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의 종말
폴 로버츠. 김선영 옮김. 민음사
폴 로버츠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석유의 종말>을 오래 전 재미있게 읽었는데(어, 독후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이 책도 구성과 느낌은 비슷하다. 역사와 현실과 문제점과 대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 권으로 이슈 따라잡기’에는 최적이다.
미국의 여느 저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널리스틱한 글쓰기’ 대신 정석대로 통계와 자료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건조하게’ 접근한다는 점. 이 책이 나온 지는 좀 됐지만 식량 문제를 들여다보는 개괄서로는 역시 최고인 듯.
산업화된 농업, 그러나 산업화에 맞지 않는 ‘식품’
현대 식품 위기가 근본적으로 경제주의적인 것은 맞지만 이는 흔히 설명하듯 식품 회사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했다거나 소비자들이 최적의 가격을 찾아 쇼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식품 시스템이 모든 경제 시스템처럼 승자와 패자를 낳고 주기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며, 수요와 공급 사이에 내재하는 극복하기 힘든 격차에 시달린다는 뜻에서 경제적 위기인 것이며, 현 식품 시스템은 이려한 경제적 시스템으로 바라볼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식품생산이 다른 모든 제조 방식에 영향을 준 것처럼(헨리 포드는 정육 공장에서 도살자들이 조직 적으로 소를 분해하는 모습을 보고 일괄 작업대를 고안해 냈다), 다른 모든 제조 방식도 식품 제조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농장은 일괄 생산 공장처럼 운영되면서, 씨앗, 사료, 화학 물질 같은 ‘투입물’을 곡물과 고기라는 ‘산출물’로 점차 바꾸었다. 도살업자, 제빵업자, 청과상 같은 개별 소매업체는 크고 효율적인 원스톱 슈퍼마켓에 통합되더니, 뻗어 나가는 소매 체인점에 다시 통합되었다. 소매업체들은 엄청난 물량과 시장 지분을 이용해 식품 회사들에 할인 압박을 가했는데, 이는 여타 대형 소매업체들이 의류, 화장품 같은 다른 소비재 업체를 압박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었다. 요리하고 먹는 과정은 새로운 시간 절약 주방 기구와 넘쳐나는 선조리 식품 덕분에 비즈니스처럼 효율성을 띠었다. 모든 변에서 현대 식품 분야는 한때 그것이 숨을 불어넣었던 산업 경제의 축소판이 되었다. (15쪽)
이는 식품 경제의 역설이자 현재 일어나는 문제 대부분의 근원이다. 식품 시스템이 다른 경제 부문처럼 발전해 왔다고 해도, 식품 자체는 본래 경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면에서 식품은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아 더욱 쉽게 수확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작물과 가축을 개량해야 했다. (개량 품종도 허점이 많아서 방부제, 착향료, 기타 첨가물로 보완해야 했다.)
농사 기법과 제품 제조 방식은 화학 물질이 섞인 농업 유거수부터 불공정한 저임 노동, 숨 막히는 잉여 칼로리까지 상당한 ‘외부’ 비용을 낳아, 현재 이 시스템의 수명이 매우 의심받고 있다. 또한 음식 조리가 가정에서 공장으로 옮아가면서 사람들이 다른 활동에 참여할 자유를 얻었다지만, 동시에 내 입에 들어오는 음식에 대한 지식과 통제력은 상실했다.
