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7

새로운 생명의 역사

과학책을 보며 즐거워하는 편이지만, 까치에서 최근 몇 년 새 나온 책들을 보다보면 어쩐지 웃기는 느낌이 있다. 뭐랄까, 책들이 진지하면서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책들보다 포장이 매우 소박하다 못해 촌스럽다. 저자의 이름값은 사이언스북스 쪽을 따라잡기는 힘들지만 내실이 없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숭산에서 나온 책들처럼 대중교약서적을 살짝 넘어서는 전문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사이언스북스 책들의 문장처럼 유려하지 않으면서 숭산 책들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이라고 해야겠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교양과학서를 재미삼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 읽어보라고 선뜻 권하기는 쉽지 않으니. 정말 어중간하다. ^^;; 이 책, (피터 워드, 조 커슈빙크. 이한음 옮김)도 딱 그렇다. 나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

. 극적인 제목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겸 저술가 니콜라우스 뉘첼이 지은 이 책(유영미 옮김. 서해문집)은 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1차 세계대전 이야기다. 당시의 역사를 쉬운 말로 설명하지만 담겨 있는 지식이나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 전쟁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그려보인다. 전쟁은 사람들의 얼굴을 지워버린다. '전사자들' 혹은 '전쟁영웅'이라는 말 속에 가려진 사람들의 나이와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기독교도였지만 전쟁에, 나치즘에 환호했다. 그는 그 부끄러운 역사를 끄집어내고 의미를 되짚는다. 흔히들 독일은 일본과 달리 과거의 잘못을 치열하게 반성하고 사죄했다고 말한다. 그런 '과거와..

딸기네 책방 2016.03.20

강윤중,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나는 가난하지 않아 가난한 이의 한숨을 모르고, 이성애자라 동성애자의 고통을 모르고, 늙지 않아 나이 든 어르신의 외로움을 모른다. 죽음을 부르는 병에 걸린 적이 없어 죽음을 앞둔 이의 두려움을 모르고, 남의 땅에서 일해 보지 못해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안다' 또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무지와 편견으로 무장한 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참 쉽게 말하며 살아온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강윤중의 책 (서해문집). 나는 사진기자 강윤중의 사진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잘 모른다. 그의 글은 더더욱 모른다. 믿음직한 후배이고 책도 잘 썼겠거니 싶어서 오며가며 읽으려고 샀다. 그런데 좁아터진 뇌로 오며가며 읽다 보니 어느 새 석달이 지났다. '글머리에'라는 이름으로..

딸기네 책방 2016.03.06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최완규 옮김, 시공사.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 ‘시장 대 국가(정부)’라고 할 때의 그 국가를 말하는 줄 알았다. 실제 내용은 시장지상주의를 외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장의 중요성을 잊지 않지만, 그런 경제학적 틀에서 벗어나 ‘왜 어떤 나라는 실패했고 어떤 나라는 성공했는가’를 촘촘히 분석해 들어간다. 분석 틀 자체가 촘촘하다기보다는, 큰 틀에서 개별 사례들을 꼼꼼히 살피는 식이어서 읽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애쓰모글루는 미 MIT 경제학교수이고 로빈슨은 하버드대 정치학교수다. 책은 두 저자의 면모에서 보이듯 ‘정치가 경제를 만났을 때’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 어떤 정치는 어떤 역사를 거쳐 이런 경제를..

딸기네 책방 2016.03.03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아, 정말 이런 책은! 칼비노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애정은 주변사람들에게 하도 늘어놔서 남사스러울 지경이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었다! 딸과 함께 침대에 누워, 며칠에 걸쳐서 서로 번갈아 큰 소리로 읽어주며 어찌나 즐겁던지. 무척이나 칼비노스러운 엽기잔혹발랄판타지동화다. 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그날 아침, 노인은 때까치가 있는 새장 문을 열고 아들 방까지 날아가게 했다. 그리고 까치와 박새의 작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모이를 주었다.잠시 후 메다르도의 방에서 창틀을 향해 무엇인가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 노인이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처마널에 때까치가 죽어 있었다. 노인은 손을 동그랗게 모아 때까치를 데려왔다. 그리고 마치 잡..

