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3

마셜 살린스, '역사의 섬들'

역사의 섬들마셜 살린스. 최대희 옮김. 뿌리와이파리 쿡 선장은 하와이에 가서 신(神) 대접을 받았으나, 신 대접을 받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와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와이 사람들의 신화의 흐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콕 집어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었고, 떠나야 할 신이 (하필이면 태풍으로 배가 고장나는 바람에) 다시 바닷가로 돌아온 것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하와이 사람들은 그를 죽였다. 저자는 쿡의 얄궂은 운명과 하와이의 신화를 바탕으로, 서구의 잣대로 기록된 역사의 힘만을 믿어온 역사학자들에 무시당했던 섬들의 역사를 찾아다닌다. 삶과 신화가 만나고 겹치며 함께 만들어내는, 서구식 역사관 속에서 가려진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라나지트 구하의 이래로 살짜쿵 나의 관심사..

딸기네 책방 2014.07.24

그린레프트- 전 세계 생태사회주의 운동의 모든 것

그린레프트- 전 세계 생태사회주의 운동의 모든 것데렉 월. 조유진 옮김. 이학사. 7/5 미래를 공매도하기 -타타전력은 환경에 대한 끔찍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벵골에서는 그 회사가 지동차 공장 건설을 위해 농민의 토지를 수용하자, 농부들이 자살을 했다. 오릿사의 제철소에서는 오염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발포를 했다. -CDM이 석탄 화력발전소에 활용되는 것은 의아해 보인다. 화석연료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탄소 금융이 활용되는 것은 아마도 탄소 시장의 모순되는 논리적 귀결일 것이다. 가장 악명을 떨친 사례는 프랑스의 화학 회사 로디아사가 강력한 온실가스인 이산화질소를 처리하기 위해 1,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1970년대식 빈티지 기술로 한국에 설치한 시설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탄소 ..

딸기네 책방 2014.07.06

가브릴로 프린치프- 세기를 뒤흔든 청년

오랜만에 읽은 멋진 만화책 한 권. 라는 책이다. 헨리크 레르 지음. 오숙은 옮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올해가 제1차 세계대전 100년이 되는 해라서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 책은 그 중 ‘사라예보의 총성’을 울린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동유럽의 역사를 이 블로그에 엄벙덤벙 ‘연재’하고는 있지만, 발칸의 상황 특히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상황은 몹시도 복잡하고 격렬해서 한 눈에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다. 이 책은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세보다는 세기의 재앙을 촉발시킨 한 청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그 청년의 내면을 움직인 세르비아계의 울분은 무엇이었나를 그렸다. 암울한 필치 속에, 짙은 안개와 냉기가 서린 듯한 사라예보의 분위기가 생..

딸기네 책방 2014.07.06

후지타 쇼조 '정신사적 고찰'

일본 사람들의 책이라면 조금은 읽어보았는데 후지타 쇼조(이전 책의 표기는 후지따 쇼오조오였는데;;)의 글은 압권이다. 이번 책은 (조성은 옮김. 돌베개). 이전에 읽은 도 그렇지만, '정신사적 고찰'이라니... 이리도 무거울 수가 없다. 하지만 참아내야 하는, 기꺼이 껴안아야 하는 무거움이다. '텐노' 마루야마 마사오의 적자라고 하는 후지타는 '학자'가 아니라 '사상가'로 불린다. 글은 신랄한데 저널리스트들의 흔한 글쓰기와는 격이 다른 깊이가 있다. 책의 첫머리는 '골목에서 사라진 술래잡기'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된다. 술래잡기에 대해 뭘 이리도 거창하게 해석했어, 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술래잡기에도 이런 구조와 철학과 과 구조가 있거늘 우리는 어느 새 잃어버렸다' 하는 진지한 자각이 자리를 ..

딸기네 책방 2014.06.09

제수알도 부팔리노, 그림자 박물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수염이 텁수룩한 신이나 마법사의 행동을 똑같이 흉내 냈다. 땅거미가 내릴 즘, 가로등 기둥에 사다리를 기대놓은 채 성냥 하나로 간단히 등 안에 숭고한 빛의 기적을 지펴 놓았다. 새벽에는 좀 서글퍼 보였다. 공중에 매달린 작은 유리 집의 불꽃이 희미해져 갈 때면 그가 살며시 나타나, 자객이 칼을 휘두르듯 심지 끄는 기다란 막대를 가볍게 쳐서 불꽃을 하나씩 끄곤 했다.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이승수 옮김. 이레)에 나오는 구절이다. 10대의 어느 시기엔가, 독일 소설이나 뭐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점등사'를 그린 그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나하나 손으로 불을 켜야 하는 램프등이라니. 부팔리노의 책을 읽다가 '가로등 켜는 사람'에 대한 추억담을 보며 문득 묘하게 환상적이었던 오래된 책의..

