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딸기21 2012. 8. 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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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전 교토에 여행을 갔다가, 교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들른 적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큰 건물들이 일본에는 많지만, 특히나 이 히가시혼간지라는 절은 건물의 크기가 워낙 컸다. 정토진종의 절인데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이 고즈넉했다. 그곳 갤러리에서 뜻밖의 전시를 만났다.

조용한 갤러리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인임이 확실한 어떤 문인의 이름이었고, 그 옆에는 일본어로 '재일(자이니치)코리안' 즉 식민지 시절 일본에 끌려갔거나 건너갔다가 정착하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이들은 남북한이 갈라지기 전에 일본에 간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인도 북한사람도 아닌 '재일'이라고만 불린다. 일부는 조총련계, 일부는 민단계로 갈려 있지만 자이니치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이니치라는 사람들의 존재는 한국에서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게된 것도 기자생활을 하면서였다.

이게 대체 무슨 전시회인가 싶어 둘러보니 그 옆에는 오키나와 사람들, 또 그 옆에는 북쪽의 아이누 사람들, 그리고 일본 내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아온 '부라쿠민(部落民)'의 설명을 담은 패널들이 있었다. 차별에 맞선 이들 네 집단의 힘겨운 싸움을 이끌어온 사람들과 그들이 그렇게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일본 사회의 차별과 싸워온 마이너리티 그룹의 투사들


억지로 일본에 끌려온 '자이니치'들


아이누, 오키나와, 부라쿠민... 자이니치와 함께 일본의 네 가지 '차별받는 마이너리티'를 구성하는 그룹들.

이런 집단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이렇게 이들의 싸움을 알리고 억압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또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갑자기 정토진종이 무지 좋아졌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는 과연 소수집단을 공개적으로 편들고 함께 바꿔나가려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원제 The Japan We Never Know. 데이비드 스즈키, 쓰지 신이치. 이한중 옮김. 나무와숲)는 바로 저 전시회에 소개된 네 집단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여행기다. 물론 피차별 집단 뿐 아니라 지난 세기 이전에 벌어진 다나카 쇼죠의 '광독(광산으로 인한 환경오염 피해)' 싸움 후일담 같은 것들도 들어 있지만. 저자들은 자이니치, 오키나와, 부라쿠민, 아이누 등 일본 속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투쟁과 생명력을 들여다본다.



아직 올해가 가려면 멀었지만, 나는 이 책을 나의 ‘올해의 책’으로 정했다! 영어판 원제 그대로 책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일본’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우리’를 생각하게 해준다.

저자인 데이비드 스즈키는 캐나다에 이민 간 일본인 2세이고 쓰지 신이치는 아버지가 ‘자이니치’라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 일본인이다. 그래서 책은 일본의 또다른 단면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인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아버지, 즉 '뿌리'와 대면하는 여행이 된다

균열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저자들은(그리고 독자들도) 일본 사회의 '오늘'을 만든 '어제'의 민낯과 맞부딪친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긴 일본은 자기네들 땅에서도 잔인한 제국주의였음을. 내부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국가는 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조선 점령 이전에 아이누가 정벌 대상이 되어 내부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조선을 삼킨 뒤에는 자이니치들이 국민 아닌 거주민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아안아야 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로 지금까지도 오키나와는 일본 안의 식민지 구실을 하고 있다.

러일전쟁 후 사할린 섬의 남쪽 절반은 일본이 통치하게 되었다. 섬의 북쪽 절반에는 러시아인들이 살았다. 일본의 점령으로 이 섬의 토착민들은 심한 학대를 받았다. 특히 전통적으로 순록을 따라다니는 유목생활을 해왔던 울타 사람들이 그랬다. 그런 그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는 일본의 정책은 끔찍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겐다누와 아이코는 원주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 들어갔는데, 창씨개명을 강요당했다. 또한 일본어를 배워야만 했으며 자기네 울타 문화를 배우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동화정책에 따라 그들은 제국주의 교육을 받았다. (141쪽)


"열아홉 살 때 저는 길린이라는 다른 소수 종족 출신 청년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6개월 뒤 전범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무고한 사람들을 그토록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지요. 폴로네이스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할 때 저는 강물에 몸을 던졌지만 죽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는 마귀처럼 끈질기게 살아남기로 결심했습니다.
1952년에 저는 한국인과 결혼했습니다. 사할린에 있는 다른 많은 한국인들처럼, 그는 열다섯 살 때 일본인들에게 납치되어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광산으로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들에게 버림받고 사할린에 홀로 남겨진 그는 어망공장에서 일을 했지요." (144쪽)

1993년 8월 가이자와는 니부타니 포럼 조직에 앞장섰다. 그는 이 포럼에 자신의 아이누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비라토리 주민들까지 참여시킬 수 있었다. 이 포럼은 국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으며, 15개국 원주민들의 참석을 이끌어냈다. 많은 참가자들이 댐 건설에 맞서 싸우는 아이누를 지지하고 나섰다. 1994년 여름, 가야노는 아이누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62쪽)


어느 날, 아사이는 한국인 아이들도 반찬을 숨겨 가며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부터 아사이는 한국 아이들에게 가서 반찬을 바꿔먹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오타는 부라쿠민과 한국인들은 모두 차별을 받았으며 흔히 같은 차별구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색다른 음식과 문화적 특성을 공유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몇년 전에 나온 책을 보니 모든 부라쿠 지구와 부라쿠민, 장애인, 한국인의 전형적인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 책은 기업 참고용으로 만든 것이었죠. 그 정도면 부라쿠 호적이 아직도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8쪽)