식품은 경제적 시스템과 양립할 수 없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적 시스템이 가치 있게 여기고 활성화하려는 식품의 속성(대량 생산, 저렴함, 동질성, 높은 가공도 등)이 이 식품을 먹는 사람들과 이 식품을 소비하는 문화에 그리고 환경에 최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17쪽)
가공식품의 쓰나미
미국, 유럽, 그리고 정도는 덜했어도 일본에서는 기계화로 농업이 변모하자, 농촌의 잉여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에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대다수가 작업장과 공장에서 장시간 일해야 했다. 식량을 직접 기를 수단과 단절됐고 또 요리할 시간조차 부족했던 이 초기 중산층들은, 바로 해 먹을 수 있고 조리하기 쉬우며 재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뜨는 산업에 투자하길 열망하던 신흥 자본 시장의 후원과 더불어 신기술로 무장한 미국의 기업가들, 즉 게일 보든(Gail Borden), 헨리 존 하인즈(Henry John Heinz),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윌리엄 켈로그(William Kellogg) 같은 사람들이 캔에 든 우유와 피클부터 수프, 식사대용 시리얼에 이르기까지 신상품을 계속 쏟아냈다. 스위스 브베 시에 살았던 헨리 네슬레(Henri Nestlé)는 화학자이자 화학 비료 제조자였다. 그는 밀가루와 설탕, ‘신선한 소젖’을 섞어 킨더멜 즉 ‘유아용 시리얼’을 만들어, 새로 얻은 공장 일자리 때문에 아이 돌 볼 시간이 없는 스위스 노동 계급 엄마들에게 선보였다. 선조리 식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네슬레, 하인즈, 제너럴 푸드, 켈로그, 포스트, 아모르, 스위프트 같은 회사에서 수천 가지의 신상품을 고안해, 대개 시간올 절감 해 주는 가정식 요리의 대안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75쪽)
농부들이 비용을 절감하려 애쓰는 반면, 시리얼 제조업체들은 곡물 원료비에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맛이 더 좋고, 식감이 더 바삭하며, 포장이 더 편리해졌다는 이유로 가격을 올린다. 이렇게 커다란 마진 칭출 능력 때문에 식품 회사들은 점차 거침없이 가공 단계를 높여 간다. 즉 회사가 원료 가공을 더 많이 할수록, 상품들이 완제품 형태에 가까울수록 회사는 가격을 더 높여 부를 수 있다. 1950년에는 식품 소매가의 절반이 농부와 원료 생산자에게 돌아갔고 나머지는 부가 가치였다. 2000년이 되자 원료 공급자의 몫은 2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81쪽)
세상엔 포도보다 '포도향'이 더 많다
지보단(Givaudan), IFF, 퍼메니시(Firmenich), 짐리제(Symrise) 등 연간 26조 원의 가치를 내 는 세계 향료업계의 선두 회사들은 적절한 화학 물질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맛과 향을 복제한다. 첨가물은 산업적으로 쓰일 수 있는 물질(예를 들면 바닐린은 제지 잔여물로 합성한다)로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이들은 보통 천연 물질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다. 음료 제조사들은 딸기 소다에 천연 딸기를 사용하는 대신 인공적으로 향을 내어 비용을 5분의 1수준으로 줄인다.
옥수수는 빵과 크래커의 재료로 쓰이고, 전분은 가공한 고기와 햄버거의 크기를 키우는 데 쓰이며, 수소 첨가 기름은 과자 충전물과 구운 제품에 들어가는 버터(심지어 초콜릿에 들어가는 코코아 버터에도) 대신 쓰일 뿐 아니라, 고과당 옥수수 시럽 즉 HFCS는 많은 가공 식품에 들어가는 값싼 설탕 대체제로 쓰인다. 제조사들이 소다, 껌, 사탕, 여타 식품을 만드는 데 쓰는 포도 향의 수요는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포도향, 즉 실제 포도 생산량을 넘어섰다. 향료공학자이자 미네소타 대 학교 식품과학과 교수로 있는 게리 라이네시우스(Gary Reineccius)에 따르면 현재 그 비율이 10:1이라고 한다.
비프 그레이비(beef gravy)는 전통적으로 밀가루, 버터, 우유와 쇠고기 로스트의 육수를 섞어 만들었다. “그러나 솥 하나로 수만 리터의 그레이비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 맛을 어떻게 내겠는 가? 다량의 밀가루, 버터, 우유를 섞을 수는 있겠지만, 수만 리터에 쓸 육수는 없으므로 향신료를 첨가해야 한다.” 라이네시우스가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모노소륨 글루타메이트 즉 MSG 같은 첨가물이 고기 맛을 낸다. (95쪽)
그는 생산라인 근처에 서서 직원 두 명이 돼지고기 조각으로 돼지 ‘다리’를 만드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뼈를 제거하고 지방을 모두 손질한 후 24시간 동안 소금물에 절인 고기 조각들을 작업지들 주변에 있는 공장 조립 라인의 일부로 보이는 작은 금속 용기 안쪽에 놓는다. 매초 한 사람이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어 겉 상태를 확인하고는, 폭이 1미터 정도 되는 고깃덩어리 모양의 스테인리스 스틸 모형 안쪽에 다른 고기 조각과 함께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여기서 돼지 다리 근육을 본뜬 고깃덩어리가 나온다.
