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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 니켈과 기후협약, 2024년 세계 선거와 기후 정치

올해 세계에서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80개국이 넘는다. 특히 유권자 규모가 큰 인도, 인도네시아, 미국, 러시아 등의 선거가 줄줄이 잡혀 있어 연초부터 ‘선거의 해’라며 주목하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면 2024년은 ‘민주주의의 해’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러시아 대선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뻔한 승리로 끝났고, ‘세계 최대 민주국가’라는 인도에서는 무슬림 차별을 공고히 해온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바라티야 자나타(BJP) 당의 집권이 연장될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이 이번에도 역시나 반이민 선동을 무기 삼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도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해가 되기를 기대하기엔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다.기후대응 측면에서는 어떨까. 과학전문지 ..

[구정은의 ‘수상한 GPS’] 유권자 10억명, 인도 총선의 ‘1인 투표소’

4월 19일 인도 총선거가 시작됐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인도. 명목 상의 의회인 중국 전인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의회를 갖고 있는 나라다. 인도 총선을 훑어보기 전에, 먼저 작은 마을로 가보자.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악지대, 중국과 늘 국경분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곳에 Anjaw 라는 지역이 있다.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도 완전 동쪽 끝자락인데 중국, 미얀마 국경과 만나는 곳이다. 거기에 말로감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투표소가 하나 있다. 인도 총선이 시작된 4월 19일, 그 투표소는 투표가 완료됐다. 투표율 100%. 유권자가 단 한 명이다. 44세의 소켈라 타양이라는 여성인데 오후 1시에 투표를 마쳤다. 소켈라는 “투표권을 ..

[구정은의 ‘현실지구’] 코끼리와 다이아몬드 사이, 보츠와나의 길

이달 초 동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가 독일에 “코끼리 2만 마리를 보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독일 환경부가 밀렵을 걱정하며 사냥동물 수입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보츠와나의 모크베시 마시시 대통령이 코끼리떼를 독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이었다. 지난 달 영국이 아프리카 야생동물 사냥을 제한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장관은 “코끼리 1만 마리를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 보내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대로 당신들도 동물들과 함께 살아보라. 농담하는 것 아니다.” 마시시 대통령은 독일 매체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코끼리를 신경쓰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그는 “베를린에 ..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IS 호라산'과 푸틴

모스크바 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음악 공연장에 3월 22일 괴한 4명이 들이닥쳐 총탄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고, 소이탄으로 공연장에 불을 질렀다. 140명 가까이 사망하고 180여명이 다쳤다.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이 자신들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공격에 가담한 괴한들 중 한 명이 촬영한 동영상도 공개했다. 2004년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진압 과정에서 314명이 목숨을 잃었던 ‘베슬란 사건’ 이래 러시아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테러 공격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공격을 야만적인 테러행위라고 불렀고, 3월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러시아 당국은 테러 용의자 4명을 비롯해 11명을 체포, ..

아이켄베리, <승리 이후>

승리 이후. G. 존 아이켄베리. 강승훈 옮김. 한울. 4/13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아이켄베리를 여러번 언급하셔서 사서 읽었다.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의 주요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는,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힘을 억제하는 국가의 능력과 메커니즘은 변화해왔다. 그 결과 주요한 전쟁 이후에 출현한 질서의 성격 역시 변화해왔다"라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전략적 억제'를 실행하는 승전국의 능력은 과거 몇 세기를 걸쳐 진보해왔다는 것이다. 국가의 힘에 관해 자의적이고 무차별적인 행사를 억제하고 승전국에 바람직한 영속적인 전후질서를 고정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제도전략에 의존하게 된 것은 1815년의 전후구축이 최초의 예였다. 둘째는, 정치적 관리 메커니즘으로 제도를 활용하려는 주도국의 인센티브..

