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1148

촛불시위

토요일 저녁 때 시청앞에 갔다. 야 정말 오랜만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월드컵 때에도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내가 드디어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차에서 내려 시청까지 걸어가는데 도처에 반미아빠 반미엄마가 반미어린이들을 이끌고 나왔고 반미커플과 반미어르신들, 반미스님들과 반미수녀님들도 보였다. 시청앞에서 양초를 샀다. 윤도현의 공연은 끝난 모양이었고 어두워가는 겨울저녁에 촛불들이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도 의혈의 깃발이 보였다- 대학교 때 가두집회 나가면 우리학교는 왜 그렇게 깃발 간수를 못하는지, 통 눈에 안 보여서 깃발을 따라다녔었다. 붉은 테두리 안에 검은 테두리, 그 안에 이라 쓰여 있었는데 이걸 따라다니면 어떻게든 우리 학교 학생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범대위의 집회 진..

a letter to ssinzi

미야자키 하야오의 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에 공감했었어. 혹시 그 애니 봤니? 하나는 "나는 나비가 된 것 같았다"는 타이코의 말이었고(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얘기했던 듯), 두번째는 타이코가 어린 시절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예의 없던' 친구를 회상하면서 자기반성하는 부분. 같은 학급에 아주 지저분하고 싫은 애가 있는데, 하필이면 걔가 왜 내 짝이 됐을까. 주변 여자아이들 모두 그 애를 싫어해. 타이코는 다른 친구들이 "안됐다, 걘 참 나빠"라고 말하면 "아냐, 난 괜찮아"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 돌이켜보면 정말로 그 애를 싫어했던 것은 자신이었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난 그애를 마구 욕하는 저런 애들하고는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반에 그런 남자애가 있었어..

왜 내겐 인자기가 매력 없을까.

어제 집에가서 테레비 틀었더니 M espn에서 지난시즌 uefa 결승전 재방 해주는데, 아무리 봐도 난 페예노르트의 경기는 재미 적다니깐. 그나저나 우리 종국이 다쳤다는데...큰일이다. 밤에 하일라이트에서 epl 토튼햄-웨스트 브롬위치 경기 보여줬는데 전반 3분에 솔라리님이 좋아하시는(맞죠?) 지게가 프리킥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솔라리님, 전 사실 지게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 골은 참 멋졌어요. 전반 30분에 로비 킨이 두번째 골 날렸는데, 로비 킨은 아주아주 몹시 좋아한다. 웨스트브롬의 별볼일 없는 포워드 스콧 도비(실력보다 미모가 한수 위)가 한 골 날렸다. 첨 보는 앤데 되게 귀엽드만^^ 밤에 챔편스 밀란-도르트문트 다 보느라고 1시 넘어 잤다. 아웅~ 피곤해... 이번엔 인자..

딸기, 서른 둘

(뉘쉬님의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나도, 마치 내가 무슨 인물이나 된다는 듯, 조금은 색다른 프로필을 써보기로 했다. 난 좋아보이는 것이 있으면 금방금방 따라한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1971년은 "'대량 학살'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진" 해였다. 지금은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동파키스탄이라는 곳에 주재했던 미국 영사관은 이른바 '피의 전문'으로 알려진 항의문에서 그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내가 서른 두살이 된 지금도 대량학살이라는 말은 뉴스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당시 그 항의문을 만든 아처 블러드 다카 주재 미국 총영사는 미국 정부가 동파키스탄의 대량학살에 관여했다고 자기네 정부를 비판했는데, 각종 학살에 미국이 관여하고 있다는..

제인-딸기 가상대담, <모리 이야기>

제인 : 레알 마드리드는 모리엔테스를 기용하라~ 기용하라~ 딸기: 모리엔테스를 기용하라고요? 어제 스타스포츠에서 레알마드리드-비야레알 경기 보니까 후반에 모리 나오더군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모리도 유명한 선수이고, 아주 잘하는 선수죠. 하긴 그런 선수 우리나라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명만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닙니다만. 어제의 모리 플레이가 별로였다는 걸 근거로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리는 기복이 심한 선수로 유명하죠. 감독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이 그런 선수 아닙니까? 월컵때 모리, 잘 했죠. 아일랜드전에서 멍청한 카마초 감독(그 겨드랑이 땀 생각난다...)이 중간에 빼버려서 애를 먹긴 했지만, 모리가 펄펄 날 땐 그정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제 눈에..