모형 틀로 찍어낸 것에 압력을 가하면 나뉘어 있던 고기 조각들이 한 덩어리로 뭉치고, 앓게 단면을 썰어 내면 진짜 햄처럼 보였다. 뼈가 없는 데다, 현재 대형 식료품 체인점을 자주 찾는 프랑스 소비자들이 신경 쓰는 지방이나 결합 조직, 색상 편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비자들이 찾는 것은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균질한 햄입니다.” M이 내게 변명하듯 말했다.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왜냐면 진짜 돼지 다리 근육은 색이 얼룩덜룩하고 지방이 붙은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위는 소비자들이 찾지 않아요. 소매상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우리 공장은 햄을 이렇게 균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110쪽)
맥너겟이 나오기까지... 닭고기의 변천
1970년 중반 월마트가 대형 식품업체를 접수하기 전, 외식 산업이 비용 절감 전쟁을 자체적으로 치렀다. 값싼 버거 위에 세워진 패스트푸드 제국에게는 유감스러운 소식이었다. 맥도널드는 값 싸고 새로운 고기가 절실했고, 이들이 닭고기로 눈을 돌리자 단백질의 역사가 바뀌었다.
기계적 분리(mechanical separation)라고 알려진 가공 과정에서 닭고기는 고운 체 같은 망을 관통해 슬러리(slurry)로 만들어진 후, 여과기를 거쳐 다시 성형됐다. 이때 화학결합제 덕분에 핫도그와 패티부터 손가락 크기의 너겟까지 사실상 그 어떤 도양이든 성형이 가능했다. 1980년 맥도널드는 치킨 맥너겟이라고 이름 붙인 제품을 테스트했다. 1983년에 대량으로 시장에 선보인 이 메뉴는 크게 히트했다.
가금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KFC와 보쟁글(Bojangles) 등 전통적인 닭고기 판매점이 이 열풍을 확산하는 가운데, 패스트푸드 업체는 저렴한 닭고기 메뉴를 출시하려고 서로 경쟁했다. 양계업자들 사이에 골드러시 분위기가 고조돼 남쪽 대륙 전반에 걸쳐 새로 지은 식용 닭장이 넘쳐났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한 해 기른 닭고기는 전체 조류 10억 마리 중 3분의 1 가까이 차지했다. (124쪽)
미국인의 새로운 입맛을 충족시키려면 가금류 생산자들은 모든 생산 공정을 새로 고안해야 했다. 예를 들면, 패스트푸드용 닭고기 제품은 대개 뼈를 발라냈기 때문에(양계업자들이 길러 온 튀김용 닭은 통째이거나 절단된 상태였다.) 양계업자들은 제조용 닭을 새로 고안해야 했다. 또 타이슨, 포스터 팜, 퍼듀 같은 회사들이 갖춘 신종 자동 가공 설비에 들어맞으려면 크기도 비슷해야 했다. 또 가슴살 부위는 상당히 커야 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짙은 색 고기보다 흰색 고기를 선호했고, 흰 고기류는 패티나 너겟 만들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아비아젠(Aviagen)과 코브반트레스(Cobb-Vantress) 같은 상업용 품종 연구 회사들은 조류의 성장을 좌우하는 요인들 즉 근육 덩어리가 가슴 부위에 몰리도록 하는 근육 분포부터 소화관 효율(조류가 곡물을 근육으로 전환하는 속도)까지 대부분 조작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탄생한 식용 닭은 걸어 다니는 고기 제조기였다. 1975년에 사육했던 닭보다 몸집이 2배로 커졌고, 가슴 무게는 한 마리당 220그램 이상 나가는 등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스모 선수 체형이 되어 버렸다. 1970년대 고기용 닭이 10주가 지나야 도살 가능 체중에 도달했다면, 현대 사육 품종은 40일이면 충분했다. (126쪽)
가공업체들은 또 다른 핵심 비용도 삭감했다. 바로 인건비였다. 도살 작업을 점차 자동화했어도 뼈 제거 작업은 대개 사람 손으로 해야 했다. 또 높아진 닭 수요로 가공업체는 수천 명의 신규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해야 했고, 이미 얄팍해진 마진에 인건비가 타격을 주지 않도록 끊임없이 작업해야 했다.
