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쟁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안혜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2/28

개개인의 주도권과 자유 시장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석유 산업에 흔적을 남겼듯이, 공동의 노력과 수뇌부에서 지정한 우선 순위가 중요한 아시아식 자본주의는 세계로 뻗어나가며 배터리와 리튬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일본 기업 소니에서 최초로 상용화했고 일본이 핵심 부품 생산에서 여전히 확실한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은 배터리 기술이 정점을 찍기 전부터 대대적인 전기자동차 보급에 나섰다.
실제로 중국에는 산업계와 소비자들을 위한 전반적 체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모든 단계가 중국 국경선을 넘지 않고 이루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배터리들은 아마 외국인은 들어본 적도 없을 여러 전기자동차 브랜드에 공급된다. 중국의 배터리 산업을 지켜보며 가장 감탄하게 되는 사실은 정부가 대부분의 생산공정을 면밀하게 감시해 EU의 중앙 집중식 시장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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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전기화 혁명이 전기자동차를 광범위하게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자전거가 점차 인기를 얻는 방식으로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
납축전지가 리튬 이온 배터리로 대체되자 비약적 발전이 있었고, 기존보다 6분의 1 크기의 배터리로 32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5만6000대였던 전기자전거가 2008년에는 2100만 대 이상으로 폭증했다. 전기자전거가 성공을 거두면서 리튬 이온 배터리 수요도 증가해 관련 시장이 확대되었고, 이후 중국이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강대국으로 변모할 수 있게 한 자본도 축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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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략을 투명하고 공정한 합의로 본다. 계속 성장 중인 자국의 거대한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라는 것이다.
중국이 자국 산업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비결은 이뿐이 아니다. 방정식의 또 다른 요소는 보조금이다. (외국 기업이 중국 내 협력사와 합작, 현지 생산하는 단계를 통해) 기술 이전이 끝나면 중국은 산업 전체에 체계적으로 재정 원조를 시작한다. 태양전지판 산업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느 시점부터 중국의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태양광발전 프로젝트에 자국산 태양전지판을 80퍼센트 이상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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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기자동차 산업을 키운 것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1년 만에 시행된 ‘10개 도시, 1000대 전기자동차‘ 시범 프로그램이었다.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도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한 구역을 정해 사회적•경제적 실험을 벌이는 전통은 중국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경제적 특성이 프로그램의 목적에 적합한 동시에 정치적 저항은 약하고, 아울러 중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할 만한 도시나 지방이 선택된다. 또한 위험부담이 클수록 프로그램이 잘못되더라도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게 베이징에서 가장 먼 곳에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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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디의 사례)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인접 영역, 또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 방향을 과감히 트는 능력은 중국 기업가들의 특징이다. 서구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전문화와 핵심 역량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중국식 접근법은 더 실용적이다. 모든 것을 아예 바닥부터 새로 배워야 하고 초기 생산품의 품질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수요가 있는 시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비야디는 창립하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제 배터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고, 중국에서는 가장 큰 배터리 생산 업체다.
2003년 비야디는 국유기업이었던 시안진촨자동차를 인수했다. 배터리는 만들 줄 알았으므로, 자동차 만드는 법을 최대한 빨리 배워야 했고, 가장 빠른 길은 기업 인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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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리선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비야디의 시작이 어설픈 모방과 자체 해결을 기반으로 했다면 톈진리선은 2억7200만 달러의 초기 자본금과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누렸다. 그 결과 이 국유기업은 개인이 세운 배터리 회사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을 해 냈다. 일본에서 최첨단 배터리 생산라인을 사들인 것이었다. 비야디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에서 힘겹게 일하는 동안 텐진리선은 완전히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운영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모토로라, 필립스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60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양극재는 리튬 인산철 LFP, 니켈•망가니즈•코발트 NMC,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NCA, 리튬 코발트 산화물 LCO이다. 리튬은 어떠한 종류의 양극재든, 즉 LFP 양극재든 NMC 양극재든 NCA 양극재든 LCO 양극재든 반드시 들어가는 유일한 금속이다. 니켈은 NCA 양극재와 NMC 양극재에는 들어가지만, LCO 양극재와 LFP 양극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코발트도 LCO 양극재, NMC 양극재, NCA 양극재에는 쓰이지만, LFP 양극재에는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리튬은 모든 양극재에 들어가고, 심지어 음극재의 경우에 도마찬가지다.
