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딸기21 2017. 4. 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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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 그래도 나는 끄떡없다. 그리고 저 사람들에게 내가 개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기껏해야 저들은 내게 채찍질밖에 안 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의 향기가 저 어둠으로부터 희미하게 전해지고 있는 지금,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15쪽)


반딧불이 쿠데마유의 초록 불빛이 꼭 감고 있는 내 눈가를 촉촉하게 만든다. "내가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날이야." 나는 눈으로 반딧불이 쿠데마유에게 말한다. 그러자 반딧불이가 초록 불빛으로 내게 대답한다. "그날 너만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야." (55쪽)


그 작은 양털 실오라기에서 마른 장작, 곡물 가루, 우유, 꿀,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의 냄새가 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있는 힘을 다해 울부짖는다. 내가 근처에 있고, 만나러 갈 거라는 사실을 아우카만에게 알리기 위해 울부짖는다. 다른 건 몰라도 고통에 찬 목소리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법이기에,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76쪽)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이다. 세풀베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은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던지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문화부에서 책을 종종 얻어오다 보니, 나의 몇 권 안 되는 독서는 거의 내 취향이 아닌 얻어보기 수준에 걸려 있다. 어차피 취향이 그리 뚜렷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얻어걸리는 책들 중에 마음이 얼얼하게 좋은 것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칠레의 마푸체 원주민들 행진 소식이나 땅 싸움 얘기는 외국 언론 보도에서 몇 번 읽었으나 이런 동화를 통해 접할 때에는 또 다르다. 


노란 색의 얇은 책을 읽는데 늘 그랬듯 몇 주가 걸렸다. 아민 말루프의 <동방의 항구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림자 박물관> 그리고 이 책.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씩 아껴가며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