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는 고양이다

딸기21 2002. 12. 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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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인 듯.


개와 고양이 중에 어느 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고양이를 고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굳이 두 종류 중에 고르지 않고 이 세상 수많은 유전자 조합들에 문을 열어놓는다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 부류의 인간이다. 전생에 만일 어떤 동물이었다고 한다면, 필시 나는 고양이였을 것같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 3부작에는 자신과 영혼을 같이 하는(사실상 우리 세계에서 영혼이라 부르는 것과 동일한 존재인) 데몬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린(혹은 상상한) 나의 데몬은 의심의 여지없이 고양이였다. 다만 그 고양이의 털이 까만지 하얀지 혹은 파란색인지 황금색인지 얼룩덜룩한지에 대해서만 상상의 여백이 있었을 뿐, 나의 데몬은 물을 필요도 없이 고양이였다.


(개와 고양이 하면 투르니에의 글을 빼놓을 수 없지...)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를 친구로서 사랑한다. 반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개가 주는 것은 우정이고, 고양이가 주는 것은 자존심이다. 개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나를 따르는 존재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반면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것은 "나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전자는 <우정의 확인>이지만 후자는 <자아 선언>이다. 


불현듯 지금 자아선언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하고 나선 이유는? 


별 이유 없다. 고양이는 숭고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목적)는 무엇입니까"하고 꼬치꼬치 묻는 것은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고, 모든 행위에는 행위의 목적이 있다. 그 뿐, <개과(科)의 사람>에게 시시콜콜한 설명을 해줄 의무는 없다. 나는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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