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로빈후드- 뉴욕에서 몬드라곤까지, 지구를 바꾸는 도시혁명가들
박용남. 서해문집. 11/28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자동차 정점 이론(Peak car)을 둘러싼 논쟁이 아주 거세다. 1인당 자동차 주행거리(1년 동안의 자동차 주행거리를 인구 수로 나눈 것)가 적어도 8개 주요 선진국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가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자동차 주행거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보유 대수도 급증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자동차 인프라를 계속 확대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관리하고 있다.(16쪽)
투자회사 어드바이저 퍼스펙티브의 더그 쇼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주행거리가 2005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3년 4월까지 약 9% 하락했다." 이는 1995년 1월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17쪽)
미국 드렉셀대학교 사회학 교수 미미 쉘러는 "우리는 지금 장기적인 문화변동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터넷 덕에) 굳이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할 필요가 없어지고, 도심 재개발 정책에 따라 교외 지역이 점차 줄어든 것, 차를 함께 타도록 도와주는 이동전화와 카풀 앱의 출시 및 이용증가 등을 주요한 이유들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로 뉴욕 시가 최근 도입한 공용자전거 프로그램, 교량 및 터널 통행세 급등, 카셰어링 확대 등을 들고 있다. (19쪽)
이런 변화를 감지한 자동차 회사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드는 자동차 대신 '이동수단(Mobility)' 회사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이동수단을 자동차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대 변화에 맞게 외연을 최대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20쪽)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와 보고타의 인너링 고속도로 외에도 뉴욕 웨스트 사이드 하이웨이, 샌프란시스코 엠바카데로 프리웨이, 포틀랜드 하버드라이브 대로, 보스턴 빅디그, 독일 베를린 A-100터널, 우리나라의 청계천 등 도시 안에서 고가와 하상도로 같은 주요 간선도로가 사라지거나 변형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처럼 자리잡고 있다. (50쪽)
엔리케 페냐로사 전 보고타 시장이 말했듯 "모든 시민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100명이나 150명을 태우는 버스는 나홀로 승용차보다 150배 이상의 도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도로 공간의 재분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서 도시는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51쪽)
자치단체가 주민참여의 제도화를 통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자본이나 토지 이용을 규제할 수 있는 자치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 일본 후쿠오카 야나가와 시의 수로 재생 역사는 주민의 봉사로 환경을 개선하고, 그것이 지역경제 발전을 유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야나가와 시는 시가지 사방 2km에 60km에 달하는 수로가 있다. 그런데 고도성장으로 팽창한 사업체나 가정 폐수가 무작정 방규돼 악취가 나고 불결한 개골창이 되고 말았다. 시청에서는 수로를 콘크리트로 복개하는 하수도 계획을 수립,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담당계장이었던 히로마츠 츠다가 이 계획에 의문을 품고 연구·조사를 한 결과, 지반 침하가 일어나기 쉬운 지질을 가진 야나가와 시가 수로를 잃으면 커다란 재해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시장의 동의를 얻어 하수도 보조금을 돌려 수로 정화를 하기로 했으나 방대한 수로를 시 예산만으로 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100회 이상의 집회를 열어 주민들에게 수로 재생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옛날의 아름다운 수로를 기억하고 있던 노인들의 찬성을 얻어내 시민 전체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그로 인해 1년에 한 번씩 수문을 닫고 시민들이 수로 바닥을 긁어내고 해변을 청소하거나 수초를 제거하는 무상봉사가 이뤄졌다. 이러한 공동 정화작업을 통해 시민 간에 긴밀한 유대감이 생겼고, 수로를 이용한 축제가 부활하는 등 야나가와 시는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229~231쪽)
1950년대 후반 경제발전기는 이탈리아 건국 이후 환경파괴가 가장 많이 진행된 시기이면서, 최대의 환경보호단체인 '이탈리아 노스트라'가 탄생한 시기다. 그전까지 역사적 거리의 보존은 주로 문화적 관점에서 추진됐거나 관광산업 차원에서 전개됐다. 일부 도시는 관광객의 거리로 변해버리고, 시민 부재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네치아다.
이와는 달리 역사적 거리의 보존 목적을 문화재·관광재 보존뿐만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환경까지 포함하는 도시 재생으로 발전시킨 곳이 볼로냐다. 볼로냐는 교외에 신도시를 만들고 시의 기능분산을 도모하려고 했으나 재정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 1969년 방침을 전환해 역사적 거리의 보존·재생이라는 획기적인 원칙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볼로냐 방식'은 공공의 재산이어야 하는 역사 지구를 자본가로부터 주민에게 되돌려주는 혁명적인 방식으로서 역사적 거리를 보존하면서 현대 시민생활을 재생시키는 지역개발을 의미한다. (232쪽)
볼로냐 시 당국은 전체 상면적(건물의 바닥면적)의 30%에 해당하는 공간에서는 재개발 이전의 집세와 같은 수준으로 주민에게 임대해준다는 내규를 만들어, 도심이 부자들에게 점유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233쪽)
숲의 보존을 위해 사유지라도 수목을 벌채할 때는 시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도심지의 80%를 오염제한 지역으로 설정해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 자동차 교통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235쪽)
보존하면서 혁신한다는 방식은 산업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볼로냐 시는 '미래의 공장 볼로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금속공업, 섬유공업 등에 존재하는 장인기업과 첨단기술을 연결하고 있다. 장인기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는 장인 기능을 살리고 합리화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공장자동화를 도입하고 있다. 이 내생적 발전은 지역 특유의 정치적 혁신성이 만든 지구주민평의회에 장인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안적 개발이라 부를 수 있다. (234~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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