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딸기21 2015. 2. 1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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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밥을 나누는 약자들의 생존술에서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김경원 옮김. 메멘토




우치다 : 인터넷에서 좋아히는 사람끼리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아주 자유로운 사회가 된 듯한 인상을 받겠지만, 사실 자유와 아나키(anarchy)는 종이 한 장 차이니까요. 매스미디어가 없어지면 대화의 공통 기반이 사라져버립니다. 어떤 사실의 옳고 그름을 세상에 물을 때 논의의 토대가 없어져버리면 여론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매스미디어는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사안의 시비나 진위의 검증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환상으로 유지됩니다. 그런 것이 붕괴해버리면 다양한 의견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요. 그 점이 바로 내가 두려워 하는 바입니다. (32쪽)

 

오카다 : 자기 기분이 가장 중요한 거죠. 세상의 정보는 자기 기분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약 자기가 무언가를 부정하려고 할 때 자신의 부정적인 기분을 보강하는 정보만 모아들이려 하고그 일만을 즐겁고 보람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자기가 긍정하려고 할 때에는 긍정만 하고요

모 텔레비전 방송국이 한류 드라마만 내보내는 것에 부아가 치민다면, 부아가 치미는 기분을 최대한 존중하고 싶다는 마음에 한류 드라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만 모아들여요. 게다가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 태워 죽이거나 때려잡거나 해서 자기 기분이 유지되도록 만들어요. 그것을 살아 있는 증거라고 여기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명 에너지를 유지시켜 연소하려고하는 겁니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명 에너지는 하루살이로 끝나버리니까요. (39쪽)

 

오카다 : 일자리를 얻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완전히 운에 달렸다는 생각을 전제로, 운이 좋은 사람이 확장형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지요. 자기보다 아랫사람만 식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어린아이뿐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나 부모도 부양하고요. 그렇게 해서 거대 패밀리를 각자가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치다 : 가족제도의 기본은 신체성이지요. 그래서 테크놀로지의 진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같은 솥으로 밥을 지어 먹지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다녀왔습니다” “수고했어요이렇게 여덟 가지 인사말만 적당한 타이밍에 주고받을 수 있다면, 가족관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116쪽)

 

우치다 :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운동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적 대립이라는 도식을 기본축으로 삼지만, 오늘날 말하는 격차론에는 왜 그런지 계급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요.계급투쟁이라면 우리도 논리를 이해할 수 있어요. 어째서 어떤 사회 집단에 권력이나 재화나 정보가 배타적으로 집중되는가, 거기에는 어떤 사회적 역학이 작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충분히 파헤쳐볼 만하니까요. 그렇지만 노인 폐해론은 그렇지 않아요. 연령 이외의 어떠한 사회적 인자도 논외로 제쳐두니까 말이에요.

오카다 : 세대 격차를 떠올린 순간에 관점이 성립한 거예요. “세대가 원인이야. 태어난 시대가 나빴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세대론의 비논리성이나 허점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지요. 지금 열심히 일해 봤자 노인들이나 먹여 살릴 뿐이야, 연금은 돌려받지 못할 테니까 일을 안 하는 게 좋아...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흘러갔고요. (196쪽)


우치다 : 내가 2011년 지은 개풍관은 무도의 도장과 학숙을 겸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사귄 사람끼리 새로운 비즈니스를 한다든가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일도 있습니다. 2년 남짓한 사이에 문하생끼리 결혼한 커플이 네 쌍이나 됩니다. 내가 중매인이니까 사회적으로는 아버지 대신입니다. 지금 우리 집 가까이에 아들 같은 젊은이가 네 명, 딸 같은 젊은이가 네 명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인들이 계절마다 수확물을 보내주면 그들은 벙싯거리며 나누어 가져갑니다. 

이런 타입의 '의사 가족공동체'가 지금부터 일본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을까요? 매스컴이 보도만 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그런 것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을 저버리면서 대기업의 수익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아베 정권의 행태를 보면, 이런 식으로 시민들이 생활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조직'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 자위적인 공동체 조직의 기본원리는 '증여'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는 증여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등가로 교환하는 상거래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인들로부터 다양한 지식이나 기술, 보호를 증여받아왔고, 그 덕분에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것을 자원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 혼자만 챙겨 쌓아놓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패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패스를 이어가기 위한 장소도 내가 먼저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던진 패스를 받아줄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주축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꾸려내어 다음 세대로 패스를 이어줄 것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규모도 기능도 가지가지인 공동체가 느슨하게 연합해가는 사회, 사람들이 그 속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실현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11쪽)


우치다 :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전부가 패스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패스가 이루어지는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이 게임에 참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죄다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자기 돈으로 사와!"라고 말하는 건 사실 패스를 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패스하는 게임은 빈손으로 참가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인간적인 성숙을 꾀하기 위한 인류학적 장치니까요.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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