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1140

생각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뒹굴었더니 살맛이 난다. 역시 사람은 뒹굴어야 사색이든 무엇이든 가능한 법이다. 삶의 여유라든가 관조라든가 하는 것도 다 뒹굴어야 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한 일...이라고 하면 역시나 일 냄새가 나니까.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한 짓들. 아침에 남편 안 깨워서 지각시키고. 물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물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밀린 물값 오늘 꼭 드리겠다"고 사정하다시피 하고(덧붙여, 쌓아놓은 물통들도 오늘 반드시 드리겠다고 빌었다) 물값을 내려면 돈이 있어야지. 아파트 안에 있는 현금지급기가 하필 고장나서 은행까지 내려가 돈 10만원 찾음. 음료수랑 바나나, 우유(바나나우유가 아니라 바나나하고 우유란 얘기다. 난 집에 우유 떨어지면 에너지가 5분의1로 줄어든다) 사고. 집안..

나는 고양이다

나는 고양이인 듯. 개와 고양이 중에 어느 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양이를 고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굳이 두 종류 중에 고르지 않고 이 세상 수많은 유전자 조합들에 문을 열어놓는다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 부류의 인간이다. 전생에 만일 어떤 동물이었다고 한다면, 필시 나는 고양이였을 것같다. 필립 풀먼의 3부작에는 자신과 영혼을 같이 하는(사실상 우리 세계에서 영혼이라 부르는 것과 동일한 존재인) 데몬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린(혹은 상상한) 나의 데몬은 의심의 여지없이 고양이였다. 다만 그 고양이의 털이 까만지 하얀지 혹은 파란색인지 황금색인지 얼룩덜룩한지에 대해서만 상상의 여백이 있었을 뿐, 나의 데몬은 물을 필요도 없이 고양이였다. (개와 고양이 하면..

촛불시위

토요일 저녁 때 시청앞에 갔다. 야 정말 오랜만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월드컵 때에도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내가 드디어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차에서 내려 시청까지 걸어가는데 도처에 반미아빠 반미엄마가 반미어린이들을 이끌고 나왔고 반미커플과 반미어르신들, 반미스님들과 반미수녀님들도 보였다. 시청앞에서 양초를 샀다. 윤도현의 공연은 끝난 모양이었고 어두워가는 겨울저녁에 촛불들이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도 의혈의 깃발이 보였다- 대학교 때 가두집회 나가면 우리학교는 왜 그렇게 깃발 간수를 못하는지, 통 눈에 안 보여서 깃발을 따라다녔었다. 붉은 테두리 안에 검은 테두리, 그 안에 이라 쓰여 있었는데 이걸 따라다니면 어떻게든 우리 학교 학생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범대위의 집회 진..

a letter to ssinzi

미야자키 하야오의 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에 공감했었어. 혹시 그 애니 봤니? 하나는 "나는 나비가 된 것 같았다"는 타이코의 말이었고(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얘기했던 듯), 두번째는 타이코가 어린 시절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예의 없던' 친구를 회상하면서 자기반성하는 부분. 같은 학급에 아주 지저분하고 싫은 애가 있는데, 하필이면 걔가 왜 내 짝이 됐을까. 주변 여자아이들 모두 그 애를 싫어해. 타이코는 다른 친구들이 "안됐다, 걘 참 나빠"라고 말하면 "아냐, 난 괜찮아"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 돌이켜보면 정말로 그 애를 싫어했던 것은 자신이었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난 그애를 마구 욕하는 저런 애들하고는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반에 그런 남자애가 있었어..

왜 내겐 인자기가 매력 없을까.

어제 집에가서 테레비 틀었더니 M espn에서 지난시즌 uefa 결승전 재방 해주는데, 아무리 봐도 난 페예노르트의 경기는 재미 적다니깐. 그나저나 우리 종국이 다쳤다는데...큰일이다. 밤에 하일라이트에서 epl 토튼햄-웨스트 브롬위치 경기 보여줬는데 전반 3분에 솔라리님이 좋아하시는(맞죠?) 지게가 프리킥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솔라리님, 전 사실 지게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 골은 참 멋졌어요. 전반 30분에 로비 킨이 두번째 골 날렸는데, 로비 킨은 아주아주 몹시 좋아한다. 웨스트브롬의 별볼일 없는 포워드 스콧 도비(실력보다 미모가 한수 위)가 한 골 날렸다. 첨 보는 앤데 되게 귀엽드만^^ 밤에 챔편스 밀란-도르트문트 다 보느라고 1시 넘어 잤다. 아웅~ 피곤해... 이번엔 인자..

