의 이 끝과 저 끝을 오가는 '근대 초기 아시아 사상가들의 지적 편력'이 화려하고 또한 음울하게 전개된다. 이 지적편력기의 주인공은 크게 두 사람이다. 이슬람권에 두고두고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슬람 테러범들'로 숱하게 폄하되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창시자 격인 알 아프가니가 첫번째 인물이다. 알 아프가니에 대해서는 9.11 테러가 난 뒤 -_- 공부를 좀 해보려 했으나... 안 했다. 그러다가 이제야 그의 행보에 대한 좀 상세한 설명을 읽은 셈인데, 그의 생각틀 자체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니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두번째 인물은 량치차오다. <천안문>의 세 사람 중 한 축인 캉유웨이의 제자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쑨원과 마오쩌둥, 옌푸와 탄쓰퉁을 비롯한 중국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행로가 그려진다. 인도에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모한다스 간디, 무함마드 이크발의 이름이 나온다. 사아드 자글룰, 사이드 쿠툽 같은 이집트의 지식인과 이란의 알리 샤리아티, 아야툴라 호메이니도 한 자리 차지한다. 일본의 근대를 형성한 오카쿠라 가쿠조, 미야자키 도텐, 베트남의 호치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아시아 지식인들의 저항'은 모두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서구라는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그들의 모색이 혼돈을 맴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세밀화가들이 전통과 개혁,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처럼.


재미있었다. 책은 '일본의 개가에 환호하는 범아시아인들'로 시작하며, 일본이 아시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아무래도 '우리 조선의 후예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눈감으려 하는 역사적 진실이라 생각할 수밖에.

아시아 사상가들의 지적 궤적에는 좌절과 희망이 수시로 교차한다. 어찌 되었든, 과거는 과거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미 테러와의 전쟁이 금세기의 첫 10년을 망쳐놓았다. 그렇지만 미래에 되돌아보면, 그 10년은 이미 근대적인 경제는 물론이고 근대화 중인 경제에도 필요한 귀중한 자원과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해 더 큰 규모로 더 많은 피를 흘린 분쟁의 전초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제성장을 끝없이 추구하도록 부채질하는 희망- 인도와 중국의 소비자 수십억 명이 언젠가 유럽인과 미국인의 생활양식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은 알카에다가 꿈꾸는 공상 못지않게 터무니없고 위험한 공상이다. 이 공상은 전 세게의 환경을 더 빨리 파괴하고 있고, 수억 명의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사이에 허탈한 분노와 절망의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서구 근대성의 보편적인 승리라는 이런 씁쓸한 결과로 말미암아, 동양의 복수는 어딘지 음울하고 모호하게 변해가고 있으며, 서구가 거둔 모든 승리는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로 바뀌고 있다."

저자의 맺음말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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