딸기네 책방 2016.02.01

2015년에 읽은 책들

52. 케빈 올리어리, 민주주의 구하기. 이지문 옮김. 글항아리. 51. 아널드 오거스트, 쿠바식 민주주의. 정진상 옮김. 삼천리 50. 비자이 프라샤드, 갈색의 세계사 49. 10/29 이언 스튜어트, 생명의 수학. 안지민 옮김. 사이언스북스 48. 10/25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이길주 옮김. 푸른숲 47. 9/22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민승기 옮김. 길 46. 9/14 크로포트킨, 청년에게 고함. 홍세화 옮김. 낮은산 45. 9/11 아베 긴야. 중세 유럽 산책. 양억관 옮김. 한길사.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며칠 전 읽은 도슨의 이 중세 유럽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면, 일본 학자가 오래 전 쓴 이 책은 중세 유럽의 풍경들, 모티프들을 스케치하듯 다룬 것이다. 양억관..

아널드 오거스트, 쿠바식 민주주의

쿠바식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VS 참여민주주의 아널드 오거스트. 정진상 옮김. 삼천리 요즘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세 권을 읽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미국의 '운동권 출신 지식인'이라는 저자는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 대신 쿠바(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참여'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요새 많이 나오는 민주주의의 본질로 돌아가기, '참여 민주주의'로 향하기 같은 주제와 연결돼 있다. 그런 참여민주주의의 틀로서 쿠바를 본다. 매우 도식적이고 동어반복이 심하다. 미국은 나쁘고 오바마는 미국의 문제를 가리기 위한 상징물일 뿐이며 미국식 '민주주의'는 거짓이다, 쿠바는 진짜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 이런 주장만 되풀이하니 통 믿을 수가 없다. 책의 장점은 쿠바 참여민주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생생한..

딸기네 책방 2015.12.08

비자이 프라샤드, '갈색의 세계사'

갈색의 세계사-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비자이 프라샤드. 박소현 옮김. 뿌리와이파리 요즘 극히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라고. 재미있었다. 비동맹운동, 제3세계의 역사만으로 구성된 세계사책은 처음 읽는다. 장렬한 투쟁, 세계를 뒤흔들 수 있었던(한때는 뒤흔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흐름이 굴절되고 꼬이고 결국 무너져내리는 과정이라니. 원문도 좀 뒤죽박죽인 것같고, 편집자가 원고를 안 읽었는지 오탈자 많고 일본식 표현(수상 국방성 외무성 등등)도 많아 엉성했지만 밑줄 치면서 읽을 부분이 많았다. 제3세계 구상은 수백만 인민을 흔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여러 영웅을 낳기도 했다. 그런 영웅 중에는 3대 거물 정치인인 나세르, 네루, 수카르노뿐 아니라 베트남의 응우옌티빈과 호찌..

딸기네 책방 2015.11.06

이언 스튜어트, '생명의 수학'

며칠전 어떤 출판사 편집자와 수다를 떨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책도 재미있을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 경우, 잘 이해하지 못하는 책도 충분히 재미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 중 대부분에는 아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 내가 모르는 지식들이 들어있었을 터이지만 그런 건 책의 재미를 느끼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세세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게는 재미있게 다가오는 어떤 포인트랄까, 그런 게 있으면 언제나 재미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언 스튜어트의 (안지민 옮김. 사이언스북스)을 읽었다. 많이 재미있었다.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수학은 생물학에 필요하다'. 예전에는 수학이 물리학하고만 관계가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생물학에서도 수학이 매..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소설도 쓰고, 잡지를 만들어 글을 쓰기도 하는 남자가 있다. 선후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병든 아내(나중에 죽음)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다른 젊은 여자를 쫓아다닌 것 같다(참고로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잘은 모른다). 새 연인이 유럽 여행을 가자 쫓아가서 같이 다니는데, 이 여자는 유럽에서 그새 딴 놈에게 눈이 맞았고 그새 차였다. 그래서 쫓아온 남자한테 완전 시큰둥. 그러면 여행이나 잘 다닐 것이지 말이야. 남자는 유럽에서 도박에 빠져서 가진 돈 홀랑 날렸고, 고향에 있는 형과 동생은 물론 전처의 여동생, 자기 차버린 젊은 여성에게까지 돈 좀 보내달라고 읍소를. 심지어는 도박에 대한 소설을 써서(실제로 썼다고 함) 돈 갚을테니 빌려달라고 동네방네 문인들에게 애걸복걸. 그 전까지 유럽에 대해 글 쓰면서 프..

딸기네 책방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