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루이스 응꼬씨 '검은 새의 노래'

딸기21 2012. 8. 24. 22:25

검은 새의 노래 Mating Birds 

루이스 응꼬씨. 이석호 옮김. 창비(창작과비평사). 6/27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은 존 쿳시의 <포> 말고는 본 적이 없다. 문화부 책상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워다놓고 2년 가까이 묵히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확인해보니 원작이 출간된 게 1987년, 아직 백인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다. 남아공의 대표 작가 격인 쿳시가 백인인 반면, 이 소설을 지은 응꼬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흑인이다.


책은 한 흑인 청년의 옥중 고백 형식으로 돼 있다. 한글판 제목은 ‘검은 새의 노래’이지만 영문 제목은 ‘짝짓는 새들’이다. 화자인 청년은 흑인들 중에선 제법 교육받은 사람으로 대학물까지 먹었지만 백인 소녀를 성폭행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처지다. 스위스에서 온 정신분석학자는 청년의 입을 통해 ‘백인 소녀를 강간한 흑인 남성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하고, 청년은 사형을 앞두고 남긴 고백을 통해 자기가 자라난 환경과 백인 소녀의 ‘유혹’에 대해 말을 한다.


흑인이 가진 (육체적-성적인) 폭력성이라는 신화는 인종주의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이며, ‘백인 여성을 강간하는 흑인(혹은 유색인종) 여성’은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가졌던 모든 편견을 집약해 보여주는 메타포다(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도로 가는 길>에는 여주인공의 희한한 심리를 통해 '백인 여성을 강간하는 인도인'이라는 모티브가 나오기도 한다). 


흑인 작가는 일부러 이 메타포를 끌어와 백인에게 반격을 가한다. 저 여자가 나를 유혹한 게 사실이란 말예요, 정말로 저 소녀와 나는 눈이 맞아 섹스를 한 것뿐이라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 저 여자가 순결의 화신인 양 나를 강간범으로 몰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인종주의의 메타포와 그에 대한 반격이 너무나도 ‘남성적’인 탓에, 과연 저자의 반격이 급소를 찌른 것인지는 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