-61
신장, 소련, 중국
베이징은 1938년 마오쩌둥의 동생 마오쩌민을 신장의 회계 담당자로 임명할 정도로 소련의 영향력을 우려했다. 마오쩌민은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신장성을 장악했던 군벌 성스차이가 소련의 차관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 소련은 베이징이 줄 수 없는 것들을 제공했다. 자본, 광물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공학 지식 그리고 국제 자원 시장에 진입하는 경로였다. 신장은 스탈린에게 석유와 금뿐 아니라, 베릴륨, 탄탈룸, 몰리브데넘, 텅스텐처럼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활용되는 금속들도 주었다.
성스차이가 소련을 선호한 이유는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스탈린이 서부 전선에서 나치에 밀리는 듯하고, 특히 소련의 비밀경찰이 여러 동맹국에서 숙청을 자행한 1942년부터는 점점 신변의 위험을 느껴 동맹 관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장제스와 손잡았다.
-64-65
중국 기후대응
결국 중국에서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를 끌어낸 것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의 압력이었다. 대도시, 특히 수도의 스모그 때문에 기존과 같은 방임 정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중국 정부가 마침내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로 하자. 그 효과는 아주 빨리 가시화되었다. 가정집에서 석탄을 태우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감독관들이 석탄 보일러를 철거하고 대신 전기나 가스난로를 설치해 주었다. 난방 시설이 다시 마련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겨울인데도 몇 주씩 냉골에서 버텨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안티모니antimony 같은 희소금속부터 알루미늄 같은 비철금속까지 국제적으로 대량 거래되는 모든 금속의 제련소와 광산이 영향받았다. 중국은 구리, 납, 아연, 주석, 알루미늄을 정제한 제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이 중에 상당량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만들어지는데… 중국 정부가 갑자기 오염 물질의 배출 허용 기준을 하향하고, 실제로 지켜지는지 철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재처리 기술을 도입할 여력이 없는 소형 기업들이 대거 문을 닫았다.
-86-87
간펑리튬
기업의 지배 구조와 투자자 관리는 서구의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가족기업이나 국유기업이 주를 이루는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 기업이 독자적 개체로 유지될 수 있도록 소유주나 고위 경영층을 분리하면서 안정성과 운영상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지배 구조 모델은 특히 장시성의 재계에서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다.
간평리튬의 확장 전략은 세 갈래로 짜인 듯하다. 중국 안에서는 기존 공급망을 완성하기 위해 기업들을 인수·합병한다. 커다란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전략이다. 세계시장에서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배터리 등급으로 가공할 수 있는 리튬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과 중국 밖의 투자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89
현재 세계 최대의 리튬 생산 업체인 앨버말은 투자자들이 솔깃해할 발언들을 쏟아낸다.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미국의 상장기업으로서는 더없이 건전한 판단이지만, 전략적 관점이 부족하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당사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듯이 중국 기업들의 판단은 안정된 공급망과 저렴한 자원을 통해 교통수단의 전기화를 실현하려는 정부의 전 략에 맞춰 조정되어야 한다. 중국처럼 거대한 나라에서는 리튬과 배터리, 전기자동차 산업을 적절한 규모로 발전시켜야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전지판 산업에서 같은 경로를 거쳤다. (알루미늄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에서도) 중국의 생산량은 계속해서 증가했고, 시장점유율도 약 1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이상으로 증 가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알루미늄 가격이나 경기 흐름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생산량을 늘려갔다.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중국의 공급망 독립 그리고 중국 자동차 산업을 위한 핵심 자원 의 비용 절감이었기 때문이다. 주주 가치의 최대화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94-95
일본은 첨단 기술 산업의 국제적 공급망에서 아주 민감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확히 정중앙에 자리한 채 중국에서 자원들을 사들여 각종 전자 산업의 핵심이 되는 부품이나 고급 화학물질의 형태로 가공한다.
