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세상'

딸기21 2013. 6. 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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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옛이야기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언어학자 니콜라스 파라클라스는 우리 사회에 대해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굶주림도, 노숙도, 실업도 없는 사회, 필요할 때면 공동체가 언제든지 그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느긋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결정권자들이 필요가 있을 때만 다스리고, 다스릴 때도 공동체의 의론과 합의와 승인을 얻어서만 다스리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여자들이 생산과 생식의 수단을 조절하고 집안일은 최소한이 되고 육아는 하루 24시간 필요할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범죄가 거의 없거나 아주 없고, 공동체의 갈등은 죄의식이나 형벌 같은 개념과 무관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보상을 해 주는 것에 기초해서 정교한 해결 절차로 풀어 나가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 자체가 축제의 원인이 되고 그 경험을 유지하고 나누기 위해 모두 깊이 책임감을 느끼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공기는 상쾌하고 아이들은 전염병 수준의 천식을 앓지 않는 세상은 어떤가? 나는 자연과 생태학이 규정하는 생태계에 근거한 관리 원칙에 따라 벌목하므로 계속 벌목을 해도 그대로 무성한 삼림으로 뒤덮인 세상을 상상해 본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아무 강이나 호수에서 직접 물을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을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우리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도 그 속에 어떤 독성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을까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도시들이 기후나 주위 경관이나 야생 동식물이나 계절의 자연스런 리듬에 절묘하게 적응하고, 모든 건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비를 다 받아 간직하고, 식품은 모두 지붕 꼭대기에서 기르고, 도로는 비포장이어서 빗물이 물받이나 하수도를 통해 흘러가 버리는 대신 다시 땅속으로 스며드는 중에 불순물이 걸러진 채 땅으로 들어가게 하고, 뒷마당은 잔디 일색으로 꾸미는 대신 자연적으로 형성된 풍경이 되고, 나비들은 어느 학교 마당에나 있는 채소밭에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는 그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모든 활동이나 오락이 우리가 살고 일하고 노는 동네에서 이루어지므로 자동차들이 거의 필요 없는 그런 도시를 그려 본다.



지난해에 일본에 머물면서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를 읽었다. 저자 두 명 중 한 명이 일본계 캐나다인인 데이비드 스즈키였고 캐나다의 한인 학자 오강남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아픈 기록들인데 재미있고 심지어 신나기까지 했다.



그 스즈키의 책이 한 권 더 오강남 옮김으로 나왔다고 해서 냉큼 샀다. 제목은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THE LEGACY, AN ELDER’S VISION FOR OUR SUSTAINABLE FUTURE>(오강남 옮김. 서해문집)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빨리 읽어치우자 했다면 카페에 앉아 순식간에 넘겼을 책인데 시간 들여 조금씩 넘겼다. 원래 책 읽는 스타일이 굼벵이 같기도 하지만, 이 노학자의 글은, 더군다나 '마지막 강의'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런 글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스즈키는 캐나다에 이주한 일본인 '3세'다. 북미와 남미, 호주 등지로 이주한 일본인 3세들을 '산세이(sansei. 三世)라고 부르는데, 스즈키도 그 중 하나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당연시해온 동양적인 감수성이 들어있다. 동시에 북미의 청량한 자연이 심어준 기억들도 녹아 있다. 캐나다인이면서 이주자의 후손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 때문인지, 그는 자신이 보고 자란 자연의 진짜 주인들인 북미 원주민들의 정서에도 공감하는 것 같다.



과학자이자 과학 방송프로그램 진행자, 환경운동가인 스즈키는 이 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브리티시컬럼비아의 계곡과 할아버지의 추억에서 시작해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평생을 실천하며 살아온 노학자의 이야기는 차분하면서도 울림이 있고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책 속에 나온, '모든 것이 이어진 자연'을 보여주는 글 한 토막.

태평양과 태평양 연안 산맥 사이에 끼어 있는 가늘고 긴 땅이 알래스카 남쪽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뻗어 있는데, 여기에 지상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자라는 온대성 다우림이 있다. 연어는 민물에서 나서 바다로 가 여러 해 지나고 자기들이 난 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데, 태평양 연안에는 남북으로 이런 연어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강이나 개울이 수천 개가 있다. 연어가 숲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연어들이 들락거리는 강 주위로 나무들을 벌목한 다음부터 연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했다.

연어는 온도에 대단히 민감한데, 강을 따라 형성된 숲이 있어야 그늘을 드리워 수온을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나무뿌리들은 흙이 알을 낳은 자갈 위로 내려가 덮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흙을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알에서 나온 새끼 연어들은 바다로 가면서 숲에서 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가게 된다.

캐나다 밴쿠버 섬에 있는 빅토리아 대학교 생물학자 톰 라임첸은 질소가 어떻게 바다에서 다우림의 토양으로 옮겨가는지 그 흔적을 찾는 연구를 통해 연어들이 다우림으로 들어가는 질소 비료의 최대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연어의 종류에 따라 2년 내지 5년을 바다에서 지내고, 땅에서 나오는 질소와 다른 바다 질소를 잔득 머금은 채 자기들이 출생한 강으로 돌아온다. 독수리나 늑대나 곰이 연어를 먹고 숲을 다니면서 대소변을 통해 바다 질소를 퍼뜨린다.

한 마리의 곰이 한 계절 동안 600마리 이상의 연어를 먹는데, 곰은 잡은 연어를 자기 혼자 조용히 먹기 위해서 강가로부터 150미터까지 떨어진 곳으로 올라가 먹는다. 연어를 한 반쯤만 먹고 나머지는 그냥 버리고 다시 다른 연어를 잡으러 강으로 내려간다. 곰이 남겨 놓은 연어는 까마귀, 불도마뱀, 벌레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이 먹는다. 그래도 남은 연어의 대부분은 구더기들이 먹어치우는데, 이 구더기들은 완전히 자란 유충이 되어 숲속 쓰레기 더미에 들어가 겨울을 보낸다. 다음 해 봄이 오면 번데기 상태로부터 바다 질소로 가득한 큰 파리들이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남미에서부터 북극 지방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먹이가 되기 안성맞춤이다.

알을 까고 죽은 연어들은 강바닥으로 가라앉는데, 그러면 균이나 박테리아가 그 몸을 두껍게 덮게 되고 이것은 다시 벌레들이나 연체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새끼 연어들이 알에서 나올 때면 물에는 바다 질소로 풍성한 먹거리들이 가득하게 된다. 어미 연어는 죽으면서도 자기 새끼들을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하는 셈이다. 연어, 삼림, 곰, 바다, 공기, 북반구, 이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이라는 그물망을 통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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