딸기, 서른 둘

(뉘쉬님의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나도, 마치 내가 무슨 인물이나 된다는 듯, 조금은 색다른 프로필을 써보기로 했다. 난 좋아보이는 것이 있으면 금방금방 따라한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1971년은 "'대량 학살'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진" 해였다. 지금은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동파키스탄이라는 곳에 주재했던 미국 영사관은 이른바 '피의 전문'으로 알려진 항의문에서 그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내가 서른 두살이 된 지금도 대량학살이라는 말은 뉴스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당시 그 항의문을 만든 아처 블러드 다카 주재 미국 총영사는 미국 정부가 동파키스탄의 대량학살에 관여했다고 자기네 정부를 비판했는데, 각종 학살에 미국이 관여하고 있다는..

제인-딸기 가상대담, <모리 이야기>

제인 : 레알 마드리드는 모리엔테스를 기용하라~ 기용하라~ 딸기: 모리엔테스를 기용하라고요? 어제 스타스포츠에서 레알마드리드-비야레알 경기 보니까 후반에 모리 나오더군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모리도 유명한 선수이고, 아주 잘하는 선수죠. 하긴 그런 선수 우리나라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명만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닙니다만. 어제의 모리 플레이가 별로였다는 걸 근거로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리는 기복이 심한 선수로 유명하죠. 감독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이 그런 선수 아닙니까? 월컵때 모리, 잘 했죠. 아일랜드전에서 멍청한 카마초 감독(그 겨드랑이 땀 생각난다...)이 중간에 빼버려서 애를 먹긴 했지만, 모리가 펄펄 날 땐 그정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제 눈에..

헤헷, 뒤늦게...히딩크가 한 말인데.

지난 6월달에 한 얘긴데 뒤늦게 읽어보니 기분이 새로와서요. Q. 맨 처음 한국선수들을 보았을 때 어떠했나? -음. 일단 유럽과는 확연히 틀렸다. 유럽은 모두가 어울리는 반면에 이 곳은 노장 2명이 엄격히 군기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홍명보는 아직도 조금 무섭다.(웃음) 다른 선수들은 이제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젠가 자기주장을 펼치려 그가 “Hiddink!", "No!!"라고 외칠 때마다는 내 등골이 다 서늘 하곤 한다. 황선홍은 웃는 표정이 너무 착해서 설마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역시 홍명보에게 혼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명보가 황선홍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혼자 웃었다. 지금은 모두가 다정다감하다. 나는 한국선수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들은 미워할..

도장을 위한 기도문.

내 책상에는 유독 2단 책꽂이가 놓여 있다.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부를 제외하면 우리 사무실에 거창하게 2단 책꽂이 '씩이나' 놓아둔 자리가 많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서는 결단코 아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책꽂이의 상당부분은 사전적 의미의 이 아닌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포장지, 스크랩북, 스크랩 못하고 쌓아놓은 신문들, 씨디, 팡이제로, 쓰려고 놓아둔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잘 바르지도 않는 바셀린 로션, 여름 다 지나도록 멍청하게 서있는 선스크린 스프레이. 며칠전 상층부에서 개인별 책상을 없애고 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인데 다들 반대하지만 나 역시 반대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책상을 좀(이 아니고 많이) 지저분하게 쓴다. 책꽂이 윗부분에까지 물건 쌓아두는 건 기본이고, ..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어떤 문제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스 그라스만, 중에서) 그런데 내 생각에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쳐내는 법을 아는 것이 행복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 갖고 지지고볶고 하기엔 시간이 좀 없는 탓도 있지만, 행복한 삶을 좀먹는 것들은 보통 사소한 일들일 경우가 많기 때문. 고등학교 때 읽었던 잠언집에 나온 말인데 "가장 훌륭하고 꼭 획득해야 하는 것은 단순함"이라고 했다. 그라스만의 말과는 다른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이 경구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