이는 전자 기기, 특히 휴대전화 생산으로 추진력을 얻은 한국 기업들이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102
테슬라는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배터리를 만들지 않는다. 네바다에 있는 기가팩토리에서는 사실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이 셀을 생산한다. 양극재는 스미토모 금속광산에서 만든다.
-124
중신은행은 중국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로 한때 중국 국가부주석을 역임하기도 했던 룽이런이 설립했다. 룽이런 일가는 1949년 이전의 중국에서 자본가 계급이었던 가문으로는 드물게 공산당과 협력함으로써 '붉은 자본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롱이런이 당적을 가졌던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고, 그가 사망한 후에야 알려졌다.
-111
앨버말은 중국 기업들처럼 공격적으로 국외 자산을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칠레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지는 데 만족하는 듯하다.
톈치리튬과 간평리튬도 이익을 내기 위해 운영되지만, 이익만을 따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고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기억하기 때문이 다. 따라서 두 기업은 사업적 판단을 내릴 때 자사의 경제적 이익과 국가의 전략적 고려 사항을 동시에 고민한다.
-121
흥미로운 질문은 서구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중국과 경쟁할 뜻이 있는지다. 그들은 이미 각자 구축해 온 개발 모델을 고수할까, 아니면 중국의 방식을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모방하려 할까. 혹시 두 가지 접근법을 어떻게든 혼합하지 않을까.
한국은 압력을 행사하는 무리에 끼지 않았다. 기적에 가까운 한국의 경제성장은 대부분 정부가 선택하고 지원한 특정 시장에서 수출 중심 산업을 키운 결과였다. 즉 최소한 과거에는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과 벌이는 경쟁은 다면적이다. 한 가지 방법은 비판을 가해 중국식 모델을 약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용할 수 있는 법적 체계 안에서 중국식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다. EU와 미국은 정확히 후자처럼 하고 있다.
-122
칠레
유리한 조건은 리튬뿐이 아니다. 이 나라는 전기 가격이 아주 저렴한데, 특히 태양광발전이 활발해 2025년에는 메가와트당 가격이 15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내 평균 전기 가격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런던의 거의 모 든 우버 운전자들이 유지비를 따져서 전기자동차로 옮겨간 것을 생각한다면, 칠레에서는 관련 산업으로의 유인이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또한 칠레는 세계에서 구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전기자동차에는 구리가 네 배 정도 더 들어간다. 게다가 미래에는 충전소나 전기자동차 보급에 필요한 관련 기반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구리 배선 수요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동박은 전기자동차뿐 아니라 가전제품 산업에서 사용되는 모든 배터리의 필수 요소다.
-167
리튬과 환경
(리튬 추출은) 에너지 집약적 과정이지만 적절한 환경에서는 무척 친환경적이다. 아타카마염원처럼 가물고 화창한 지역에서는 리튬을 회수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70퍼센트 정도가 태양에서 나온다.
-169
염원에서 리튬 1톤을 생산하려면 약 2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리튬 추출이 수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엄청난 물을 소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염원 내의 그리고 근처의 담수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리튬 산업에서 선호하는 이론은 염수가 함유된 대수층은 어떤 식으로든 식물과 동물, 사람이 소비하는 담수 대수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과 비정부기구들은 염수를 퍼 올리면 깨끗한 물이 빠져나간 물을 대체하게 되어 지하수의 미묘한 균형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염원 내 수자원 문제에 관한 조사를 리튬 기업들에 맡긴 탓에 누가 옳은지 검증할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196
채굴과 원주민
(아르헨티나의 올라로스 카우차리 염원 프로젝트에서) 지역공동체들이 매년 받는 보상금은 2만 5000달러에서 6만 5000달러 사이로, 탄산리튬을 3톤에서 10톤까지 판매했을 때 얻는 수입과 동일하다. 2019년 올라로스카우차리염원에서 시설을 운영한 한 기업은 1만 2600톤이 넘는 탄산리튬을 생산했다.