대다수 육계 가공업체들은 노동조합 결성에 공격적으로 맞섰을 뿐 아니라 점차 업체를 남부 주로 옮겨 갔다. 이곳은 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었고, 경제적으로 침체된 마을이어서 거대한 가공 공장의 사회적 비용을 너그럽게 묵인해 주는 곳이었다. 게다가 다른 식품 부문처럼, 육계업체는 이주 노동자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 중 다수는 이곳에 불법으로 와서 열악한 노동 조건과 시간당 평균 만 원이라는 저임금을 감내했다. (128쪽)
상업용 닭고기는 현재 근육을 너무 빨리 키워 다른 신체 조직이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한다. 가슴 근육이 급성장해 근육 세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므로 충분히 이완할 수 없고, 그 결과 가슴 근육이 반 수축 상태인 경우가 있으며, 이는 고기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가슴 근육에 있는 모세혈관이 근육 전반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만큼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양계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PSE, 즉 ‘창백하고(pale), 흐물거리며(soft), 수분삼출(exudative)이 과도한’ 이상육(異狀肉)이다. 오늘날 닭들은 가슴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젖산 방출량이 상당해 그만큼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젖산은 고기에 든 단백질에 변성을 일으켜 고기가 창백해지고 보수력이 떨어지며(그래서 고기 포장지 바닥에 붉은색 잔여물이 남는다) 그 결과 흐물흐물해져 조리 시 물러진다. 가축 사육자들은 유전적으로 PSE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장 저렴한 해결책은 고기에 소금과 인산염을 주입해 수분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35쪽)
세상을 바꾸는 ‘가축지리학’
카르푸나 월마트 같은 대형 다국적 업체가 개발도상국에 정착했다는 것은, 소규모 식료품 업체로 시작한 현지 소매업이 최종 발전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이 현지 업체들은 결국 다국적 소매업체에 매입된다. 일단 대형 업체들이 들어서면 소매업은 진화 속도를 높인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칠레, 필리핀 등 10년 전만 해도 슈퍼마켓을 찾아볼 수 없던 나라들에서, 이제는 슈퍼마켓이 전체 식품 구매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운영 방식이 보통 서양식 표준이나 판행에 미치지 못하는 현지 공급망과 공급업체를 이들 대형 업체들이 뒤흔든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최고급 소매업체에 공급하길 희망하는 현지의 채소, 과일, 육류, 유제품 생산자들은 소비자 중심인 서양 모델에 맞춰 전통적인 관행이나 일과를 보통 단념해야 한다. 새로운 소매업체는 공급이 연기되거나 질 낮은 제품을 공급할 경우 바로 거절해버리고 계약대로 이행 안 한 공급업체를 목록에서 지워버린다. 이에 농장주들은 운영 방식과 설비를 개선하려고 경쟁하고 제품 품질을 높이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두 가지 작물에 주목해 왔다. (140쪽)
값싼 곡물은 값싼 수송비와 더불어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가축지리학’이라고 칭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 말은 육류 생산이 전통적인 생산 여건(농경지 근처)에서 사실상 풀려나, 이제 정치 환경이 우호적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상황을 뜻했다. 바츨라프 스밀이 미국의 거대한 수출 시장과 미국이 매일 쏟아 붓는 상당한 식품량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니, 미국인들은 실제 미국 농가가 생산한 곡물의 5분의 1밖에 소비하지 않았다. (199쪽)
식품산업 관계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입법자와 무역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였다. 대개의 경우 이들이 정책안 작성까지 도왔다. 카길의 전 부사장인 댄 앰스터츠(Dan Amstutz)는 미국무역대표부 사무실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이른바 농업 협정 초안을 작성했다. 조시 W. 부시정권 때 미 무역대표부 농업 관련 주요 협상자였던 앨런 존슨(Allen Johnson)은 카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퍼듀, 콘아그라, 프록터앤드캠블, 퓨리나, 타이슨, 유니레버 등 업계를 대표하는 전미오일시드가공협회(National Oilseed Processors Association)를 운영한 적이 있다. (213쪽)
중국의 콩 수입이 브라질에 미친 영향
