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7

아서 쾨슬러, '한낮의 어둠'

아서 쾨슬러의 (문광훈 옮김. 후마니타스)을 읽었다. 지난해 가을, 마포의 후마니타스 책다방 주차장에서 열린 책 싸게팔기 행사 때 사다놓았던 소설이다. 피아노 위에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다가 일본으로 가져와서는 다시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는 짓. 언제부터였을까? 소설이 아닌 책들을 주로 읽게 되면서부터 누워서 책 보는 것을 안 하게 됐다. 누워서 보는 책은 아주 재미있어야 하는데, 내가 보는 책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하더라도 대개 밑줄 쳐가며 읽어야 하는 '정보성' 서적들이다보니 버릇이 그렇게 바뀌어버린 것 같다. 엊그제는 꽤 피곤했다. 이틀 동안 하루 너댓시간씩 비포장 도로를 걷는 가벼운 트레킹을 하고 집에 온 터..

딸기네 책방 2012.05.29

그들이 온 이후

지난 토요일에 딸과 함께 도쿄 우에노의 국립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 다녀왔다. 잉카 문명의 여러 면모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잉카 유물도 구경시켜주는 전시회였다.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열리는 '무슨무슨 문명 전시회'와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일본의 전시 수준은 그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일본인 학자의 해설 동영상은 물론이고 3D입체 영상까지 있어서 초등학교 5학년 딸도 아주 즐겁게 감상했다. 전시회의 부제는 '마추피추(우리식 표기는 마추픽추) 발견 100년'이었고, 전시품 중에는 유골(두개골)과 미라도 있었다. 그런데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의 처형 장면을 담은 1분여 짜리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스페인 침략자들의 잔인한 원주민 학살을 비중 있게 조명했다는 점이었다. ..

딸기네 책방 2012.05.22

추억의 ABE 목록- 원제/작가/재출간

인터넷에서 퍼다 모으고, 제가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원래의 ABE는 해적판(당시엔 저작권 개념도 없었지만)에다가 일어책 중역 의혹이 짙은 것들도 많아서, 책 이름 저자 이름이 좀 엉망입니다... 책이야 더할나위 없는 것들이었지만 ㅎㅎ ABE 1 : 나의 학교 나의 선생 (조반니 모스카, 허인 역) 추억의 학교 / 조반니 모스카 / 김효정 (옮긴이) / 우리교육 Ricordi di Scuola / Giovanni Mosca ABE 2 : 조그만 물고기 (에릭 크리스챤 호가드, 박순녀 역) The Little Fishes / Erik Christian Haugaard ABE 3 : 형님 (제임스 콜리어, 이가형 역) My Brother Sam Is Dead / James Lincoln Collier ABE ..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Who Sings the Nation-state?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대담 | 산책자 | 2008년 07월 굉장히 어려우면서, 또한 재미있었다.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은 모두 여성이다. 버틀러는 젠더와 관련된 정치이론을 발전시켜온 사람이고, 스피박은 서발턴 문제에 천착해온 사람이다. 책은 '국가/민족국가/주권'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담을 싣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서발턴의 목소리를 강조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하지만 소수자의 감수성이 물씬 묻어난다. 여성, 원주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긴 자들, 팔레스타인의 난민들, 이 모든 소수자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젠더 문제에 대해 정색하고 고민하거나 공부해 본 ..

딸기네 책방 2012.05.19

사육과 육식- 내용도 번역도 엉망인 책

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리처드 W.불리엣 저 | 임옥희 역 | 알마 딱 내 취향 아닐까 생각했는데... 영 내용이 엄떠여. 상업적 대량사육시대(저자는 이걸 '후기사육시대'라고 마치 대단한 시대구분이나 되듯이 '후기' 붙여 이름지었다)가 되면서 동물의 생식과 도축 같은 원초적이고 피튀기는 장면을 사람들 눈 앞에서 사라진 뒤로, 오히려 사람들은 폭력이나 폭력적 섹스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식선에서의 추론 정도- 즉 저자의 '상상'에 머물 뿐, 근거 자료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작가라고 한다. 문제의식은 재미있으나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지, 그 사회문화적 함의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뭐가 문제인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포르노를 많이 봐서..