헤헷, 뒤늦게...히딩크가 한 말인데.

지난 6월달에 한 얘긴데 뒤늦게 읽어보니 기분이 새로와서요. Q. 맨 처음 한국선수들을 보았을 때 어떠했나? -음. 일단 유럽과는 확연히 틀렸다. 유럽은 모두가 어울리는 반면에 이 곳은 노장 2명이 엄격히 군기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홍명보는 아직도 조금 무섭다.(웃음) 다른 선수들은 이제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젠가 자기주장을 펼치려 그가 “Hiddink!", "No!!"라고 외칠 때마다는 내 등골이 다 서늘 하곤 한다. 황선홍은 웃는 표정이 너무 착해서 설마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역시 홍명보에게 혼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명보가 황선홍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혼자 웃었다. 지금은 모두가 다정다감하다. 나는 한국선수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들은 미워할..

도장을 위한 기도문.

내 책상에는 유독 2단 책꽂이가 놓여 있다.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부를 제외하면 우리 사무실에 거창하게 2단 책꽂이 '씩이나' 놓아둔 자리가 많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서는 결단코 아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책꽂이의 상당부분은 사전적 의미의 이 아닌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포장지, 스크랩북, 스크랩 못하고 쌓아놓은 신문들, 씨디, 팡이제로, 쓰려고 놓아둔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잘 바르지도 않는 바셀린 로션, 여름 다 지나도록 멍청하게 서있는 선스크린 스프레이. 며칠전 상층부에서 개인별 책상을 없애고 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인데 다들 반대하지만 나 역시 반대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책상을 좀(이 아니고 많이) 지저분하게 쓴다. 책꽂이 윗부분에까지 물건 쌓아두는 건 기본이고, ..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어떤 문제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스 그라스만, 중에서) 그런데 내 생각에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쳐내는 법을 아는 것이 행복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 갖고 지지고볶고 하기엔 시간이 좀 없는 탓도 있지만, 행복한 삶을 좀먹는 것들은 보통 사소한 일들일 경우가 많기 때문. 고등학교 때 읽었던 잠언집에 나온 말인데 "가장 훌륭하고 꼭 획득해야 하는 것은 단순함"이라고 했다. 그라스만의 말과는 다른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이 경구를 좋아한다.

바티만 아니었다면

흑흑 어제 로마가 아스날한테 3대1로 깨졌다... 사실 아스날은 아주 잘 하는 팀이다. 앙리의 슛은 시원하고- 얼마전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앙리가 무려 60여m를 돌파해서 골을 넣는 걸 봤는데, 정말 대단했다. 로저 르메르 전 프랑스 국대 감독이 "앙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던가. 결국은 앙리에게 를 기댈 수 있으리라는 얘기였을테고. 앙리는 한일 월드컵 때에는 기껏 한 경기 출전, 그리고 두번째 경기에서 빨간딱지 받아 마지막 덴마크와의 경기에는 나오지도 못했기 때문에 플레이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컨페드컵 때에도 빠졌었고. 그치만 아스날에서 요즘 뛰는 거 보면 장난 아니다. 그 돌파력! 피레는 발재간 장난 아니고 예술성도 다분하고, 또 비에이라는 어떤가. 월컵 전에 지단이, "비에이라가 세계..

내 가방 속의 천사들

이란 영화를 재밌게 봤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책상과 가방을 뒤지며, 그 속의 천사를 찾는다. 어제는 모처럼 휴가를 내서 하루 쉬었는데 그 사이 가방 안에 천사가 들어왔다. 이제, 천사들의 합창 시작-. stabilo 포인트88 펜. 몸통은 주황색, 잉크는 회색. 책에 줄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만했다. 회사 서무에게 펜을 달라고 하면 플러스펜을 주는데, 값이 싼 대신 쓰는 느낌이 안 좋고 오래오래 쓸 수가 없어서(너무 빨리 마르고, 펜촉도 잘 닳는다) 안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펜을 돈 주고 사는 일은 통 없지만 그제 문구점에서 구경을 하다가 큰맘먹고 새 펜을 샀다. 어느 해였던가, 교육방송의 강사가 '밑줄 쫙, 별표 하나' 식의 강연으로 인기를 얻었던 적 있었지. 얼마전 회사의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