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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망명-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

딸기21 2015. 7. 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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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걸쳐 싸웠고, 싸우기 위해 썼고, 가진 것들을 빼앗겼고, 오랜 세월을 갇혔고, 쓴 것들마저 빼앗겨야 했던 사람. '읽을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써야 했'던 작가. 그에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그의 글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작가의 망명-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여운경 옮김. 후마니타스)는 미국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안드레 블첵과 인도네시아의 건축가 겸 작가 로시 인디라가 늙고 쇠약해진 프람(프라무댜의 약칭)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대담집이다. 서문부터 옮긴이 후기까지, 번역을 비롯해 모든 게 재미있고 힘이 넘치는 책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을 읽을 때에 호세 리잘의 작품을 몰라 답답했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프람의 작품을 접해본 적 없어 속이 상했다. 국내에 번역된 것이 없거나 일부만 번역됐거나 혹은 번역됐어도 품절, 절판돼 구할 수 없다 하니 더 안타깝다. 치누아 아체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월레 소잉카, 나기브 마흐푸즈와 어깨를 겨룰 거장이라고 하니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인상깊었던 건, 생소한 이 작가 프람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무 처절해서다.


인도네시아에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짧은 기간이지만 세 번이나 방문을 했고(비록 그 중 2번은 발리와 욕야카르타 관광이었으나;;) 또 인도네시아 사람이 쓴 책을 번역(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나의 이슬람)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큰 나라다. 땅도 넓고+섬도 많고, 인구도 많다. 역사는 복잡하고 지금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자카르타는 곳곳에 울타리 두른 고급 아파트촌이 들어선 개발된 도시이지만 바로 옆에는 시궁창이 흐른다. 보르네오의 시골은 다 파헤쳐져 이탄 지대에서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정글은 사라진 채 팜유를 뽑아내기 위한 기름야자농장들이 대지를 메우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의 점령통치를 겪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티모르를 침공해 제국주의 학살의 가해자가 됐다. 자원부국인데 늘 썩었고, 덩치와 가진 것들에 비해 참 뭣하나 나아지는 게 있나 싶은 나라다. 


프람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그 틈을 타 네덜란드가 다시 진입하려 했을 때 거기 맞서 반식민주의 투쟁을 벌였던 사람이다. 수카르노의 이상과 '나라 만들기'에 공감했으나(이 대담은 프람이 숨을 거두기 3년 전에 했다고 하는데 그 때까지도 수카르노를 향한 경외는 숨기지 않았다) 수카르노 말기의 권위주의 시절엔 투옥되기도 했다. 


수하르토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10여일 지나지 않아 프람을 가뒀고, 프람은 부루라는 곳에 10년간 수감됐다. 여덟 권의 책을 군부가 압수해가 폐기하는 바람에 그 책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프람은 감옥 겸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계속 글을 썼고, 국제사회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가 옥중에서 쓴 책들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외국에서 출간됐으나 그의 작품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해금된 건 1999년, 즉 수하르토 체제가 무너진 뒤였다고 한다. 


안드레 블첵이 프람을 처음 만났을 때, 프람은 뇌졸중을 겪은 터라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스스로 "내적 망명상태에 있는 것 같다"며 고립감을 토로했고,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여전히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51쪽)며 걱정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도 "인도네시아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체코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인 블첵은 서장에서 이렇게 썼다. 


20세기는 끊임없이 벌어진 테러와 폭력, 거짓과 배반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수천 번 반복되는 거짓은 진실이 된다"는 것과, 잔혹한 점령이 종종 '해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정치 지도자들이 인본주의와 문명을 고양하고 국가의 이익을 드높이기 위해 그랬다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그렇지만 20세기가 그런 잔혹함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약탈과 혼란 속에서도 굳세게 선 채 모든 어려움에 맞서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이들과 독재의 희생자를 지켜 낸 특별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저항의 도구인 지식과 진실로 무장한 채, 선동과 군사주의와 경제적 수탈에 맞서 싸웠다. <페스트>의 마지막 장에 알베르 카뮈가 썼듯이, "그들은 성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 (44쪽)