딸기네 책방 2014.05.30

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

잿더미의 유산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팀 와이너.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5/26 내용이 내용인지라 재미도 있고, 알아두면 좋을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탈자가 많은 책은... 태어나 두 번째로 본다. -_- (내용 정리) 2차 대전 뒤의 이탈리아 공작 제임스 포레스탈과 앨런 덜레스는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친구들과 동료들인 기업인, 은행가, 정치인 등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수가 없었다. 포레스탈은 해리 트루먼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재무부 장관이던 존 W. 스나이더에게 갔다. 그리고 추축국 포획물에 대한 예탁금으로 변환시켰던 환율안정기금의 일부를 융통해달라고 설득, 동의를 얻어냈다. 그 자금 가운데 2억 달러는 유럽 재건비용으로 책정돼..

딸기네 책방 2014.05.27

2014년 4~5월에 읽은 책들

28. 아랍의 봄. 장 피에르 필리외 글. 시릴 포메스 그림. 해바라기프로젝트 번역. 이숲. 4/3좀 많이 간략하긴 하지만 나라별로 스르륵 한눈에 훑어볼 수 있어 좋다. 29.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 프랑크 비베.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4/5 30. 장자. 오강남 엮음. 현암사. 4/25 8년만에 끝내다. 31. 사유의 윤리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알랭 바디우. 이은정 옮김. 길. 4/30 32.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옮김. 까치. 5/7 심란함과 우울증을 달래준 양자물리학...이라고 하면 우습게 들리겠지만(파인만도 이해 못하겠다고 한 양자물리학을 내가 무슨 재주로 이해해;;) 그럼에도 흥미진진. 33. 리듬분석. 앙리 ..

사유의 윤리, 알랭 바디우가 프랑스 철학자들에 보내는 헌사

사유의 윤리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알랭 바디우. 이은정 옮김. 길. 4/30 알랭 바디우, 이름만 알고 누군지는 잘 모르다가 지난달 이 은근 재미있어서 내친 김에 손을 댔다. 바디우가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책의 원제는 쁘띠 판테온 어쩌구 하는 건데, 국내판 제목은 거기 비하면 몹시 거창하다. 오히려 부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가 딱 맞는다. 무슨 책인지 잘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저자와 책 제목만 보고 가방에 넣은 뒤 지하철에서 펼쳤는데, 이 책이 '지하철에서 읽기에 적당한 책'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크 라캉, 사르틀, 알튀세르, 들뢰즈, 데리다... 흐흐흐. 어차피 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모르는 판에 이들에 대해 품평한 책을 읽는 게 무..

딸기네 책방 2014.05.01

가야트리 스피박,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가야트리 스피박 외 지음. 로절린드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4/10 스피박의 글은 두어번 본적 있지만 늘 어렵다. 스피박 뿐 아니라 라나지트 구하도 마찬가지다. 말이 비비 꼬여 있다. 하지만 끈질기고 엄밀하고 재미있다. 유럽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비비 꼬인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얻는 지적 쾌감과 반짝이는 통찰력에 대한 감탄 등등을 나는 인도 서발턴 학자들의 글에서 얻는 것같기도 하다. 스피박의 대담 -마이너리티는 누구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나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라나지트 구하, '역사 없는 사람들' 이 책은 스피박의 유명한 에세이(바로 이 책의 제목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나온지 25년이 지나서, 그 에세..

딸기네 책방 2014.04.10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 프랑크 비베.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4/5 세계의 커다란 회사들은 '윤리적으로 볼 때' 어디가 나쁘고 어디가 훌륭한가. 그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밝힌 내용과 외부(주로 평가기관이나 비정부기구들)로부터 받은 평가를 바탕으로 소개해놨다. 기업들 스스로 밝힌 내용을 참고로 하되 정보공개의 '투명성'에 방점을 찍고 있고, 기업의 개선 의지에도 높은 배점을 부여했다. 기업의 행위를 '윤리적으로' 따지는 게 간단치는 않다. 탄소발자국이나 노동조건과 같이 어느 정도 글로벌하게 합의가 된 기준도 있지만 정보보호 측면(일례로 책에서는 페이스북의 경우 평점을 보류했다)이나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공적 경영(수익성)'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

딸기네 책방 201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