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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살림 준비.

장기전 태세에 들어가다. 자발 암만 4써클(로마가 7개 언덕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는 것처럼, 암만도 7개 언덕에 세워져 있다. 언덕을 '자발'이라고 하는데 자발 암만이니 자발 뭐시기니 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 세이프웨이에 들러서 마요네즈와 샌드위치 빵, 컵라면, 치즈, 소세지, 물통 등등을 샀다. 호텔에 돌아와서 빨래를 하고 기사를 대충 정리했다. 프레스센터에는 라가드 알 하디라는 24살짜리 아가씨가 있는데 진짜 귀엽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수다를 떨고, 노상 웃는다. 깔깔깔깔. 내 프레스카드를 두고 왔다고 해서 제2 프레스센터가 있는 셰라톤 호텔까지 같이 차를 타고 갔다. 운전수(같은 공보부 직원)를 가리키면서 "koo, 이 사람이 로열 호텔 안에서 길을 잊어버렸대, 호텔이 너무..

[요르단]암만으로 '탈출'

아침도 못 챙겨먹고 짐을 싸들고 호텔에서 나왔다. 미국의 공습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바그다드의 긴장도가 하루하루 높아지고 있다. 주유소에 기름을 잔뜩 넣어두려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풍요로운 것이라고는 석유 밖에 없는 이라크에서 시민들이 석유를 사기 위해 늘어서 있다니. 중산층 주민들은 전쟁과 함께 빈민들의 폭동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재산을 타지로 옮기고 있고 상점들도 상품을 창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6일 미국, 영국, 스페인 3국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시민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정부는 시내 곳곳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참호를 만들고 있다. 대사관의 박웅철 서기관 말에 따르면 시내에 참호를 구축하는 것은 미군에 맞서 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라크]카디미야 시장에서

미국 워싱턴에서 16일 열릴 예정인 미국·영국·스페인 3국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개전 D데이를 잡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면서, 평온한 것처럼만 보였던 이라크 내 분위기도 점점 긴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겉으로는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며칠새 물가와 환율이 뛰기 시작했고, 바그다드 외곽에서는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며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다. 17일 바그다드의 유명한 재래시장인 카디미야 시장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이라크산을 비롯해 중국산, 시리아산, 이란산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시장의 분위기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환율은 지난해 10월 달러당 2000디나르에서 이달초 2250디나르,..

바그다드에서 만난 사람들- 송영길의원과 화가 최병수씨

서상섭, 안영근, 김성호, 송영길의원 등 의원 네 명이 이라크전 반대서명을 한 34명의 의원들을 대표해 이라크 의회 초청으로 11일부터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체류하고 있다. 의원들은 사둔 함마디 이라크 국회의장과 쿠베이 사이 외교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걸프전 오폭지점인 아미리야 방공호 전쟁기념관과 후세인아동병원 등을 둘러봤다. 12일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 호텔에서 만난 송영길 의원은 "이라크를 둘러보면서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제발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뒀으면' 하는 것이었다"면서 말을 꺼냈다. 순박하고 평화로운 이라크인들을 보니 미국이 과연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려 하는지 의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고, 전쟁에 반대하는 신념이 더 굳어졌다는 것. 송의원은 "구식 칼리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있는 이라크인들을 ..

이라크의 피해

최첨단 화력을 총동원한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이 될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측이 입을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요 군사시설과 통신시설 등을 정확히 폭격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1991년 걸프전에서 드러났듯 미사일 오폭 등으로 인한 대규모 민간인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바그다드 시내의 교량과 알 라시드 호텔 등을 폭격하면서, 아메리야의 방공호를 오폭했다. 40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방공호 폭격은 걸프전의 대표적인 오폭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번에는 특히 미군이 지상군을 투입할 방침이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많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군 특수부대 상당수가 민간인과 뒤섞여 있기 때문에 시가전이 벌어지면 대도시에서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일각에..

