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7

티머시 미첼, '탄소민주주의'

탄소민주주의 CARBON DEMOCRACY티머시 미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생각비행 재미있었다. 며칠 만에 금방 읽었다. 지금 세계가 누리는 민주주의 체제가 석유라는 에너지원 덕에 굴러가고 있음을 지적한 것, 석탄과 석유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힘이 어떻게 조직화됐고 또한 어떻게 해체됐나... 다만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게 석유 지정학에서는 어떤 측면이 있었다, 이런 정도로 얘기해도 되는 걸 모두 '석유 때문이야'로 규정해버리니 앞부분 읽으면서 살짝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석유나 중동에 대해 처음 읽는 이들에게는 유익하고 흥미로울 것 같다. 석유정치와 석유경제를 초창기부터 큰 틀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 패권국가들이나 독재자들이나 거대기업들의 다툼 속에 가려졌던 중동 노동자들의 투쟁을 ..

딸기네 책방 2018.08.19

존 맨들, 지구적 정의란 무엇인가

지구적 정의란 무엇인가 GLOBAL JUSTICE존 맨들. 정승현 옮김. 까치 7/27 딱 봐도 까치에서 나온 책답다. 실은 그래서 이 출판사를 좀 더 좋아하는 면도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스튜어트 화이트의 를 읽다가 결국 못 버티고 -_-;; 존 롤스의 을 사서 읽었다. 둘 다 스크랩도 하지 못했지만. 실은 존 맨들의 이 책도 1월에 읽기 시작해서 7월에야 끝냈다. 그 사이에 이 책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으려나. 이제 만 사놓으면 될 것 같음. 이토록 일관된 디자인과 편집 컨셉트란 정말이지... 울집에 대체 이 출판사 책만 몇 권이 있는지 모르겠다. 몇년 새 나온 까치의 과학책들만 모아놨는데도 얼추 책꽂이 한 칸이 차던데 ㅎㅎㅎ 는 롤스가 정의론에서 뼈대를 세운 개념들에 기대어, 그것을 글로벌 확..

딸기네 책방 2018.08.14

헬레나 크로닌, '개미와 공작'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채 꽂아둔 책들을 꺼내어 읽어야지 하면서 두꺼운 책 목록을 만들었다. 그 중 첫 번째로 꺼내든 것이 헬레나 크로닌의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이다. 사이언스클래식이니 책의 질은 높을 것으로 보이고... 추천사를 읽는데 꽤나 재미가 있었고, 누가 썼나 봤더니 최재천 교수님이다. ^^ ‘협동과 성의 진화를 둘러싼 다윈주의 최대의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의 제목이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미는 협동, 공작(의 그 쓸모없어 보이는 화려한 꼬리깃털)은 성 선택을 상징한다. 다윈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던, 다윈주의의 의붓자식 혹은 다윈주의에 반하는 증거 따위로 생각됐던 이타주의(협동)의 진화와 성 선택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잡아서 그것들이 다윈주의 역사 속에 어떻게..

에릭 리우, '시민권력'

잘 익은 붉은 색 토마토를 하나 떠올려보자. 그 토마토는 6억달러에 달하는 토마토 사업의 중심지 플로리다에서 수확한 것일 가능성이 꽤 높다. 만약 그렇다면 그 토마토는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노예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땄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플로리다의 이모칼리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가보지 못한 곳이다. 토마토를 따는 일은 기계화할 수 없는 것이어서 수확은 언제나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불행히도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받고, 막대한 빚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또 따가운 햇살 아래 이뤄지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수확한 토마토의 양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그렇게 어렵사리 번 돈을 수시로 감독관들에게 빼앗긴다. 조금이라도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권총 개머리판으로 얻어맞고 자..

딸기네 책방 2018.07.02

앤서니 스미스, '민족의 인종적 기원'

오랜만에 제대로 공부되는 책을 읽었다. 앤서니 D. 스미스, (이재석 옮김. 그린비). 재미있고 현란하고 풍부하다. 다 읽고 나니 어질어질. 복잡하고 엄밀한 내용을 학술적으로 꼼꼼히 짚어가면서, 일관된 구조로 짜맞춰가면서,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방대한 양의 사례와 정보를 퍼부어가며 적어놨으니 그럴 수밖에. 번역이 껄끄럽다 싶은 부분이 적지 않지만 원문이 아무래도 그렇지 싶다. 글쟁이의 책이라기보다는 학자의 글이고, 꼬이거나 모호한 문장을 얼추 넘겨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이만한 넓이와 깊이의 책을 읽는 데에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할 수 있다. 생각보다는 다 읽는 데에 시간이 덜 걸렸다. 일주일. 이 정도면 쾌속 돌파한 셈이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는 1986년. 베네딕트 앤더슨의 와 에릭 홉스봄, 테..

