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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도즈, <지정학>

딸기21 2025. 3. 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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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
클라우스 도즈. 최파일 옮김. 교유서가. 3/4


지정학이라는 용어/학문의 역사를 알고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됨.


지정학은 세 가지 특징을 포함한다. 첫째, 지정학은 공간과 영토에 대한 영향력과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둘째, 지정학 은 세계정세를 이해하는 데 지리적 틀을 이용한다. 인기 있는 지리적 모형으로는 '세력권(sphere of infuence)', '블록(bloc)' '뒷마당(backyard) '인접국(neighbourhood)', '주변국(near abroad)' 등이 있다. 셋째, 지정학은 미래지향적이다. 지정학 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불변하기 때문에 일어날 법한 국가 행위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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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이해하는 두 가지 근본적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고전지정학(cassical geopolitics)이다. 고전지정학은 국력과 영토적 이해관계, 지리적 환경 간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와 정치가는 일반적으로 지리를 지도자의 정치적 선택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고정되고 결정적인 요 인으로 생각한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심지어 (모든 것을)'좌우하는 지리의 숙명'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두번째 사고 경향은 흔히 담론과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비판지정학(critical geopolitics)이다. 비판지정학에서는 지리를 결정론적으로 개념화하기보다는 지리적인 것을 다소 유동적이고 해석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고전지정학이 영토, 자원, 입지에 초점을 맞춘다 면 비판적 접근은 인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지정학'을 생산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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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이 실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혹적인 방식을 제공 한다면 그것은 지정학이 흔히 단순화와 객관화를 취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도가 한몫을 담당한다. 대중적인 심장부(hearland), 축(pivot), 원호지대(arc), 접경지대 같은 프레이밍 도구도 마찬가지다.
지정학은 지구 풍경에 대한 믿음직한 이정표로 내세워지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연상적인 지리적 묘사, 은유, 모델을 사용하며, 지난 몇십 년에 걸쳐 '철의 장막', '제3세계', ‘불량 국가(rogue stace)' 같은 그 밖의 많은 표현도 써왔다.
이런 각각의 표현은 (공간이라기보다는) 장소가 그와 같이 파악되고 이름 붙여진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지리적이다. 그런 다음 그것은 단순한 세계 모델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모델은 외교와 안보 정책 형성에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데 사용되며 지정학적 사안에 관한 공적 논쟁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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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스웨덴 정치학 교수 루돌프 셸렌(Rudlof Kjellen)이 만든 [지정학이라는] 이 용어는 흔히 국가의 조건 형성에 영토와 자원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는 국제 정치에 대한 매우 냉혹한 또는 더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 진다. 셸렌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분쟁에 관한 기존의 접근법이 과도하게 법 형식주의적이라고 보고 이에 반발하여 1890년대와 1900년대의 학계와 통치 지향의 세계에 과학적 지정학을 도입했는데, 이는 마침 시기가 적절했다.
하지만 국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지리의 중요성을 논의하던 다른 지적인 맥락도 존재했다. 독일 작가 프리 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는 그런 논의의 중요한 사례다. 그는 『정치경제의 국가적 체계 Das Nationale System der Politischen Okonomie (1841)에서 독일 정치가들에게 지리적 요인의 중요성(예를 들어 한 나라의 해로와 육로 접근성, 영토 팽창 잠재성, 자원의 풍부함)에 관해 조언했다. 세라 오하라(Sarah O'Hara)와 마이크 헤퍼넌(Mike Heffernan)은 이 같은 초기 지정학과 관 련된 많은 관념이 당시 정부 문서와 언론의 추측에서 익히 예 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지정학은 19세기 후반의 특정한 관심사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했지만 이전에 학계 외부에서 수행되던 행위에 대한 학문적 식민화를 더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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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메이핸(Thomas Mahan) 제독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1660~1783」에서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에 몇 가지 냉철한 조언을 했다. 그의 저작은 나중에 번역되어 독일에서 열광적으로 읽혔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독일의 지정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범지역적(pan-regional) 이론화 발전에 한몫했다.
루돌프 셀렌의 저작들은 처음에 독일 학자들의 관심을 빠르게 끌었고 … 독일 저자들은 셸렌처럼 영토와 자 원의 필요에 따라 국가를 개념화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 었다. 1990년 마이클 코린먼(Michael Korinman)이 지적한 바와 같이 독일은 지리학을 가르치는 학과가 대학에 가장 먼저 창설된 '지리학자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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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을 나치즘과 연관 짓는) 논의의 중심에는 카를 하우스호퍼 교수의 저술과 사회적 네트워크가 있다. 1869년에 태어난 하우스호퍼는 군 복무 기간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와 일본 군장교들 및 지리학자들과의 교류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본지정학협회와 도쿄대학 지정학부 같은 일본 지정학 기관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지정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거두였다. 그 같은 지적 위상은 독일과 일본뿐 아니라 남아메리카에서도 여전한데, 이 지역에서 하우스호퍼의 저작은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로 번역되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같은 나라의 군대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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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호퍼는 범지역론이라는 관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독일, 일본과 같은 그 밖의 강국이 타국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자국만의 경제적•지리적 배후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하우스호퍼의 주요 지리적 지향은 동방을 향해 있었고 그는 독일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할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개발 계획의 열성 지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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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호퍼가 나치 위협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천재라고 비난 받던 바로 그때 그의 위상과 영향력은 사실 약화되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이 전략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했고… 히틀러를 폭살하려고 한 1944년 7월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아들 알브레히트가 1945년 4월에 처형된 뒤 1946년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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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는 오히려 전후 국제 체제에서 국가의 역할과 규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다룬 국제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 IR)과 현실주의 이론의 중요성이 커진 시기였다.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이 동유럽과 서아시아, 남유럽과 남 동유럽에서 테두리땅(rimland)'이라고 한 지역(전략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공간에서 바다를 접한 가장자리로 정의 된다)에 시선을 집중시켰다면 솔 코언의 나중 저작은 이른바 '파쇄지대(shatterbelt,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열강의 경쟁을 불러 일으키는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영토와 자원, 접근성을 놓고 초강대국들이 어디에서 충돌하게 될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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