중국의 식량 경제는 고비를 맞고 있다. 인구는 여전히 늘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퇴직자층 부양에 대한 우려로 정부가 한 자녀 정책을 완화하면서 인구 증가율이 다시 한 번 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농업의 잠재력을 분출시킨 경제 자유화는 도미노 효과로 소비와 새로운 식습관을 불러일으켰다. 채소와 농산물뿐 아니라 가공식품, 특히 고기류 생산이 늘어났으며, 곡물 수요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중국은 식량 수출국으로 성장하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현재 생산 규모만큼 식품안전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중국 같은 나라가 육류와 기타 부패성 식품 생산량을 늘릴 경우 대형 식품 안전사고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이런 추세는 식량 안정에도 불길한 조짐이다. 중국이 현재 특정 원료시장을 상당 부분 점하고 있고 세계 공급망은 린 생산이나 적시 생산 방식으로 재고가 거의 없기 때문에, 중국이 무너지거나 병목 현상을 보이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세계 식품 공급망은 곧장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219쪽)
중국이 1990년대 중반 콩 수입을 시작했을 때, 신규 수요는 미국 농가(현재 중국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의 주머니를 채워줬을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콩 골드러시를 야기했다. 특히 브라질은 IMF가 부과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의 식욕을 이용할 수 있었다. 브라질은 농부들이 광활한 세라도(cerrado) 곡창지대에 콩 재배 면적을 늘리도록 부추기는 한편, 열대 기후인 현지 토양에서 무성히 자라고 한 해에 이모작과 삼모작까지 가능한 콩 종자를 개발하려고 연구에 대거 투자했다.
이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브라질은 투자법을 완화해서 카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가 저장고와 선적 시설을 손쉽게 늘리도록 했으며 다농과 네슬레 같은 가공업체들이 현지 유제품과 낙농회사를 수월하게 사들이도록 했다. 중국인 투자자를 환영했고 농장과 항만시설, 여타 산업 기반시설에 돈을 쏟아 붓도록 했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브라질 통화의 실질 가치를 3분의 2 수준으로 평가절하해, 농산물 가격을 미국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었다. 콩 수출은 1998년 820만 톤에서 2006년 2500만 톤으로 치솟았고, 증가분 대부분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221쪽)
아프리카의 실패
농업 혁명에서 산업화로 이어진 것은 유럽, 미국, 일본이 18세기와 19세기에 겪은 과정이었다. 전문가들은 교배 작물과 정부의 세심한 관리 그리고 상당량의 금융 원조가 뒷받침된다면 이런 일이 빈곤국 혹은 개발도상국에서 똑같이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케냐 정부는 새로운 종자를 농부들에게 저가로 혹은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이들을 교육했으며, 상당량의 보조금이 들어간 화학 비료와 살충제를 나누어 주었다. 강력한 국가 곡물위원회도 생겨났다. 막대한 보조금 지원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는데, 특히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케냐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출혈이 컸다. 원조 정책은 개발도상국 농부들이 투입재, 그중에서도 화학 비료를 쓰도록 설득하는 작업에 주안을 두었다.
되돌아온 대가는 이 비용들을 정당화하는 듯 보였다. 아시아의 농업 산출량이 치솟으면서 기근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을 뿐 아니라,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이 터져 나왔다. 대만과 한국은 노동력 중 농업인구 비중이 1945년 75퍼센트에서 1970년 25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아프리카도 농업 주도 산업화라는 동일한 물결을 따라잡는 듯 했다. 케냐의 도시 지역은 번성했고 각종 사업들이 성장했으며, 억압적이고 부패한 케냐타 체제에도 불구하고 나이로비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러한 조짐이 보이자마자 아프리카의 붐은 끝나고 말았다. 1980년대 후반 아시아의 산출량은 계속 오름세였던 반면, 아프리카의 산출량은 주춤하기 시작했다. 케냐의 에이커 당 마이즈 산출량은 196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쳤고, 농경지 수도 줄어들었다. 세계 곡물 시장은 다시 포화 상태가 되어 곡물 가격이 폭락했다. 동시에 석유 가격이 상승해 화학 비료와 살충제 값이 올랐다. 결국 세계은행과 다른 대부 기관들이 케냐 경제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힘을 행사했다. 라틴아메리카처럼 케냐 역시(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채무국 모두) 국영 농업정책을 해체하고 보조금 정책도 대부분 없애버렸다.
