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대공황 - 앞으로 20년,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남기
시바야마 게이타. 전형배 옮김. 동아시아. 1/31
재미있었다. 순식간에 책장을 넘겼다.
2008~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왜 일시적 위기가 아닌 '공황'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하는가, 그것이 진정 위기라면 그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가 아닌 99%의 사람들, 우리 필부필부에게 이 상황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우리가 상상해야 할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너무 거창한 이야기들이라 개미만한 독자, 지구인 하나하나가 생각하기엔 버거운 주제처럼 들린다. 책은 얇고, 케인즈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빌려 궁리의 단초들만 제시해줄 뿐이다. 그런데도 뭔가 머리 속이 정리되는 느낌.
(25쪽)
왜 1920년대에 필적할 거대한 버블이 방치돼온 것일까? 미국 경제학자 라구람 고빈드 라잔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재분배와 관련한 정치의 실패가 있다. ...계층 분리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를 바로잡는 수단은 세제와 소득재분배다. 그런데 미 연방의회는 이런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그 대신 주목한 것이 정부에 의한 융자 확대, 그중에서도 주택과 관련한 융자 확대였다. 이는 교육과 복지의 재정립을 통한 중간층 육성이라는 번거로운 선택을 피하고, 손쉽게 저소득층에게 경제성장의 과실을 배분하려든 정치적 선택으ㅔ 결과였다고 라잔은 지적한다. 격차확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고로움과 비용이 들고, 세금을 늘리려 할 경우 고소득층의 반발도 무릅써야 한다. 중간층 육성에 힘을 쏟기보다 내집 마련을 쉽게 해주는 것이 호경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훨씬 손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156쪽)
도쿄,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권에는 인구가 몰리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세계화의 영향만이 아니라 서비스 경제화의 영향도 있다. 대인 서비스업의 발전은 인구 밀도에 비례한다. ...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셔터 상점가 현상'이다. 인구가 감소국면으로 접어든 지역에서는 손님을 광역화하여 자동차를 이용한 쇼핑객을 겨냥한 대규모 체인점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인구구조의 전환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이후 도시 주민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대도시 출신 정치가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졌다. 2000년대의 구조개혁에서는 공공사업 삭감과 지방교부금 수정이 추진됐는데, 이를 추진한 인물이 가나가와현 출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현재도 추진 중인 지방분권 개혁은 이런 흐름 위에 있다. 그 단적인 예는 나고야의 '독립'을 선언한 가와무라 다카시 시장, '오사카로부터 일본을 바꾼다'고 주장하는 하시모토 도루 시장일 것이다.
(166쪽)
'커다란 정부' 노선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세계화가 초래하는 경제 사회의 불안정을 견뎌낼 수없다. 그러나 세계화와 '큰 정부'의 조합은 과연 바람직한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큰 정부에 의한 복지국가화를 도모하는 것만이 일본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일까? 아니면 세계화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며 시간이 걱릴 지라도 가족과 공동체를 재생시켜 나가면서 도시와 지방, 나아가 산업 간의 균형을 도모하는 선택이야말로 일본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일까?
(178쪽)
1936년 '일반이론'에서 케인즈는 '투자의 사회화'가 20세기에 안게 될 최대의 과제라고 썼다. 통상적으로 이는 정부에 의한 공공투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좀더 확장시켜 생각해보고 싶다. 물적 자본의 투자만이 투자는 아니다. 최근 주목받는 사회관계자본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동체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 혹은 호혜의 네트워크를 일종의 자본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유지와 확대의 프로세스에 주목하는 접근법이다. 이런 생각에서 보자면 공동체의 인간관계는 자본이다. 자본에는 물적 자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인간관계나 조직의 신뢰같은 무형의 자본도 들어간다. 화폐로 환산가능한 유형의 자본뿐만 아니라 무형의 자본도 늘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이 풍요로워지지 않게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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