[이라크]뚱뚱한 것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야

아침에 프레스센터에서 홍콩케이블TV 기자인 윌리엄을 만났다. 3년전 홍콩에 갔더니 사람들이 아주 친절하더라고 얘기해줬다. "그래요? 당신, 운이 좋았던 거예요. 홍콩 사람들 안 친절해요." 나는 프레스카드를 아직 안 만들어서 곧 만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럼 지금은 어떻게 들어왔느냐, 문 앞에서 검사하는데"라고 물었다. 몰래 들어왔다고 했다. "당신은 정말 lucky한 모양이네요." 그의 말처럼 나는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앞으로도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 원래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는데 그냥 몰래몰래 다니고 있다. 스트리트 택시를 타면 끔찍하긴 하지만 재미도 있다. 어떻냐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잘 보니 사이드 미러가 한 개도 없다. 아슬아슬. 영어는 당연히 안 통한다. 어제 운전을 해줬던 하미드..

키르쿠크

터키 정부는 최근 이라크전이 발발하면 이라크 북부에 군을 투입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주력부대인 쿠르드민주당(KDP)은 "터키군이 들어오면 유혈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말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반군이 북부지역에 잠입했다. 미국은 반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터키를 상대로 미군 주둔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 북부를 둘러싼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의 핵심에는 전략 요충지인 키르쿠크가 있다. 이라크 최대의 유전지대, 미국-이라크-터키-이란-쿠르드족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 다가올 이라크전쟁에서는 키르쿠크를 장악하는 것이 전세를 결정지을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내의 모든 종족·종교갈등이 집약돼 있는 키르쿠크는 자칫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질 위험..

이라크, 비동시성의 동시성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종종 말이 끄는 수레를 볼 수가 있다. 바그다드와 암만을 있는 고속도로변에서는 베두인들이 양떼를 끌고 다니고, 원유를 실은 탱크로리가 질주하는 곁으로 낙타들이 앉아 쉬거나 지나다닌다. 그 모습을 보면 컨템포러리(동시대성)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기분이 묘해진다. 송두율교수는 예전에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는데, 그 말이 모순의 중첩을 가리킨 것이었다면 사막에서 제기되는 동시대성의 문제는 문명의 중첩과 관계가 있다. 사막 곳곳에서 만나는 비동시성은 이 땅에 얼마나 오랫동안 문명들이 명멸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바그다드의 시민들과 베두인들은 서로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바그다드에서는 일당독재가 판을 치는데 북쪽에서는 예수 시대의 언어인 아람..

유씨프 신부님과의 대화.

에삼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다. 주무리야 거리의 책 시장에 갔었다. 길거리에 노점상들이 헌 책을 판다. 나는 꾸란 두 권과 꾸란을 담기 위한 종이가방, 나자프와 케르발라의 사원들이 조잡하게 그려져 있는 카드 한 벌을 샀다. 오늘은 아슈라 모하람(이슬람력 1월 10일)이다. 8세기에 케르발라에서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와 손자 후세인이 반대파들에게 처형당한 날이다. 시아파들은 이 날을 최대 추모일로 치고, 순니파들도 이 날을 기린다. 국경일이어서 거리는 한산했다. 에삼과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었다. 이라크 음식들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에삼이 우연히 생각났다면서 자기가 이 곳 기독교 교회가 어디 있는지를 안다고 했다. 당장 가자고 했다. 와흐다 거리에 갔더니 도미니칸 성당과 학교, 사제관을 겸한 수도원..

[이라크]12일, 만수르바자에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래바람 부는 겨울이 끝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이나 거리는 활기가 있어 보였다. 가게에는 여전히 상품이 부족하고 생필품은 값싼 중국산으로 충당하는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바그다드 시민들은 미국의 위협에 '단결'이라는 유일한 무기로 맞서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 일행과 함께 옛 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만수르 바자(시장)에 들렀다. 옷가지와 신발 따위를 파는 가게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들이 몰려 있다. 동남아 등지에서 만들어진 싸구려 양탄자와 조악한 공예품들을 파는 상점가에는 상인들이 나와 호객을 하고 있었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골동품 가게 한 곳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