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 건설사.
박진빈. 앨피
전작 <도시로 보는 미국사>와 문제의식이 이어져 있으면서, 논지는 훨씬 명확하다. 짧지만 재미있다.
이 책 먼저 읽고, 게리 거스틀의 <뉴딜과 신자유주의>를 읽고,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좀 더 긴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 보면 좋을 것 같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개혁의 시대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한 시대와 겹친다는 점이다. 어떻게 진보적 개혁이 제국주의와 같이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에서 혁신주의 개혁의 시기가 제국주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내의 빈민과 노동자 복지 문제를 고민하던 시대에, 미국인들은 어떻게 외국에 대한 식민화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당시 혁신주의자들 가운데 다수가 제국주의자였으며, 거의 대부분 전쟁을 지지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증폭된다. 뉴욕의 슬럼철거운동과 행정 개혁으로 유명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4년 미국의 26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강력한 팽창 정책을 펼친 제국주의자이기도 했다.
본디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은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면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혁신주의와 제국주의의 공존에는 어떤 배경과 뿌리가 있을까?
혁신주의와 제국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유사하다. 둘 다 더욱 강력하고 위대한 미국 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그 태생이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는 혁신주의운동 곳곳에 숨어 있던 인종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의식에서 바로 확인된다.
-21-22
옥타비아힐 연합
여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자선사업은 빈민을 도리어 게으르게 만든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복지 혜택과 관련해서는 항상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했다.
첫째, 무상 원조는 반드시 최저 임금보다 낮아야 한다. 둘째, 지나 치게 쉽게 수혜받을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셋째, 각종 원조는 기본적으로 위급 상황에서나 이용할 만한 일시적 도움이어야 한다.
이런 논리는 결과적으로 수혜자나 시혜자들이 모두 자선이나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구호기관의 구호 대상이 되는 것은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에 부담을 주는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53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페리스 관람차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비교적 문명에 가까운 민족들(알제리• 튜니스• 카이로 • 무어• 독일• 터키)이 배치되었고, 멀어질수록 야만으로 규정된 민족들(자바• 베두인· 사모아)이 자리했다. 인종주의적 기획의 절정은 사모아 마을 옆에 위치한 동물원이었다. 페리스 관람차에서 동쪽으로 걷는 관람객들은 무어인 마을, 터키 마을, 자바섬, 사모아 섬의 부족들을 차례대로 보면서 스미소니언의 기획대로 문명에서 야만으로의 타락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동물원을 만나게 된다!
-111
1904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
필리핀 박람회장의 규모는 실로 방대했다. 전시장은 인조 호수 한복판에 떠 있는 19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섬 위에 단독으로 마련되었고, 그곳에 수십 개 부족 출신의 필리핀 원주민 1,200명이 옮겨와 박람회 기간 내내 실제로 거주했다. 각 부족들은 그 '야만' 정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지능이 가장 높은" 비사얀, "모하메트 맹렬 추종자인" 모로, "야만인" 바고보, "원숭이 같은" 네그리토, "만화 같은" 이고로트•••••
필리핀 박람회는 필리핀인들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한편, 또한 이것이 적절한 지도와 교육으로 개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필리핀인의 문명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증명한 이들은 미군 장교에게 훈련받은 뒤 필리핀 자체 경비를 맡고 있던 현지인 정찰대와 경찰대였다. 필리핀에서 건너온 700명의 정찰대와 경찰대원들 역시 인공 섬에 거주했지만, 이들은 정해진 행군과 악단 연주 시간에만 관중에게 공개되었다.
-128-130
〈자영농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목축업자들과 주요 철도회사들이었다. 들소와 원주민이 쫓겨난 넓은 들판은 얼룩 소로 채워졌다. 목축업자들은 얼룩소를 방목해서 '엄청난 이윤을 남겼다.