대다수 녹색혁명 옹호자들은 아프리카의 형편없는 집행 능력을 탓했다. 다른 비판자들은 녹색 혁명 기저에 있는 패러다임에 주목했다. 즉 값비싼 산업 투입재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이 아프리카 농업의 사회 및 자연적 현실에 매우 부적합했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그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프리카 정부의 농업 정책 관리가 형편없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녹색혁명 모델이 아프리카 농업현실에 부적합한 산업적 농업 관행들을 끼워 맞춘 것 역시 사실이다. 일례로 물이 많이 필요한 고수확 품종을 들 수 있다. (237-239쪽)
커피를 통해 본 '구조적 과잉공급'
19세기 후반부터 케냐는 수출용 환금 작물로 커피, 차, 파인애플을 주로 재배해 왔지만, 1990년대 들어 원조 집단이 자유무역을 식량 안정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꾸준히 재배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서리가 브라질 커피 작물을 망치면서 커피 가격이 치솟았고, 케냐를 비롯한 국가에서 커피 재배가 급속히 뻗어 나갔다. 몇 년 안에 케냐는 아라비카 커피콩 수출로 한 해 2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러한 붐이 베트남을 비롯한 다른 주체들을 끌어들였다. 동남아시아 국가는 품질 면에서 케냐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의 기후는 품질이 떨어지는 로부스타 커피콩에만 적합했는데, 이 콩은 특유의 고무 타는 냄새로 유명했다.
그러나 베트남에게는 대부기관과 대형 커피회사의 후원이 있었다. 네슬레, 프록터앤드캠블, 크래프트, 사라 리 등 모두 합해 세계 커피콩의 40퍼센트를 소비하는 대형 커피 회사들은 커피 생산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가공기법의 발달로 로부스타의 나쁜 향내를 없앴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보다 60퍼센트 저렴해, 식품산업의 대박상품이 되었다. 베트남은 커피업계의 월마트, 초저가 생산자가 되었다. 베트남 커피콩에 약 4분의 1을 의존하는 네슬레는 이곳에 연구소를 열었다. 1990년과 2000년 사이에 베트남 커피 생산은 100만 톤 미만에서 1600만 톤으로 치솟아 세계 2위 생산국인 콜롬비아를 따라잡았다. (246쪽)
커피 생산은 수요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해 시장이 질식할 정도였다. 로부스타 가격은 폭락했고, 아라비카 가격도 계속 하락세였다. 안타깝게도 커피 생산에 발을 들이면 손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커피나무는 선행 투자가 필요한 작물이어서, 재배자들이 투자금의 일부라도 건지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몇 년간 계속 수확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구조적 과잉공급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다. 코코아나 설탕, 야자유 같은 모든 환금작물 시장은 오랫동안 짧은 가격 폭동과 꾸준한 저가격이라는 특정을 보였다. 커피 파동의 여파는 놀라웠다. 미국국제개발기구에서 나온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50만 명 이상의 커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베트남의 커피 플랜테이션은 방치됐고, 노출된 토양은 계절성 폭우에 침식되고 말았다. (249쪽)
쇠고기 먹는 세계
보통 새로 발견한 대장균의 독 성분은 인간과 관련이 없었다. 인간의 위산 덕분에 대장균이 장에 도달하기 전에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식량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대장균도 이에 적응했다. 소들에게 먹인 옥수수에는 풀이나 건초에 비해 당분이 훨씬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의 장이 점차 당도와 산도가 높은 환경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대장균도 점차 산에 내성이 생겼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렇게 적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1982년 O157-H7균이 마흔일곱 살의 맥도널드 소비자를 감염시킨 사건이 터진 시점부터 이 세균은 완전한 꼴을 갖추었으며, 이는 조사관들이 여태껏 발견한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형태였다. (277쪽)