부라쿠민이 다른 일본인들과 대등한 교육이나 직업상의 대우를 받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사이도 오타도 아는 부라쿠민 변호사가 한 명도 없다. 아는 부라쿠민 의사는 한 명뿐이며, 한 명은 곧 졸업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부라쿠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부라쿠민 학생 수는 일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부라쿠민 학생들의 학업 성적은 일반 일본인 학생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210쪽)

한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애쓰는 활동가 조씨는 특히 아이누 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들과 아주 가까이 지내서 결혼을 니부타니의 아이누 마을에서 하기도 했다. 니부타니에는 아이누 사람이 운영하는 여관이 하나 있는데, 이 외딴 마을에서 훌륭한 김치를 맛볼 수 있다. 홋카이도 벽지에서 이 매운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여관 주인이 그것을 친구인 패기 조에게서 공급받기 때문이다. (254쪽)

한국전쟁 때 사용된 모든 비행기는 일본에 있는 기지에서 날아갔다. 한국에 떨어진 폭탄은 모두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그 폭탄들 중에 '부자(父子) 폭탄'이라 불린 파쇄 폭탄 역시 일본 기업들이 만든 것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전후 일본 경제를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하지만 김씨 같은 재일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한국전쟁 기간에 반전 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비극적인 것은 일본에 있는 다른 한국인들이 폭탄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겁니다. 한인들은 일자리가 절박했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했습니다. 거대 기업들은 흔히 부품을 작은 공장들에게 하청을 주곤 합니다. 이런 작은 회사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자잘한 부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폭탄을 만들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겁니다. 재일 한국인들은 자기 동포를 죽이는 일에 동원되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나사나 만들던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259쪽)

"저는 30년 동안 제가 일본인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오사카로 총알 열차를 타고 왔지요. 그리고는 곧장 한국인 '빈민가'로 가서 몇 시간 동안 시장을 걸어다녔는데, 한국인들의 특이한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길가에 있는 아주 작은 공장에서는 값싼 샌들과 신발, 플라스틱 제품, 고무, 비닐 제품, 가방 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악명 높은 하청 시스템의 말단이 바로 이곳이었지요. 그 다음에는 이카이노의 좁은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집집마다 화분과 분재가 가득했지요. 집집마다 붙어 있는 문패에 씌어 있는 한국 이름들을 보면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255쪽)

어제가 영원히 오늘에 머물지 않고 내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역설적이지만 이런 차>별과 억압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질기고도 오히려 분방하고 활달한 생명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자신들을 억누른 사회를 일갈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찾아다니는 일본은 ‘획일화된 일본’에 작지만 날카롭고 짜릿한 균열을 남기는 그런 일본이다. 북쪽 아이누 땅에서 머나먼 오키나와까지, 이 균열을 재는 잣대는 ‘평화와 생명’이다.

"그들은 거친 밧줄로 우리를 묶었고 심지어 담요로 덮어씌우기까지 했습니다. 쇠사슬로 엮은 울타리 안에 돼지처럼 던져넣더니, 선동과 폭력과 소란이라는 세 가지 죄를 적용하면서 집 열 세 채를 불태워 버렸지요. 그러더니 우리 집들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를 모조 핵폭탄 사격 연습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중략)
우리 농민들은 미군이 악마라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미군이 일으키는 문제는 원래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미사일 사격 연습장 옆에 '결속의 회관'을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평화와 전쟁에 관해 깊이 생각하였고, 고대 역사와 사회의 여러 사상을 연구해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에 나오는 평화와 부처의 '살생하지 말라',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할지니라'고 말한 예수의 가르침을 공부했습니다." (97쪽)

공해의 피해 당사자들은 배상을 받기 위해 싸우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의 생명조차 돈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불쾌감을 맛보게 된다. 달리 말해 인간의 생명, 영혼, 자연이 값을 매길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씁쓸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져주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아니면 그대로 갇혀서 영구히 희생자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미나마타에서 우리는 그런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 놀라운 사람을 만났다.
"제 안에는 목구멍이 턱 하니 걸려 계속 괴롭히면서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배상이란 것이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돈에 자신을 팔까? 저는 제 영혼을 팔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제일 불쾌했던 것은 일본의 플라스틱은 대부분 칫소사가 만들어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칫소가 만들어 낸 쓰레기 더미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게는 나무 배가 필요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처럼 배에 타면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 싶었습니다. 이 나무배에 타니 제정신을 되찾는 것 같았고 제가 원래 어디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22쪽)

대학교육을 더 받아야 하고 더 다양한 직업 및 사업세계로 진출해야 하는 부라쿠민과 달리, 한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북미의 니케이들과 비슷하게 착취와 학대의 역사를 견뎌 온 일본 내 한인들은 이제야 그런 문제를 대내외적으로 거론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일본이 동질적이지 않다는 사실과 다양성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일본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차이점과 자기 뿌리에 숙고하는 만큼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울 역할을 그들은 하고 있다. (267쪽)


일본이 지우고자 했던 갈라진 틈들. 하지만 정작 일본의 힘은 이런 갈라진 틈과 거기에서 생명력과 자유로운 정신을 발현해내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던가.

책은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우리에게도 분명 오래된 균열들과 새로운 균열들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동안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옴으로써 덩어리가 커지고 알록달록해지고 생각과 관계가 발전하는 것 아니던가.

이 책의 저자들이 찾아가 만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아무래도 오키나와와 아이누 쪽이 많다 보니)은 일본 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인 동시에 환경생태 면에서도 가장 핍박받고 빼앗긴 사람들이다. 일본 사회의 갈라진 틈을 통해 들여다보면 망가지고 더럽혀진 강과 나무와 꽃들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책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저자들이 묘사한 일본의 토건주의는 4대강 망치기 사업을 비롯한 한국의 삽질주의와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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