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7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이반 일리치. 권루시안 옮김. 느린걸음 지난 가을에 라카페 들렀을 때 기어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표지도 이쁘고 질감도 좋고. 올해의 첫 책은 사실 이걸로 하고 싶었으나 어쩌다 보니 다른 책들에 밀렸다. 일리치의 책들은 나오는대로 사 모아야지. 경제학에 가려진 삶의 축복 저는 필요라는 개념의 당위성을 해체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노동보다도 더 근래에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라고 정의하는 그것은 과거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필요와 그에 상응하는 과거의 그것은 사회의 수많은 전제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너무나 달라 서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인식론적 단절이 우리가 '필요'라 부르는 것이 등장한 시점입니다. 1..

딸기네 책방 2017.01.17

윌리엄 이스털리, 세계의 절반 구하기

세계의 절반 구하기 윌리엄 이스털리. 황규득 옮김. 미지북스 오래 전에 빌 게이츠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소개를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봤는데, 그 중 한 권이 이스털리가 쓴 이 책이었다. 개발경제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라 해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번역본이 없었고, 교보문고에서 영어로 된 책을 들어다놨다 반복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얼마 전 교보에 다시 들렀다가 이스털리의 또 다른 책 가 나온 것을 봤다. 결국 휴가 가기 전에 두 권 다 샀다. White Men's Burden이 원제인 이 책, 는 이미 2011년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펼치게 됐다.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기는 했으나 재미로 따지면 별점 2개 수준. 중언부언이 많고 설명도 부실하다. 일화들은 뜬금없고, 온통 비판으..

딸기네 책방 2017.01.15

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하류지향우치다 타츠루. 김경옥 옮김. 민들레 우치다의 책은 두 번째이고, 집에 한두 권 더 있는 듯 싶다. 어떻게 보면 지식인 꼰대 아저씨인데 그가 하는 진심 어린 말들이 콕콕 박힌다. '옛날엔 그래도 이렇지는 않았어, 가난했지만 희망과 열성이 있었어, 요즘엔 모든 게 돈 위주로만 돌아가서 너무 심해'라고 이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폭력적인 노친네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은, 지금 우리 모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모든 게 돈 위주로만 돌아가서 너무 심하다는 걸. 이 시대에 절망하고 있기에, 이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새겨듣게 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배움의 장에 서게 되면 첫 질문으로 "이걸 배우면 뭐에 도움이 되나요?"라고 묻는다. 아주 냉정하고 어떤 면에서는 비즈니스 냄..

딸기네 책방 2017.01.07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미칼 헴. 박병화 옮김. 에쎄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고 재치있지도 않았다. 신랄하게 비꼬아서 쓰려고 한 모양이지만, 독재국가에서 일어난 학살과 인권침해는 그렇게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내전을 생각하면 그곳 군벌들의 잔혹함과 그곳 사람들의 비극을 유머로 넘길 수가 없다. 두번째, 제3세계 정치구조를 딱 2mm 분량으로 얄팍하게 다루면서 독재자들의 작태를 우스개로 삼는 것이, 제3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줄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런 종류의 글이 '아프리카 후진국들 꼬라지가 그렇지'라는 느낌만 굳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째, 르완다의 폴 콰가메나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는 '아프리카의 무식한 독재자들'로 쉽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4..

딸기네 책방 2017.01.03

2016년 읽은 책들

1.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왜 언론들이 이 책을 찬양하며 널리 소개했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길다. 방만하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 중동의 탄생을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영국의 중동정책사'다. 2.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최완규 옮김. 시공사. 1/14 3. 빌프리트 봄머트, 빵과 벽돌. 김희상 옮김. 알마 1/25 4.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이현경 옮김. 민음사. 2/1 5. 강윤중.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서해문집 3/6 6. 사이토 도시야, 오하라 미치요.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홍성민 옮김. 공명. 3/18 돈 아깝다... 1만3000원짜리 책인데, 2000원짜리 팜플렛으로 만들면 딱 알맞은 수준. 진짜 내용 없..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권위에 대한 복종 Obedience to Authority스탠리 밀그램. 정태연 옮김. 에코리브르 온갖 책에 인용되는 스탠리 밀그램의 그 유명한 실험을 소개한 책을 드디어 읽었다. 1970년대에 나온 책은 사실상 밀그램의 ‘실험 결과 보고서’에 가깝다. 이미 나온 지 오래됐고 여러 곳에서 마르고 닳도록 인용됐으나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유럽계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실험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복종이라는 미명 하에 수행한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의 극단적인 예”였고, 그 충격이 아직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시기 전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안겨준 충격은 반전이었고, 이 또한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악’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밀그램은 미국의 ‘보통 ..

딸기네 책방 2016.12.28

존 머터, 재난 불평등

재난 불평등 THE DISASTER PROFITEERS존 C. 머터. 장상미 옮김. 동녘 번역이 별로이고, 책도 그리 재미있지 않다. 역시 빈곤이나 재난과 사회적 '건강'의 문제라면 폴 파머의 책을 읽어야. 자연과학을 하는 학자가 쓴 것이라, 사회과학과 접목되는 부분이 좀 약하다. 하지만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미얀마 이라와디 삼각주를 강타한 태풍 나르기스와 미국 루이지애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비교, 분석한 내용이었다. 왜 저들(책임지고 무언가 대비를 하거나 사후 대응을 했어야 할 국가 기관 혹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세월호' 이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의문이다. 왜 대통령도, 청와대의 재난 대응 라인도, 해경도, 선원들도, 어느 누구도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나?..

딸기네 책방 2016.12.18

화성 이주 프로젝트- 생존하라, 그리고 정착하라

화성 이주 프로젝트- 생존하라, 그리고 정착하라How We'll Live on Mars스티븐 L. 퍼트라넥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과학저널리스트의 TED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간명하면서도 재미있다. 영화 을 매우 보고 싶었으나 못 보고 지나갔다. 집에 화성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읽는데, 맛뵈기 삼아 이 책부터 꺼내들었다. 토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책장을 후다닥 넘겼다. 화성 이주 프로젝트라니, 멋지다! 화성으로 이사간다는 것은 아직은 상상에 불과하다. 책은 상상으로 넘쳐난다. 그 상상이 그들어맞을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지는 알 수 없다.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화성 이주라는 것은 온갖 장애물들을 끌어안고 있으니. 하지만 그저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나는 기분. 책은 화..

진공이란 무엇인가

진공이란 무엇인가 Les avatars du vide마르크 라시에즈-레. 김성희 옮김. 알마 매우 얇은데 매우x10000 어려운 책. 근래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얇고, 가장 난해한데, 가장 폼난다.'진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다고 진공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진공이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런 책을 과학자들이 힘들게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공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개념이고,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개념이다. 진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으니. 때론 진공은 그냥 텅 빈 공간이었고,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었으며, 하늘이었고, 우주였다. 이 책은 '에테르'부터 '우주복사'까지, 진공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프리먼 다이슨이 권해주는 책들

프리먼 다이슨이 권해주는 책들 Kristen Ghodsee “The Left Side of History,” Joan Connelly “The Parthenon Enigma,” Octavia Butler, “Parable of the Sower” “Parable of the Talents,”Edward Wilson. (with Bert Holldobler) “On Human Nature,” Robert Kanigel, Eric Bell, “Men of Mathematics,”Arthur Eddington, “Space, Time and Gravitation,” Bjorn Lomborg. William James.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Richard H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