-199
볼리비아
볼리비아만큼 '리튬은 새로운 석유'라는 발상이 국민감정이 나 국가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볼리비아는 천연자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고 모랄레스는 이를 극복하려 했다. 랭커스터대학교 명예교수인 리처드 M. 오티는 1993년 발표한 중요한 저서《광물 경제의 지속적 발전>에서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대표적인 예로 볼리비아를 들었다.
리튬 산지인 우유니염원이 있는 포토시 지역은… 은 채굴 과정에서 볼리비아인 800만 명이 죽었고, 그중 대부분은 원주민이었다.
독립한 후에는 스페인 이주민의 직계 후손들, 즉 크리오요가 권력을 쥐었다. 국제 주석 시장의 약 30퍼센트를 좌지우지했던 '주석 거물' 파티뇨스Patinos가문과 아라마요스 Aramayos가문, 호스칠드스 Hochschilds 가문은 18세기와 19세기에 부의 정점을 찍었다.
2003년 남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매장량이 많은 볼리비아의 가스 탐사를 두고 충돌이 빚어지면서 일명 '가스 전쟁'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모랄레스 이전) 볼리비아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은 매년 4000만 달러에서 700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19년 볼리비아가 가스 수출로 얻은 수입은 20억 달러에 근접했다.
-206-208
그들은 스미토모가 부채만 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 이 광산들을 인수하면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았다. 결국 스미토모는 불리비아의 관료주의와 상존하는 국영화의 위험 때문에 우유니염원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후 리튬을 직접 추출하는 대신 양극재 시장에 진입해 커다란 성공을 거뒀고, 테슬라의 주요 공급 업체가 되었다.
독자 행보를 택하면서 볼리비아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위험성이 있는 프로젝트라도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입할 뜻이 있었던 기업들은 다른 나라나 배터리 공급망의 다른 영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218
콩고민주공화국
콩고 남서부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코발트와 구리가 묻혀 있는 길이 300킬로미터, 너비 30킬로미터의 지대다. 이곳은 원래 수십 년간 카탕가 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2006년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권력 연장을 위해 행정구 역을 세분화하면서 카탕가는 탕가니카, 루알라바, 오트 카탕가 Haut-Katanga의 세 개 주로 분할되었다.
벨기에는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 이 지역에서 구리를 채굴한 자국 기업 위니옹미네르뒤오트카탕가 Union Miniere du Haut-Katanga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그 여파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미국이 이 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된 우라늄에 나치와 소련이 손 대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콩고가 독립을 이룬 직후인 1960년대에는 벨기에의 광업 기업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벨기에 정부가 직접 카탕가의 지역 배타주의를 부추기고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3년간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대전이 벌어졌을 때 카탕가는 게릴라 세력인 마이마이와 콩고 군대가 충돌하는 전장이 되었다.
21세기 들어 아프리카대전의 기억이 희미해지자 카탕가에 중국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이미 중국에서 소비되는 코발트의 85퍼센트가 콩고산이었다. 오늘날에는 이 수치가 98퍼센트에 달한다.
간단히 말해서 지구상에서 코발트를 찾으려면 콩고 외에 갈 곳이 거의 없다. 중국을 제외하고 배터리에 들어갈 양극재와 그 재료를 어느 정도 생산하는 유이한 나라 한국과 일본의 세관 통계를 봐도 두 나라의 기업들이 수입한 가공 전후의 코발트가 대부분 콩고와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코발트들은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애초에 콩고에서 왔다.
-235-236
코발트를 분쟁 광물로 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많은 전문가가 코발트를 분쟁 광물로 취급하는 것은 콩고의 국익에 해로울 뿐 아니라, 사실에 비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분쟁 광물에는 각 금속의 영어 이름 첫 글자 를 따서 '3TG'라 통칭하는 주석, 탄탈룸, 텅스텐, 금이 있다.