딸기네 책방 2018.06.17

리처드 하스, '혼돈의 세계'

리처드 하스는 국제뉴스에서 꽤 자주 이름을 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포린어페어스'로 유명한 미국외교협회(CFR)의 회장이고, 미국 외교문제에 대해 유명 언론들에 적잖이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지 H W 부시 시절에 백악관 특보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남아시아 담당 특보를 했다고 한다. 리처드 하스의 (김성훈 옮김. 매일경제신문사)를 읽었다. 부제가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이라 달려 있다. 영어 제목은 A World in Disarray 이고 부제는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다. 한글판은 제목의 Disarray를 '혼돈'으로 옮겼고 부제에다가 '한반도의 운명'을 덧붙였다. 번역은 매끄럽다. 다만 번역자는 하스 스스로 "한국에서는 Disarray..

딸기네 책방 2018.06.03

아구스틴 푸엔테스, '크리에이티브'

크리에이티브-돌에서 칼날을 떠올린 순간아구스틴 푸엔테스. 박혜원 옮김. 추수밭. 5/24 요새 이런 책을 어쩐지 연달아 보게 된다. 태영씨가 보내준 책을 회사 책상에 놓아두고 있다가 펼쳐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스티븐 핑커의 (지난 주 참석한 독서모임의 어느 분이 '간지나게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으로 첫손 꼽았던)나 크리스토퍼 보엠의 , 제러미 리프킨의 와 프란스 드 발의 , 그리고 넓게 보면 유발 하라리의 . 각기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진화했다고 말하는 책들이다. 는 주로 고인류학적 증거에 초점을 맞춰서 인류가 서로 협력하며 진화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창의성'이라는 것을 결합시켰다. 누군가의 창의성이 협력을 통해 강..

프리먼 다이슨, '과학은 반역이다'

"50년 전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훌륭한 수학자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나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에서 일반인에게 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하디는 응용할 데도 없는 아주 쓸모없는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인생을 허비했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부의 분배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삶의 파괴를 더 노골적으로 조장할 때, 흔히들 과학이 쓸모 있다고 말한다.' 사방에서 전쟁의 포성이 귀청을 찢고 있을 때, 하디는 이 말을 썼다." (42쪽) 다시, 프리먼 다이슨. 이번 책은 (김학영 옮김. 반니)인데, 서평과 에세이가 적당히 섞여 있다. 이전 책들에서 이미 읽은 에피소드들이 좀 겹쳐 있고, 내가 접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책에 대한..

베른트 하인리히, '귀소본능'

수세기 동안 뱀장어 새끼를 본 사람이 없을뿐더러 아직까지도 녀석들이 알을 낳는 모습은 목격된 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가 자라 뱀장어가 된다고 믿었다.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파리처럼 생긴 뱀장어 치어는 대서양에서 목격된 바 있다. 가장 작은 치어는 사르가소해의 버뮤다 제도 남쪽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뱀장어의 원산지, 다시 말해 산란 장소로 추정된다. 녀석들은 해류에 이끌려 플랑크톤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일 년이 지나 5~6센티미터 정도 자라면 제법 뱀장어의 형태를 갖추게 되지만 몸체는 여전히 투명하다. 그때쯤이면 녀석들은 헤엄도 치고 냄새로 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생기의 실뱀장어(glass eel)는 연어와 달리 바다 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 2권

어찌어찌 근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 3권을 연달아 읽었다. 첫번째로 읽은 것은 라는 것인데 그런대로 내용이 알차고 내게는 많이 도움이 됐다. 두번째로 읽은 것은 박정훈의 (개마고원)이다. 책 아주 재미있었고 훌륭해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맛뵈기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권해주고 싶다. 이쪽 지역에 대한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것이 통 없었는데, 이제야 국내 작가가 쓴 라틴아메리카 개론서가 생긴 느낌. 그래서 몹시 반가웠다. 저자는 오래 전 멕시코에 7년을 체류했고 이후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분이라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 넓은 지역의 기나긴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것들이어서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와 박히..

딸기네 책방 201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