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90

프리먼 다이슨, '과학은 반역이다'

"50년 전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훌륭한 수학자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나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에서 일반인에게 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하디는 응용할 데도 없는 아주 쓸모없는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인생을 허비했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부의 분배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삶의 파괴를 더 노골적으로 조장할 때, 흔히들 과학이 쓸모 있다고 말한다.' 사방에서 전쟁의 포성이 귀청을 찢고 있을 때, 하디는 이 말을 썼다." (42쪽) 다시, 프리먼 다이슨. 이번 책은 (김학영 옮김. 반니)인데, 서평과 에세이가 적당히 섞여 있다. 이전 책들에서 이미 읽은 에피소드들이 좀 겹쳐 있고, 내가 접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책에 대한..

베른트 하인리히, '귀소본능'

수세기 동안 뱀장어 새끼를 본 사람이 없을뿐더러 아직까지도 녀석들이 알을 낳는 모습은 목격된 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가 자라 뱀장어가 된다고 믿었다.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파리처럼 생긴 뱀장어 치어는 대서양에서 목격된 바 있다. 가장 작은 치어는 사르가소해의 버뮤다 제도 남쪽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뱀장어의 원산지, 다시 말해 산란 장소로 추정된다. 녀석들은 해류에 이끌려 플랑크톤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일 년이 지나 5~6센티미터 정도 자라면 제법 뱀장어의 형태를 갖추게 되지만 몸체는 여전히 투명하다. 그때쯤이면 녀석들은 헤엄도 치고 냄새로 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생기의 실뱀장어(glass eel)는 연어와 달리 바다 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 2권

어찌어찌 근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 3권을 연달아 읽었다. 첫번째로 읽은 것은 라는 것인데 그런대로 내용이 알차고 내게는 많이 도움이 됐다. 두번째로 읽은 것은 박정훈의 (개마고원)이다. 책 아주 재미있었고 훌륭해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맛뵈기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권해주고 싶다. 이쪽 지역에 대한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것이 통 없었는데, 이제야 국내 작가가 쓴 라틴아메리카 개론서가 생긴 느낌. 그래서 몹시 반가웠다. 저자는 오래 전 멕시코에 7년을 체류했고 이후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분이라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 넓은 지역의 기나긴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것들이어서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와 박히..

딸기네 책방 2018.04.01

21세기 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 Civil Society and the State in Left-led Latin America (2012년)배리 캐넌·피다 커비 엮음, 정진상 옮김. 삼천리 그동안 읽은 삼천리에서 나온 책들이 대략 2~20%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이 책도 긴가민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펼쳐들었다. 역시 많이 부족했지만 또한 많이 충실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꽤나 재미있었고, 내게는 도움이 많이 됐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게될 독자들을 위해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책(원서)가 나온 것이 2012년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2017년에 한국어판을 번역출간하면서 보론을 곁들이기는커녕 ‘그 후의 상황’에 대해 옮긴이 주석으로조차 담지 않은 것은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 용서하기 힘든 부분이다. 책에 나온 ..

딸기네 책방 2018.03.18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성상원 | 전명윤 (지은이) | 따비 | 2018-01-15 굳이 세월호 얘기는 할 필요가 없겠다.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엄청난 상처를 남긴 그 재난,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이었던 ‘재난 이후의 대응’에 대해 말을 덧붙여 무엇할까. 우리는 재난이 개인의 삶을 앗아갈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거대한 상흔을 남긴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2017년 11월의 지진 때, 세월호와 촛불 혁명 이후 새로 바뀐 정부는 ‘수능 시험 연기’라는 대응을 했다. 재난에 대한 반성이 불러온 진전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재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 여행을 다니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늘고, 머나먼 ..