목축업자들보다 더 큰 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철도회사였다. <자영농법>이 통과된 지 불과 한 달 반 만에 통과된 〈태평양철도법 The Pacific Railway Act》 (1862년 7월 1일)은, 미시시피 강과 태평양 사이의 전신선 및 철로 건설을 맡는 회사에게 토지를 수여하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가설되는 철로 주변 200피트(60미터)의 땅이 철도회사에 무상으로 주어졌다. 이 법은, 철도회사를 거대 부동산회사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145
이렇게 개발 논리를 앞세워 서부를 정복’하는 데에만 골 몰하는 듯 보이던 미국 정부가, 19세기 후반 들어 갑자기 자연보호와 보존의 논리를 발전시킨다. 이 시기, 미 전역으로 자연보호운동이 확산되는 데에는 1901년 대통령에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공이 컸다. 루스벨트는 일찍이 1880년대에 야생동물 사냥에 나섰다가 서부의 자연이 그간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나 루스벨트와 같은 자연보호 운동가의 의도는 개발 논리에 대한 후회나 재고가 아닌, 백인식 개발의 완성에 있었다. 국립공원과 보호지의 설립이, 계획 과 통제라는 서부 정복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147-148
1899년 4월 11일 체결된 파리조약으로 스페인령 섬들에 대한 미국의 통치권이 확정되지만, 미연방 안에서 이 섬들이 어떠한 지위를 갖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 영토와 주민의 지위를 규정한 법률 제정과 대법원 재판 사례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복잡한 성격을 이해하려 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파리조약 이후 획득된 영토의 지위가 명확히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전까지 스페인 국왕의 백성이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일단 시민권 없는 미국 국적지 non-citizen U.S. nationals로 간 주되었다. 다시 말해, 미국의 통치권에 속하지만 미국 안에서 완전한 권리나 의무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불완전한 지위는 1900년 5월에 제정된 <포레이커법the Foraker Act〉으로 명문화되었다.
〈포레이커법〉은 푸에르토리코의 장래를 결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민간 정부를 구성하되 행정부의 수반은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며, 행정부 각료는 여섯 명의 미국인과 다섯 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하고, 상원은 임명제로, 하원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선출된 35인으로 구성되었다. <포레이커법>은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미국 시민 권을 주지 않았다. 대신 거주 목적에만 적용되는 '푸에르토리코 시민권' 개념을 신설했다.
-163
[구정은의 ‘수상한 GPS’] 푸에르토리코가 ‘쓰레기섬’이라고?
1901년 "합병되지 않은 영토'와 본토(미국)의 관계를 규정하는 일 련의 판결들이 대법원에서 결정된다. 이를 싸잡아 '도서 판례 Insular Cases'라 일컫는데, 이 판례들로써 미국은 비로소 새로 복 속한 영토의 지위를 명확하게 확정짓는다.
1901년의 도서판례를 구성하는 총 아홉 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중 일곱 건이 푸에르토리코와 관련돼 있고, 한 건은 하와이, 나머지 하나는 필리핀 관련 사건이었다.
아홉 개의 사건은 주로 두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하나는 푸에르토리코나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품에 관세를 붙일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이들 합병되지 않은 영토' 주민들이 미국 의 배심원제도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하는 문제로, 결국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합병되지 않은 영토'는 미국인가, 미국이 아닌가?
-164
도서판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판결은 네 번째, '다운즈 대 비드 웰Downes vs Bidwell' 판결이었다.
재판부의 논리는,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이 점령하기는 했어도 국회가 합병incorporate'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고로 뉴욕 관세청이 부과한 관세는 합법적이라는 것이었다.13
다운즈 판례는 이전까지 혼전 양상을 보인 대법관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정리해주었을 뿐 아니라, 나머지 도서판례들과 이후의 도서 지역 관련 사건들의 판결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준거틀을 마련했다. 바로 ‘합병 이론'이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의 의회는 새로운 영토를 미국 안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권력체이기 때문에, 의회가 합병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리 미국이 획득한 영토라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주권에 복속되었고 소유되었기 때문에 국제적 의미에서는 외국이 아니지만, 미국에 합병된 것이 아니라 단지 소유지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내무적인 의미에서는 미국의 외국이라는 것이다.“(판결문)
그리하여 미국은 이 영토들을 내무적 외국으로 규정하여,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의 통치는 정당화하되 이 지역 주민들에게 미국인으로서 갖는 권리는 보장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대법원의 판결은 도서 지역 주민의 시민권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존재를 미국에 대한 일종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165-167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주의와 우생학은 본질적인 특성들을 공유했다. 과학적 탐구력에 대한 믿음, 공공 개념을 개인권보다 우선시하는 것, 국가 정책으로 효율적인 사회통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이 그것이다.
즉, 혁신주의는 과학적 성취(ecience, technology)에 기대어 정책을 추구하고, 그 정책들을 통해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추구하는 한편, 그 결과로서의 사회통제(social control)를 지지한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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