가축 밀집 사육시설의 효율성이 놀라울지라도, 이러한 사육시설이 소 자체의 비효율성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운영이 뛰어난 사육장일지라도, 소의 체중 0.45킬로그램을 얻는 데 적어도 3킬로그램의 먹이가 필요하다. 이는 돼지의 두 배, 닭의 세 배 이상이다. 더군다나 소 무게 중 상당부분은 식용이 불가능해서 60퍼센트가 뼈, 내장, 가죽이다. 실제 소의 단백질 전환율은 훨씬 낮아 쇠고기 0.45킬로그램을 얻는 데 정확히 9킬로그램의 곡물이 필요하다. (315쪽)
미국 수준의 육류 소비(1년에 일인당 약 98킬로그램)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세계에서 수확한 곡물로는 단 26억 명만 먹여 살릴 수 있다. 일인당 육류 소비가 미국의 80퍼센트 수준인 좀 더 완화된 육류 소비 수준을 적용하더라도 세계 곡물 공급은 여전히 50억 인구만 먹여 살릴 수 있다. 지구정책연구소 브라운의 말에 따르면, 실상 세계가 인도 수준으로 육류를 소비한다면(즉 한 해 5.4킬로그램 정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도의 경우 생산한 곡물 중 90퍼센트를 빵이나 여타 제품으로 직접 소비하고, 수천만 명에 이르는 인도인이 여전히 충분한 칼로리를 얻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곡물 공급량으로 95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317쪽)
농업이 만들어내는 기후 변화
강가와 호수에서 제멋대로인 질소는 뭐든 닥치는 대로 비옥하게 한다. 그래서 서양톱풀이 수로를 막고 무성해진 녹조가 부영양화라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연못과 호수, 연안수에 있는 산소를 빨아들이고 그 결과 물고기가 죽어 나가는 광대한 죽음 지대를 만든다. 2003년 유엔환경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죽음 지대가 150개 정도 있으며, 1990년의 두 배라고 한다.
그러나 질소가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수질이 아니다. 떠다니는 질소는 산소와 결합해 아산화질소가 되는데, 이는 스모그를 유발하는 주요 오염원이자 오존층 파괴 인자로,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인간이 만드는 아산화질소의 70퍼센트가 농업 부문에서 온다. (325쪽)
예일대학교 기후 및 농업 전문가인 로버트 멘델존(Robert Mendelsohn)과 동료 연구진의 예측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8개국인 잠비아, 니제르, 차드, 부르키나파소, 토고, 보츠와나, 기니비싸우, 감비아는 농업 생산의 4분의 3을 잃을 수 있고, 아프리카 대륙 전반으로 따지면 전체 식량 생산이 2600억 원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337쪽)
그린워터와 블루워터
농가에 공급되는 물은 두 종류다. 빗물을 직접 받아쓰거나, 강, 호수, 빙하, 저수지, 지하 대수층에 저장된 물을 사용한다. 두 형태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강우의존형(rain-fed) 물, 즉 수문학 용어로 ‘그린’ 워터(Green water)는 자유재이다. 이는 하늘에서 떨어지며, 값비싼 저장시설이나 댐, 관개수로, 샘이 필요하지 않다. 강우의존형 작물은 저장된 물로 키운 것보다 물을 절약한다. 저장된 물 즉, ‘블루’ 워터(blue water)의 경우 이를 옮겨야 하고, 중간에 새나가거나 증발해서 많은 양을 잃기 때문이다.
그린 워터는 무한하지 않다. 마지막 남은 물 한 방울까지 쓰고 나면, 더 이상 이 자원을 사용할 수 없다. 부족한 물은 블루 워터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난 세기 관개시설을 확장한 주요 동기였다. 그린 워터의 경우 빗물을 모두 쓰고 나면 더 이상은 못 쓴다. 반면 블루 워터는 보충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끌어다 쓸 수 있다.
블루 워터를 과도하게 끌어올려 식량 자급을 이룬 인도는 대수층이 심하게 고갈돼 지하수면이 6미터까지 주저앉았다. 북아프리카 지역은 대수층에서 물이 채워지는 속도보다 5배 빠르게 끌어 써서, 농부들이 관개용 우물을 거의 1.6킬로미터 깊이까지 파야 한다. 미국 전역 관개농지 다섯 곳 중 한 곳에 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오갈랄라 대수층은 1년에 1억7천만 톤 속도로 과다하게 이용해서 농부들이 새로 생긴 ‘건조지대’에 맞춰 다른 작물로 전환하거나 농업 자체를 단념해야 한다.