딸기네 책방 2012.05.13

라나지트 구하, '역사 없는 사람들'

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 History at the Limit of World-History (2003)라나지트 구하 | 이광수 역 | 삼천리 | 2011년 11월 부제가 '헤겔 역사철학 비판'이다. 헤겔, 역사철학. 너무 무겁다. 무지하고 가벼운 나로서는 다가가기 참 힘들다. 표지도 무겁다. 하지만 '역사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역사 없는 사람들. 키스 휘틀럼이 에서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던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노린 '역사 지우기', 옛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미국 백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역사 지우기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200쪽 남짓한 많지 않은 분량. 요즘 '민족주의'를 화두로 삼은 책을 여러 권 이어서 읽고 있던 차였기에 망설임 없이 꺼내 들었다. 재미있었다. 호미 바바..

딸기네 책방 2012.05.12

복제양 돌리 그 후

복제양 돌리 그 후 AFTER DOLLY 이언 월머트,로저 하이필드 | 이한음 역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04월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던 때가 기억난다. 멋모르고 국제부에서 텔렉스 받아 외신기사 훑어보는 당번을 하고 있었다. 과학 담당기자를 해서 과학 쪽 일을 많이 아는 여자선배가 계셨다. 나는 그때 정말이지 뭘 통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것도 몰랐다. 과학도 몰랐고 영어도 몰랐고... 외국 통신 읽는 것도 서툴렀다. 더더군다나 '클론'이란 것은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쌍둥이'였다. 왜? 왜 쌍둥이가 문제가 되지? 돌리? 뭔 돌리? 양의 쌍둥이가 왜 문제야? 왜들 난리야?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이 그 유명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었다는 것을.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 뿐 아..

봄이 봄같지 않은 계절에 읽은 책들

(이것은 무려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사람. 딸기가 저렇게 알흠답게 앉아 책 읽을 리는 없고.. ㅎㅎ) 정리를 해야 하나... 일단 목록만. 3/13 스티븐 와인버그 '최초의 3분' 3/13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대담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3/14 에드 디 앤절로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 3/14 조너선 스펜스 '근대중국의 서양인 고문들' 3/16 라파엘 젤리히만 '히틀러, 집단애국의 탄생' 3/19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3/21 히로세 다카시 '제1권력-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 3/28 도널드 조핸슨 '루시, 최초의 인류' 3/29 호미 바바 엮음 '국민과 서사' 4/3 한스 울리히 벨러 '허구의 민족주의' 4/7 레슬리 질 '아메리카 ..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현대사'

팔레스타인 현대사 : 하나의 땅, 두 민족 A History of modern Palestine일란 파페 저 | 유강은 역 | 후마니타스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자가 팔레스타인의 현대사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팔레스타인'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할지역과 동일시되는 곳 혹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만든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세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포괄하는,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 불려왔던 지역'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중 어느 한 쪽을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 이 지역 '모든 가려진 사람들', '모든 빼앗긴 사람들'의 입과 눈이 되어 이 지역의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시대적으로는 19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영국에 밀려나던 시기부터 시작해..

딸기네 책방 2012.04.09

스티븐 와인버그, '최초의 3분'

최초의 3분 The First Three Minutes(1994)스티븐 와인버그. 신상진 옮김. 양문 책이 신간으로 회사에 갓 도착했을 때 그쪽 부서를 기웃거리며 주워온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나오기 전부터 다른 물리학 교양서들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고, 잽싸게 집어오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더랬다. 그런데 아직까지 쟁여만 두고 있다가... 지금 확인해보니, 국내 발행된 것이 2005년이다. 그러니 쟁여두고 무려 7년을 열어보지 않았던 셈이 되네... 일단 펴든 뒤에는 죽죽 읽어나갔다. 책은 미국 핵물리학자인 와인버그가 1973년 하버드 대학 과학관 개관식에서 한 연설을 기초로, 빅뱅 이후 '첫 3분'에 대한 그간의 연구성과와 추측을 덧붙여 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