딸기네 책방 2018.01.31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피터 반스. 위대선 옮김. 갈마바람 재미있다. 기본소득 대신에 '배당'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명료하고 아이디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설득력도 있고. 사회를 그 쪽으로 움직여가는 건 모두의 일. 대규모 중산층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남긴 여러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지만, 그 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의 각 주가 부모가 소유한 땅을 장남이 모두 상속하는 봉건적 체제인 '장자상속법'을 하나하나 없애 나가는 동안, 초기 의회는 보편 공공 교육을 실행하기 위해 도시를 새로 건설할 때마다 땅을 확보했다. 상황은 산업화, 이민, 강도 귀족이 출현하면서 바뀌었다. 도시에는 공장 노동자 계급이 대규모로 출현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반세기 동안 투쟁한 결과..

딸기네 책방 2018.01.30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황런위. 이재정 옮김. 이산. 1/7 1991년에 나온 책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효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던 1980년대 말까지의 상황을 바라보고 쓴 것이라 지금 읽으니 너무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이미 그 후에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저자 황런위(Ray Huang)은 1918년생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중국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다. 서방에서 나름 '제대로 공부한' 그 시대의 몇 안 되는 중국 학자로서,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개괄해보고 중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조망하는.......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실은 별로 없었다. 조반니 아리기, 재닛 아부-루고드, 혹은 안드레 군더프랑크 등등의 책에서 익히 보았던 내용, 페르낭 브로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

딸기네 책방 2018.01.28

공감의 시대

'공감의 시대'라는 제목을 가진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제레미 리프킨의 (이경남 옮김. 민음사)는 매우 길었다. 840쪽, 양장본, 그야말로 벽돌책이다. 딱히 재미는 없었다. 이제 리프킨은 그만 봐야겠다. 이전의 책들은 대략 재미있었고 문제의식이 앞서나가는 것들이었는데 이번 책은 쓸데 없이 길다. 뭘 이렇게 길게 썼어... 뭘 이렇게 많이 인용했어... 그냥 기후변화, 환경파괴라고 쓰면 될 것들을 뭘 굳이 '엔트로피'라고 했는지. 리프킨의 책에 인용된 또다른 (최재천 옮김. 김영사)는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생물학자 프란스 드 발이 쓴 것이다. 책 표지에 설명이 많다.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이타성과 공정성의 생물학적 기원에 관한 탁월한 연구', '공동체의 ..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편지

생명의 편지 The Creation 에드워드 윌슨.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읽은 책. 마무리를 할 것이 뭐가 있냐 싶지만, 로버트 카플란의 책으로 끝내려니 어쩐지 싫고 무언가 '좋은 책'으로 한 해를 끝내고 싶었다. 이 책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것이 2007년이다. 그러니 10년 가까이 묵혀둔 셈이다. 윌슨의 'The Future of Life'를 읽고 나서 좀 헷갈렸던 것인지, '생명의 편지'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꺼내어 보게 된 것은 딸 덕분이다. 딸에게 책을 권해주면서 보니 밑줄이 하나도 없는 것이 어째 생소한 느낌.... 다 읽고난 딸이 "너무 좋다"며 내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것도 벌써 몇달 전의 일이었다. 책은 윌슨이 미국 남부의 어느 '목사님'에게..

로버트 카플란, '지리의 복수'

지리의 복수 THE REVENGE OF GEOGRAPHY로버트 카플란. 이순호 옮김. 미지북스 카플란의 책은 언제나 '기분 나쁘지만 읽는 책'이라서 쟁여두는데, 이번엔 좀 오랜만이긴 했다. 이나 에 비친 그 오만함과 미국 잘났다 주의, COMING ANARCHY에 드러난 기분나쁜 통찰력과 신랄함이 이번엔 뭐랄까, 조금 꺾인 기분. 카플란의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이젠 늙은 모양이다. 온 세상을 돌아다닌 이야기들을 풀어놓긴 했지만 대부분은 '지난 이야기'들이고, 이번 책의 전반부는 거의 다 자신이 읽고 공부한 지정학자들의 책에 대한 것들이다. 이라크전 때 자기가 침공을 선동하고 다닌 것에 대한 회한 비슷한 표현도 아주 조금 들어 있다. "나 역시 글을 통해, 그리고 부시 행정부에 이라크 침공을 촉구한 집..

딸기네 책방 201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