프람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성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작가가 됐다. 인도네시아의 현실에 대한 프람의 비판은 너무나도 신랄하다. 차라리 제국주의 시절에는 서구식 합리성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위부터 아래까지 썩어 문드러졌다며 호통을 친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엘리트들 때문입니다. 독립 이전에는 식민 지배자에 의해 약탈당했죠. 지금은 엘리트들에게 약탈당합니다. 수카르노 시기에는 희망이 있었죠. 그러나 수하르토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되고, 수카르노 지지자들은 제거되었습니다." (73쪽)


그는 '자바주의', 네덜란드에 자원과 땅을 갖다바친 자바 엘리트들의 기회주의와 인도네시아인들의 순응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 믿는다. 거기에 200만명을 학살한 수하르토의 공포정치가 더해지면서 인도네시아는 뒤쳐지고 부패한 노예근성의 나라가 돼버렸다. 이를 고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뿌리 채 모든 것을 바꾸는 "총체적인 혁명이 필요하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수하르토 체제를 무너뜨린 1998년의 시위는 안타깝게도 인도네시아를 근본부터 바꿀 혁명이 아니라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의 윗대가리만 바꿀 뿐인 미흡한 개혁운동이었고, 정치 엘리트들은 달라진 게 없었다. 책은 '풀려나서 발견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가득하다. 


"자바주의란 윗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는 것이며, 결국 파시즘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선 자바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자바 엘리트들은 향료를 찾던 식민주의 세력과 협력했죠. 사람들은 엘리트에게도, 식민주의자들에게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식민주의 초기부터 엘리트들은 식민지 세력에게 매수되었고, 자바는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적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윗사람들에게는 윤리라는 게 없었고,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99쪽)


그는 의식 없는 젊은이들을 질타하고, 지식에 대한 갈구가 사라지고 소비주의만 남은 시대를 비판한다. 있지도 않은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찬양하며 억지로 전통을 만들려는 허위의식, 식민주의와 손잡고 땅과 사람들을 빨아먹는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은 통렬하다. 


사실 그 비판들을 들으며 나는 속이 시원했다. 우리에겐 과연 우리 스스로를 이렇게 비판할 지식인이나 작가나 투지가 있는가. 있지도 않은 전통을 들먹이고 가짜를 만들어 진짜인 척하는 그 허위의식, 그러면서도 뼛속 깊이 강한 자를 숭상하고 순응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었느냔 말이다. 프람의 말에는 한이 배어 있고 때로는 끝내 패배한 자가 피를 토하며 쏟아내는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인구의 90%가 넘는다. 이슬람을 포함한 5개 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고 있으나, 종교가 없다거나 무신론자라는 것은 이상하게 비치는 나라다. 그런데 프람은 신 따위는 거부한다.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며 자신은 '프람주의자'일 뿐이라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믿습니다. 34년을 감옥과 수용소에서 지내거나 가택연금을 당하며 보냈는데 신은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신에게 구걸을 하러 가지요. 사실 기도라는 건 구걸입니다." (72쪽)


프람이 인도네시아에서 한 가지 존중하는 건 아체 지역이다. 


"인도네시아가 전부 부패해 가는 건 아닙니다. 아체는 예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2백년간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도, 아체는 독립을 유지한 채 적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개인주의자들이죠. 네덜란드는 아체를 점령하기 위해 자바에서 암살자들을 보냈는데,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아체에서는 여성도 투쟁에 참여합니다. 네덜란드 점령기에 한 아체 투사가 네덜란드군 숙소에 잠입해 그곳을 폭파한 적이 있죠. 자바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체에서도 자신들이 벌여 놓은 혼란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154쪽)


후련하면서도 슬프고, 애잔했다. 세상은 프람 같은 이들의 고통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모두 그 고통을 잊고 있다. 마치 그런 고통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혹은 소중하지 않았으며 시대착오적이라는 듯이. 더 이상 글을 쓸 힘조차 없어진 작가의 대담집을 읽으며 그들의 나라를 생각하고, 내가 사는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그는 거의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때로 그가 우리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우리의 질문이 마치 미지의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의 마음은 머나먼 과거에서, 우리 두 사람이 너무 어려서 기억할 수 없는 나라, 즉 또 다른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상상의 나라, 그의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