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3

2014년 2~3월에 읽은 책들

13. 예닌의 아침. 수전 아불하와. 왕은철 옮김. 푸른숲. 2/3팔레스타인, 예닌, 사틸라. 이런 지명들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비극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책에 묘사된 비극의 깊이는 너무 깊고 생생해서 '예측'을 뛰어넘는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너무 슬픈 이 이야기를 '소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비극. 번역은 매끈하고 훌륭한데, 번역가가 아랍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해 잘 몰랐던 듯. 이집트의 국민가수 움 칼툼을 문자 그대로 '칼트훔 어머니'라고 해놓고, 영어식으로 '시더 나무(백향목)', '배질(바질 -_-)' '허머스(아랍음식 후무스)' 해놓은 게 좀 거슬린다. 아라파트가 이끌던 '파타'를 '파테'라고 틀리게 쓴 것도 옥의 티. 14. 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이세현 옮김. 새..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폴 폴락, 맬 워윅 지음. 이경식 옮김. 김정태 감수 및 해제. 더퀘스트. 3/23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실한 책이다. 일단 혹평부터 하자. 유엔과 정부들이 지금까지 해온 제도적, 구조적인 빈곤 퇴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아니올씨다. 그럼 누가 성과를 거둬왔나요? 성과가 미흡하므로 좀더 노력을 하자, 라고 이야기해야지 '성과 없었다, 이제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기업활동을 통해 지구를 구하겠다'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며칠 전 읽은 마이클 에드워즈의 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책이지만, 굳이 두 책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발상이나 기본전제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 는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은 죽었다'면서 '적정(기술 제품을 활..

딸기네 책방 2014.03.23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마이클 에드워즈. 윤영삼 옮김. 다시봄. 3/22 박애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책인 줄 알았기에 가뿐하게 손에 들었는데 내용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박애자본주의의 한계에 더해, 기업마인드가 시민사회까지 밀려들어올 때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 즉 더이상 필부필부의 참여로 사회를 밑바닥부터 바꾸겠다는 의지를 갉아먹는 문제를 역설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렇게만 적으면 "뭐 예상되던 거 아니었어" 식의 반응을 보일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민사회운동 해본 적도 없으면서. 저자는 시민단체나 민간단체에서 평생 일했던 사람이다. 시장의 논리와 경쟁의 논리가 밀려드는 시민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바꾸고자 외치는 목소리가 참 절절하다. 후다닥 책장을 넘기긴 ..

딸기네 책방 2014.03.22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글쟁이라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지금 글을 써서 먹고 살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 하는 고민을 깊이 해보지 않았던 건 늘 글에 자신이 없고 쓰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항상 글이 아니라 '기사' 혹은 '수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글'은 있다. 가끔씩이지만 칼럼 비슷한 것을 쓸 때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진짜 글'은 이런 것이다. 어떤 것도 인용하지 않은 글, 어떤 이름도 어떤 사건도 어떤 책도 저자도 빌어오지 않은 글, 오로지 나의 생각만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글. 헌데 안타깝지만, 아마도 그런 글은 평생 못 쓰지 싶다. 생각이 ..

딸기네 책방 2014.03.02

2014년 1월에 읽은 책들

1. 3차 산업혁명. 제러미 리프킨. 안진환 옮김. 민음사. 1/10리프킨의 책들은 나오는 족족 읽어두려고 하는데 어느새 많이 밀려 있다. 올해의 첫책은 이 것. 어느분이 말씀하셨듯 '나이브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흩어진 구슬들을 꿰어 내러티브를 만드는 능력과 통찰력은 역시 최고인 듯. 2. 재일코리안 3색의 경계를 넘어. 신명직. 고즈윈 1/10일본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을 휴가기간 꺼내들었는데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여전히 잘 모르는, 앞으로도 잘 알기 힘들 듯한 재일코리안 문제. 3. 은하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클래식. 1/19역시나 좋다. 겐지의 이책은 영원히 소장용이다. 4. 이코노미스트 2014 세계경제대전망. 이코노미스트. 한국경제신문. 1/20연초에 이..

시바야마 게이타, '조용한 대공황'

조용한 대공황 - 앞으로 20년,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남기 시바야마 게이타. 전형배 옮김. 동아시아. 1/31 재미있었다. 순식간에 책장을 넘겼다. 2008~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왜 일시적 위기가 아닌 '공황'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하는가, 그것이 진정 위기라면 그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가 아닌 99%의 사람들, 우리 필부필부에게 이 상황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우리가 상상해야 할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너무 거창한 이야기들이라 개미만한 독자, 지구인 하나하나가 생각하기엔 버거운 주제처럼 들린다. 책은 얇고, 케인즈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빌려 궁리의 단초들만 제시해줄 뿐이다. 그런데도 뭔가 머리 속이 정리..

딸기네 책방 2014.01.31

제국의 폐허에서-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제국의 폐허에서-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판카지 미슈라.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1/29 조너선 스펜스의 을 '범아시아 버전'으로 읽은 듯하다. 실제로 등장인물 중 중국의 상당수(캉유웨이, 량치차오, 천두슈 등)가 겹치기도 한다. 인도 출신인 저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공격과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가 서양을 이기기 위해 어떤 고민과 모색을 했는지 보여준다. 아시아 대륙의 이 끝과 저 끝을 오가는 '근대 초기 아시아 사상가들의 지적 편력'이 화려하고 또한 음울하게 전개된다. 이 지적편력기의 주인공은 크게 두 사람이다. 이슬람권에 두고두고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슬람 테러범들'로 숱하게 폄하되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창시자 격인 알 아프가니가 첫번째 인물이다. 알 아프가니..

딸기네 책방 2014.01.29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마리 모니크 로뱅. 이선혜 옮김. 이레. 1/27 오래전(생각해보니 그것도 벌써 10년 전이네) 카길을 다룬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를 읽고 나서 "누가 몬산토에 대해서도 이런 책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끄적거린 적이 있었다. 바로 그런 책, 카길보다 몇배나 더 무서워보이는 몬산토에 대해 파헤친 책이 2008년인가 나왔는데 계속 게으름피우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GMO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몬산토같은 기업들이 우리 정부를 멋대로 주무르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것.

딸기네 책방 2014.01.27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강압의 도구가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국가적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국제적인 장에서 이 도구를 계속 사용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만큼이나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인간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것, 인간의 주거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아무리 다른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민주적 목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융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계몽이 확대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실제적인 관계에 대한 의식이 커질 때만 가능합니다. 타인의 존엄이 손상되면, 여러 인간 중 하나인 자신의 존엄도 줄어든다는 각성이 생겨야 하는 겁니다. 전쟁의 파괴 과정 자체를 세계의 진보라는 희망과 열망과 꿈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

딸기네 책방 2014.01.23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 칠레, 또 다른 9·11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에 숨지기 전, 마지막 방송 연설에서 했던 말이다. (서해문집)에는 아옌데의 저 말이 붙어 있다. "라디오 마가야네스는 곧 끊어질 것이고, 차갑게 식은 금속 장치에 갇혀 제 목소리는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겠지요. 저는 언제까지나 여러분들 곁에 있을 겁니다. 적어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존엄성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민중은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민중은 무너지거나 총탄세례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민중에게 굴욕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를 믿고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

딸기네 책방 20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