OECD의 지속 가능한 광물 공급망을 위한 기업 실사 지침 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Mineral Supply Chains'와 비슷하게 미국 정부 차원에서 분쟁 광물을 공급받은 기업에 상당한 재정적 불이익을 안길 수 있는 유일한 규제는 도드-프랭크법Dodd Frank Act 일 것이다. (이 법은) 곁가지치고 무척 강력하다.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기업은 콩고나 인접 국가에서 생산된 분쟁 광물을 활용할 시 자신들이 지급한 대금이 현지 무장 단체의 자금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실사를 벌여 밝혀내야 한다.
-240
BMW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모로코의 광산에서 코발트를 직접 확보하려 한다.
2019년 모로코에서 생산된 코발트는 전 세계 생산량의 1.5퍼센트에 불과하고 매장량은 콩고의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코발트 매장량이 콩고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생산량은 모로코보다 두 배 많은 정도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니켈과 구리 채굴의 부산물로 코발트를 생산한다. 기술적•경제적•시간적 관점에서 향후 10년간 오스트레일리아가 주요 코발트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
-241
콩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발트 가격이 GDP 성장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콩고의 총수출액에서 광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80퍼센트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기업들이 윤리적인 이유를 대며 더는 콩고의 코발트를 사지 않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일까.
-242
니켈
채굴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려면 니켈 광 산과 가공 시설을 모두 보유했던 러시아의 북극권 도시 노릴스크 Norisk 를 살펴보면 된다. 문제의 시설들이 문을 닫은 2016년까지 노릴스크는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도시로 꼽혔다.
현재 노릴스크니켈은 부분적으로는 러시아 정부의 압박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투자자들의 기대 때문에 더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한다. 2016년 노릴스크에서 가까운 달디칸Daldykan강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폭우로 광산의 여과 시설이 넘친 탓이었다.
세계 2대 니켈 광산을 보유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니켈 산업에 서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와 전기자동차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려 하며 언젠가는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일본의 부유한 시장에 니켈을 공급할 수 있길 바란다.
반면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환경보호와 관련해 행실을 바로 하지 않으면 "광업 기업들이 고사할 때까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이 나라에서 사업을 진행하던 41개의 광업 기업 중 28곳이 감사를 받은 뒤 운영을 중단했다.
-261
모든 인도네시아인이 정부처럼 배터리 산업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붉은 흙 덕분에 자신들이 니켈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카바에나 섬 주민들은 조상들의 땅을 관광 마을로 등록했다. 그들은 광부들이 섬으로 이주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미적지근하더라도 연례 축제를 조직하는 등의 방법으로 관광을 활성화하려 한다.
-262
도시 광업
제이컵스는 1961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es》을 출간했다. 도시계획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책으로 '사회적 자본'과 '도시 광업' 같은 용어가 처음 쓰였다.
금, 은, 납, 아연의 매장량과 우리가 사용 중이거나 이미 버려진 다양한 물건에 포함된 양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더 많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 포함된 해당 금속들은 땅에 묻혀 있을 때보다 훨씬 농축된 형태다. 리튬 1톤을 얻으려면 스포듀민 250톤이나 염수 750톤을 가공해야 한다. 하지만 폐기된 리튬 이온 배터리는 28톤만 있어도 리튬 1톤을 얻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 놀라운 효율을 보여준다.
-268
자국에서 만든 개념이라 주장할 정도로 일본에서 도시 광업이 인기를 얻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도호쿠 대학 선광제련연구소의 난조 미치오 교수가 1980년 대에 도시 광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를 '도시 광업의 아버지'라 부른다.
로봇 강아지부터 게임기까지 모든 전자 기기에 매혹되는 일본인들의 특성 탓에 매년 엄청난 양의 관련 폐기물이 쏟아진다. 일본에서 버려지는 전자 기기에 들어 있는 금이 남아프리카의 매장량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269
2025년이 오기 전, 처음으로 대량 판매된 전기자동차들의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면, 폐배터리 쓰나미가 중국을 덮칠 것이다.