딸기네 책방 2024.04.14

에콰도르와 멕시코가 왜 싸우느냐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세차 작전’. 에콰도르 경찰이 5일 수도 키토에 있는 멕시코 대사관의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호르헤 글라스 전 부통령을 체포했다.글라스 전 부통령은 좌파 성향의 정부 시절이던 2013~2018년 부통령을 지냈다. 2017년 말 브라질 건설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20년에는 불법 선거 자금 사용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런데 그 뇌물 사건이 어떤 거였느냐. 이른바 ‘세차작전’, 브라질의 반부패 수사였다. 좌파 노동자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노동자당 인사들, 특히 대통령 지내고 작년에 재집권한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에게 부패 혐의 뒤집어씌우려던 우파의 정치공작 성격+막강한 검찰 권력이 그 작전을 주도. 언론플레이로 의..

[구정은의 ‘수상한 GPS’]남중국해와 필리핀, 거기서 일본이 왜 나와?

3월 초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로 다시 갈등을 빚었다. 발단은 제2토머스 암초에서 불거진 충돌이었다. 제2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 남중국해의 지명들이 대개 그렇듯이 여러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까닭에 이름이 여럿이다. 필리핀 말로는 아융긴 숄, 중국어로는 런아이자오라 부른다고 한다.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난샤군도)에 있는 산호초인데 스프래틀리 군도가 바로 중국, 브루나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곳이다. 특히 중국은 제2 토마스 숄을 포함한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자기네 영유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제2토마스 숄’, 뭍으로 올라온 배 하지만 제2토마스숄은 필리핀 해군이 1999년 첫 상륙한 이래로 ‘실효 지배’를 해왔다. 당시 중국과 ..

박건영, <국제관계사>

국제관계사 박건영. 사회평론아카데미. 4/7 정말 재밌었다. 몇 년 새 현대 세계사 책을 좀 읽었지만 사실상 유럽사였는데 이 책은 국내 학자의 책이라 아시아, 한국과의 연관성이나 맥락을 잘 설명해줘서 넘넘 좋았다.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고. 뒤에 가서 공개된 문헌 자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20세기 세계사 책으로 최고다!!!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을 안보와 동맹이라는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면 전쟁의 책임 소재가 모호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 독일과 관련하여 자신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나 생존을 위해 할 수 없이 엮여 들어갔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관련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독일의 책임을 부각하는 관점이 크게 대두하였다. 독일이 의도적으로 ..

딸기네 책방 2024.04.08

E H 카, < 20년의 위기>

E H 카, 김태현 편역. 녹문당. 3/16 E H 카가 전간기에 쓴 글과, 2차 대전 직후에 쓴 글을 함께 묶었다.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국제정치학을 현실주의로 견인해온 학자라고 하지만, 카가 말하는 것은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하다’ 쪽에 가깝다. 아주 재미있었다. 명료하고, 날카롭고. 전쟁은 여전히 군인들의 문제였고 국제정치는 외교관들의 문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와 같은 경향은 끝이 났다. 전쟁은 더 이상 직업군인들의 일만이 아니게 되었고 국제정치가 직업외교관들의 손에 의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뚜렷한 물증 없이) 밀실외교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주로 영미의 대중은 국제정치를 대중화하려는 운동을 선도했다. 그러나 밀실외교가 성행했던 이유는..

딸기네 책방 2024.04.07

푸바오와 ‘판다 외교’

미국 닉슨 시절의 미-중 화해와 판다 외교가 유명하지만 판다가 정치적 선물이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다만 외교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청나라 때 쓰촨이나 티벳 동부 주민들이 중국 정부에 판다를 공물로 보냈다고 한다. 현대 판다 외교의 첫 번째 사례는 1941년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이 국민당을 지원해주는 미국에 판다를 보낸 것이다. 미국에 판다가 간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1937년 미국인이 시카고 동물원에 처음 판다를 들여갔는데 외교적 차원에서 처음 간 것이 1941년 여름이었다는 얘기. 장제스 부인의 '판다 외교' 쑹메이링 여사가 살아 있는 판다를 포획해오게 해서 충칭으로 잡아온 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으로 보내게 했다. 충칭에 있던 미국 라디오 리포터가 사회를 맡아서 미국 황금시간대에 중계되도록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