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불행한 민족, 쿠르드

딸기21 2003. 9.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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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민족은 쿠르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터키 쿠르드족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쿠르드족 분리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쿠르드자유민주의회(KADEK·옛 쿠르드노동자당)이 1일 터키 정부에 사흘간의 협상 기간을 주겠다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협상이 결렬되면 4년간의 휴전을 끝내고 다시 무장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에 체류중인 KADEK 대변인 일마즈 시아르는 현지언론인 로스발트뉴스 인터뷰에서 "전쟁을 피하려면 터키 정부는 쿠르드 영토에 평화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투쟁은 예전처럼 산악지대에 숨어서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현대적인 무기를 동원한 새로운 전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DEK은 지난 99년 전설적인 게릴라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체포된 뒤 극심한 탄압으로 세력이 축소되자 터키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렇지만 터키 정부는 구금 중인 쿠르드족 지도자들을 사면·감형해주지 않고 반군의 투항을 강요하는 내용의 사면법을 채택해서 반발을 샀었다. KADEK은 터키의 쿠르드 통치당국이 쿠르드족의 정치적, 문화적 독립성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면서 자치 확대와 체포된 반군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감된 지도자 오찰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신변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도 요구사항에 포함된다.

터키의 쿠르드족 분리독립운동은 이웃한 이라크의 쿠르드족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어 주목된다. 인구 2500만명으로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이라 불리는 쿠르드족은 시리아, 터키, 이라크, 이란과 옛 소련지역에 걸친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 거주하면서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오랜 투쟁을 벌여왔다.
터키 정부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 독립운동을 강경 탄압해왔다. 후세인이 미국에 '찍힌' 드러난 명분도 88년-89년에 쿠르드족에게 생화학무기를 썼다는 것이었다. 터키에서는 15년간 3만7000명이 게릴라전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 쿠르드족이 다시 무장투쟁에 나설 경우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를 장악한 쿠르드족의 분리운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또 쿠르드족 탄압을 계속 비판해온 유럽연합과 터키 간의 갈등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

슬픈 민족, 쿠르드

작년에 이라크에 대한 영어 안내책자를 읽다가 가슴이 막혔던 부분이 두 곳 있었다. 한번은 98년 공습 직후에 쓴 어느 기자의 에세이를 인용한 부분이었고, 또 하나는 쿠르드족의 국가(國歌) 부분이었다. 쿠르드족은 아직 나라를 갖지 못했으니(그리고 앞으로도 가질 전망은 요원하고) 정확히 말하면 국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national anthem 이라 부른다.

서툴게 옮겨보자면

"어떤 무기로도 부술 수 없는
쿠르드 사람들의 나라는 살아있다

우리는 두려움을 모르도록 커왔고
피의 왕관을 쓸 준비가 돼 있다

쿠르드는 없다 말하지 마라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의 깃발은 결코 내려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메데스와 케이코스로의 후계자
애국은 우리의 종교

쿠르드인들은 오랫동안 싸워왔다
보라 우리의 핏빛 역사를

쿠르드의 젊은이들은 사자처럼 일어섰다
피로 물든 생애를 찬양하기 위해

자유, 그리고 우리의 땅에 대한 사랑을 위해
언제라도 우리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메데스는 아나톨리아에 있던 고대 왕국 이름이고, Keikhosrow 는 조로아스터의 선지자인데 이란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쿠르드족이다. 십자군이 벌벌 떨었다는 살라흐 앗 딘(살라딘)도 쿠르드의 전사였다. 하지만 유사 이래 통일국가를 만들어본 일 없다니, 한이 맺힐대로 맺힌 모양이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노래를 국가로 가진 민족이 몇이나 될까.
90년대 이후로 터키에서는 쿠르드족 사이의 내분과 동족상잔으로 수만명이 죽었다고 하니까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라크에서도 쿠르드 안에서 순니파와 쉬아파가 갈라져서 싸운다. 못난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보다. 세상엔 참 비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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