물 남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중국 동부다. 중국 전체 인구의 40퍼센트를 아우르며 황허 강, 하이허 강, 화이허 강 유역을 뒤덮는 3H지역은, 중국 물 자원의 10분의 1에 해당하지만 곡물 생산의 절반을 담당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이 높은 가격 유인책, 효율성 높은 체계, 물 순환, 습지대인 남쪽 지방에서 건조한 북쪽으로 방대한 수로망 구축 등(1년에 2억 7000만 톤) 엄격한 물 관리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3H지역은 여전히 6억 톤 정도 혹은 황허 강 연간 유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물 부족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341쪽)
곡물이나 다른 식품에 들어가 있는 이른바 가상수(virtual water)는 곡물 거래에 잠재된 요소다. 미국 같은 나라가 잉여 곡물을 수출할 때, 이들은 잉여 물도 수출하는 셈이다. 식품 경제학자들은 미래에 가상수가 훨씬 표면화되고 세계 식품경제를 규정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늘어나는 인구에 공급할 물이 없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은 국제 물 시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의 알렉산더 첸더(Alexander Zehnder)는, 미국, 유럽,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 대형 물 수출국 수가 지난 20년간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물 수입국은 인구가 늘고 지하수면이 낮아지면서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342쪽)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2025년 무렵 세계 곡물 가격이 현재보다 거의 두 배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345쪽)
공정무역, 유기농, 푸드마일... ‘만병통치약’은 없다
일부 활동가들은 빈틈없이 통제받는 공급망과 가차 없는 가격 인하 압력이 주를 이루는 세계 식품경제의 불균형을 단지 농가들에게 공정가격을 지급하기만 하면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개발전문가들은 공정무역 체제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생산자 중 극히 일부만 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히려 농가들이 세계시장을 전적으로 피해 가거나, 적어도 초반에는 잉여를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파는 게 낫다고 본다. (253쪽)
‘대안적 가치’를 핵심으로 삼는 유기농 운동은 금전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제·정치적 모델에 순응해 가면서 경쟁상대인 유전자변형 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 처하고 말았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월마트 같은 대형 소매업체가 유기농 산업을 공급망 형태에 몰아넣은 점이다. 유기농 시장은 대형 저비용 생산자들에게 유리하게 변해갔다. 농경제학자 데이비드 스웬슨(David Swenson)은, 단순히 기존 대규모 생산방식을 조정해 연방의 유기농 기준을 충족시킨 대형 관행농 생산자들이 점차 유기농 생산을 장악해 갈 것이며, 이들은 유기농이 제공하는 높은 가격 프리미엄과 더불어 규모의 경제를 획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387쪽)
지역식품운동(localvorism)은 이론상 훌륭해 보이나 실천은 매우 힘들다. 우선 지역 음식에 대한 정의가 10여 가지가 넘는다. 지역성이란 무엇일까? 먹을거리를 생산자에게서 직접 사들여야 할까? 더욱 큰 문제는 분산된 식품 시스템이 현대의 도시화된 사회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농업경제학자는 현재 급성장 중인 아시아 국가처럼 식품 생산지가 도심지 가까이로 대거 이동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나 식품 생산지와 인구 밀집지가 뒤섞인 상황은 조류독감 위험을 높인다.
식품의 수송거리를 줄이면 지속가능성에 득이 되는 듯 보이나 항상 그렇지도 않다. 살리나스 밸리의 대형 농장에서 네바다 주 리노(Reno)에 있는 월마트까지 500킬로미터를 달려 농산물을 운반할 때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긴 하지만, 이는 리노 농가가 동일한 양의 농산물을 10여 대의 트럭에 나눠 싣고 30킬로미터 떨어진 농산물 시장으로 운반하는 데 드는 연료보다 사실상 적다. 집중화되고 산업화된 식품시스템의 한 가지 장점은 식품수송 에너지 비용을 줄였다는 점이다.
식품의 지속가능성을 따질 때 거리가 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칠레에서 생산되고 미국으로 날아가는 유기농 식품은 푸드마일이 높을지라도 살충제와 화학 비료를 덜 썼기 때문에 칠레의 환경과 농민에게는 이롭다. 이러한 복잡한 양상을 포괄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옹호자들은 푸드마일 대신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는 더 세밀한 개념을 들여왔다. 원료, 에너지, 작물을 비롯해 식품을 만들고 운반하는 데 필요한 모든 투입재를 토지로 환산한 지수이다. (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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