신기술이라는 맥락에서 중국을 바라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정부 기관이 하나 있다면 바로 공업정보화부다. 중국이 막 굴기하던 시기인 2008년 만들어진 이 기관은 중국과 미국의 기술 경쟁을 주도하는 주체 중 하나다. 공업정보화부는 기본적으로 규제 기관이지만,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강대국으로 바꿔놓기 위한 국가적 전략 계획인 ‘중국제조 2025'를 수립한 곳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5G 및 배터리와 전기자동차 개발부터 폐배터리 활용까지, 중국의 최첨단 기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이 기관이 책임지고 있다.
지난 2년간 공업정보화부를 진두지휘한 이는 샤오야칭이었다. 그는 원래 중국을 대표하는 알루미늄 생산 업체인 찰코의 CEO였다.
공업정보화부는 이미 2018년에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 의무를 생산 업체에 지우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 결과 생산 업체들은 배터리마다 국가 표준에 따른 일련번호를 부여한 다음 전체 생애 주기를 추적하는 시스템에 등록해, 관련 데이터를 정부 당국과 공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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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밖의 기업은 자신들이 세계를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중국에는 이미 재활용의 미래 가 도래해 있다.
중국의 재활용 업체들은 대략 거린메이나 화유코발트 같은 거대 기업과 가족이나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 업체로 나뉜다. 소규모 업체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방법에 의존해 LCO 양극재만을 처리한다.
반면 거린메이는 재활용 업계의 거물이다. 이 회사는 매년 약 400만 톤의 폐기물을 처리한다. '총알을 위한 완벽한 금속'으로 알려진 텅스텐 같은 희소금속과 다양한 최첨단 전략산업에 활용되는 희토류도 회수한다. 재활용 산업은 화려하게 포장되는 분야가 아니어서 거린메이 같은 회사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약 30만 톤의 폐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재활용 업체라도 폐배터리를 1만 톤도 처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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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린메이는 이미 중국과 한국의 대형 양극재 생산 업체 중 몇 곳에 상당한 양의 금속을 판매하고 있다. 보통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이나 망가니즈는 포함하고 있지만, 리튬은 없다. 문제는 이 중에서 재활용된 금속이 얼마나 되느냐다. 도시 광업이라는 뿌리에서 벗어나고 있는 거린메이는 최근 맺은 계약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서 채굴되는 니켈과 콩고의 코발트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화유코발트는 이름 그대로 코발트 생산 업체다. 콩고에 자체 광산이 있고 중국에 가공 시설이 있는데, 생산량으로 따지면 세계 최대 규모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큰 배터리 재활용 시설도 갖춰 매년 수만 톤을 처리한다. 중국의 배터리 생산 업체 닝더스다이가 인수한 방푸순환도 이에 견줄 만한 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배터리를 재활용할 대형 시설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미래에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이미 생겨났고, 중국에는 놀라운 규모의 시장이 존재한다.
중국의 재활용 업체들에 남은 과제가 있다면 폐배터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전기자동차 생산 업체가 자사 제품에 사용된 배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엄격한 규제 덕분에 곧 폐배터리 수집 절차가 수월해지고 간소화될 것이다. 재활용 업체는 폐배터리를 알아서 공급해 줄 전기자동차 생산 업체와 손잡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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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재생
전기자동차의 거대한 배터리는 단순히 셀들을 모은 모듈의 집합체여서 재생이 어렵지 않다. 배터리 용량이 70퍼 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일반적으로 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때 모듈에서 가장 성능이 저하된 셀들만 교체하면 배터리의 전체 용량이 다시 100퍼센트에 근접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 차례 사용된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모아 풍력발전소나 태양광발전소의 에너지 저장소로 사용하거나, 병원이나 데이터 센터의 예비 전력 저장소로 쓸 수 있다.
한 번 쓰인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다시 전기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시장을 만들고자 나선 스타트업들도 있다. 실제로 중고 배터리는 시장에서 5000달러부터 1만 5000달러까지 꽤 괜찮은 가격에 팔린다. 중고 배터리를 거래하는, 이베이와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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