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딸기21 2015. 10. 8. 20:20
728x90

"먼저 버려야 할 잘못된 생각이 있는데, 철학자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철학자는 텔레비전에 밤마다 출연해 현재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 받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인 것이다." (15~16쪽)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의 대담집인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민승기 옮김. 도서출판 길)를 읽었다. 읽으면서 바디우의 말에 밑줄을 쫙쫙 그었는데 정리해야지 해놓고 미적미적거리다 이제야 긁어다 놓는다. 이 대담은 이라크전이 세계의 관심사였던 2004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조금 시차가 있다. 하지만 바디우의 말은 대체로 주옥같다. 반면 지젝의 글은 (당시만 해도 나도 흥미로워서 몇 편을 읽기는 했으나) 그 후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거의 말이야막걸리야 수준이 되어버린 것 같으며, 2004년 당시의 식견이라 해도 바디우와는 좀 급이 달라서-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에선 바디우 부분만 읽으면 될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



바디우는 '철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그는 '철학자'를 주어로 삼았지만, 철학자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도 울림이 있다.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은 곧 '우리는 어떤 때에 철학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적 사고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자는 역사적 상황이든, 아니면 정치적 예술적 과학적 상황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문제를 창안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기호들이 발생할 때 상황에 개입한다."(18쪽) 그는 이런 상황을 '철학적 상황'이라 부른다. 즉 철학자는 이것이 옳고 나쁜가를 판가름해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대화가 실려 있다. 토론에서 칼리클레스는 힘이 정의라고 주장하고, 소크라테스는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힘의 정의와 사유로서의 정의가 맞닥뜨릴 때, 철학자가 하는 일은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정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것에 기반을 둔 생각틀이 부딪칠 때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대결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선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철학의 유일한 임무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유형의 사유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칼리클레스 쪽에 있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예에서 철학은 선택으로서의 사유, 결정으로서의 사유에 직면하게 되고,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선택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철학적 상황은 선택이 분명해지는 바로 그 순간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실존의 선택 혹은 사유의 선택." (19쪽)


우리는 대개 선택을 미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굴복하고 대충 뭉개고 넘어가기로 마음먹어 놓고도 마치 나는 딱히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는 둥, 현실이 어디 그러냐는 둥, 어느 한 쪽을 쳐내고 고르는 게 어디 가능하냐는 둥,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굴종하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바디우는 말한다. 바로 그럴 때 철학자는(철학은) 지금이 선택의 순간이라는 걸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철학은 그렇게 우리에게 생각과 선택을 강요하면서 박쥐짓을 멈추게 질타하는 회초리다. 


바디우는 여기에다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이번 사례의 주인공은 아르키메데스와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다. 마르켈루스의 부하는 장군의 명을 거부한 아르키메데스를 죽여버렸다. 마르켈루스 진영과 아르키메데스 진영 사이에는 접점이 없다. 수학적인 증명을 하기 위해 아르키메데스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군사적 승리자들의 다급한 부름 사이에는 공통성이 없다. 바디우는 "권력과 진리들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철학이 수행해야 할 임무는 바로 이 거리를 밝혀내는 일이 된다. 측정할 수 없는 이 거리에 대해 사유하고 고려하는 것, 또는 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32쪽)


'사건을 사유하기'라는 부분은 특히 재미있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뒤집어 엎으려는 시도를 우리는 보고 있다. 모든 사건은 특수하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띠고 있다. 사건 중에서도 보편성을 띤 사건이 역사가 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프랑스 혁명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시대가 요구하던 보편적 가치들을 드러낸 것이기에 역사가 됐다. 광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건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은 보편성과 단독성 사이의 연관 관계를 타깃으로 삼는다." (42쪽)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어느 순간 가치를 띠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이 역사적 사건의 순간이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파리의 생 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했던 때가 그 예가 된다. 그들은 그때 가치 없는 상태로 유지되어 온 것의 실존과 가치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와 같은 선언을 통해 그들은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속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불법 이주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46쪽) 이렇게 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사건들/사람들이 눈에 보이게 되고, 존재를 알리게 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