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251

카우보이 비밥.

밤만 되면 마루에 상 펴고 앉아 손으로는 퍼즐을 풀면서, 귀로는 투니버스에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 메뉴는... 워낙 여러가지였기 때문에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이면 '시티헌터'가 나왔었다. '우수한'과 '사우리'라는 놀라운 이름(어쩜 저렇게 멋지게 한국화된 -_-)의 콤비가 나오는 시티헌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끝나면 항상 카우보이비밥이 흘러나왔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시청을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흘러나왔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멋모르고 틀어놨던 테레비에서 흘러흘러나온 비밥. 첫 느낌은? 어땠는지, 표현하기 힘들 때에, 주변의 누군가가 아주아주 정확하게도 '불쾌하다'는 표현을 썼었다. "난 카우보이 비밥을 보면 불쾌해져". 비밥이 불쾌한 이유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간만에 멋진 하늘

어째 나는, 계속 꿈을 꾸고 있거나, 상당히 up 되어서 부풀어있는 것 같다. 매사 그 모양이다...라고 말하면 너무 자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무엇이든 쉽게 정의(혹은 정리)해버리고 스스로를 굳게 믿으면서, 불안감이나 걱정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위안해버리면서, 붕 떠있는 듯한 생활에 쉽게 익숙해져서 금새 상승효과를 내곤 한다. 어쩌면 이 마을 분들과 '함께 지낸' 지난 몇달 동안 그런 '구름타기 모드'가 더한층 진행됐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간만에 멋지게 빛나고 있다. 반짝반짝. 가을이 오긴 온 모양이다. 이번 가을에는 꼭 하고싶은 일들이 있다. '하고싶은 일'이라 하기엔 좀 식상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다가 일부는 또한 나의 신분에서 오는 '의무'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세우기..

인터내셔널가

대학시절의 친구를 만났다. 오늘은 메이데이다. 친구는 내게 "날씨 좋다, 집회 하기에"라고 말했다. 친구와 영화를 보고, 회사 후배들을 만나 놀다가 밤이 되어 들어왔다. 또치님이 인터내셔널가 모음을 올려놓으셨다. 그걸 들으면서 울고 있다. 눈물이 많이 나와서 뚝뚝 떨어진다. 이그나치오 실로네의 소설같은 읽은지 한참 된 책들과 알고 지낸지 10년이 지난 친구들과 '랜드 앤드 프리덤'의 토론 장면들과 어린시절의 감수성 따위가 뒤죽박죽이 되어있지만 나는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안다. 나는 내가 지금 몇 살인지를,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를 알고 있고,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도 알고 있고,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감각한지도 알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인터내셔널가, 참 오랜만에 듣는 메아리와 최..

정말 미운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나요?

큐앤에이에 어느 분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다보면 싫은 사람도 올 것 같아요. 혹시 정말 미운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나요? " "정말 싫은 사람이 자꾸 와서 글 올리고, 물 흐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평소에 생각해보지를 않았거든요.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혹시 제가 그 분께 너무 싫은 짓을 하지는 않았던가 걱정됩니다),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해야겠기에 '정말 싫은 사람'이 우리 동네에 와서 글 올리고 물 흐린 적이 과연 있었던가 돌이켜 봤습니다. 결국 두 질문 모두에,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답 아닌 소리만 적어놓고 말았는데요. 이 곳은 온라인입니다. 물론 딸기마을 식구들 중에는 오프라인에서부터 저와 ..

이라크로 가는 친구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좀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일시적 우울증이라 하면--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바그다드와 암만에서 3주를 보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서 돌아왔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바그다드에서 나는 하루에 한갑씩 담배를 피웠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우유와 오렌지주스로 연명했고 계속 긴장된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연신 리모콘을 눌러가며 CNN과 BBC, 알자지라 방송을 봐야 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괴로왔다는 얘기를 다시 해야겠다. 여행기에서 언급했지만, 일주일 동안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저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할텐데"라고 기도해야 하는 현실은 나를 꽉꽉 조여왔다. 돌아온 뒤에도 외상성증후군처럼 후유증이 나를 따라다녔다. 회사 사람들이 전..

200억원이 생기면

어느분이 Q&A에 로또복권 얘기를 물으셨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오라고 하셔서 한번 사왔던 적 있고...몇해전에 친구의 부추김으로 한번 샀던 적 있고...그 외에는 복권을 사본 적 없던 것 같다. 대부분 그렇지 않나? 요즘 로또열풍이 불긴 했지만 젊은 사람이 그런 거에 매달려서야 쓰겠냐구. 나는 사행심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또 1층에 당첨돼 200억원이 생긴다면-- 세상에, 그 많은 돈을 다 뭣에 쓰나... 일단 친정 엄마 10억원, 아빠 10억원 드리고. 시부모님 앞으로 20억원을 저금해놨다가 매년 1억원씩 꺼내서 드리겠다. 한번에 드리면, 교회에 상당액을 헌금내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160억원이나 남네...그럼 우리 아파트 앞의 앞 동 큰 평형(43평형)으로 이..

택시기사 아저씨

어제 중동실업이라는 택시회사의 김길웅 아저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당산동에서 홍제동까지, 비교적 긴 거리(요금 8,500원 -..-)를 오는 동안 내내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택시를 타고 곧바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드렸었다. 어제 엄마가 우리집에 오시기로 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이 아저씨가 나한테 "집에서 누가 밥하냐"고 물었다. "우리 집에선 밖에 나가 사먹고요, 엄마네 집에선 엄마가 알아서 하시겠죠"라고 했더니 그 때부터 좔~좔~ 아저씨의 이야기(수다)가 넘쳐났다. "장모님 오시면 사위가 젤 좋아하겠네. 사위사랑은 장모지, 뭐. 친정어머니한테, 닭 한마리 푹 고아서 사위 먹이려 오시라고 하세요. 그럼, 사위는, 장모님한테 용돈이 50만원이야, 50만원! 씨암탉이나 토..

<라 발랄 비타> 중간보고

Q&A에서 어느 분이 물어오셨다. 원래대로라면 라고 제목을 붙여야 맞겠지만 최근 별 진전이 없었던 관계로 (실은 거의 퇴행하고 있는 수준) 그냥 라며 뭉뚱그리기로 함. ★ 당초 프로젝트의 목적 1. 인생을 폼나게 만든다 -> 지난 5개월을 돌이켜보건대, 비교적 폼 좀 나지 않았나 스스로 평가. 2. 나의 인생을 보고 남들이 '저 사람은 참 재밌게 사는데 대체 나는 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 여러분, 그동안 저의 재미난 (하루살이일지언정) 인생을 보면서 자괴감이 좀 들지 않았나요? ★ 수행기간 일단 2002. 7. 19. ~ 2003. 7. 18. (아직도 7개월20일이나 남았다!) ★ 수행과제별 평가 1. '촉촉한 인생' 부문 ->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어쨌든 째즈(아프로 꾸..

생각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뒹굴었더니 살맛이 난다. 역시 사람은 뒹굴어야 사색이든 무엇이든 가능한 법이다. 삶의 여유라든가 관조라든가 하는 것도 다 뒹굴어야 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한 일...이라고 하면 역시나 일 냄새가 나니까.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한 짓들. 아침에 남편 안 깨워서 지각시키고. 물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물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밀린 물값 오늘 꼭 드리겠다"고 사정하다시피 하고(덧붙여, 쌓아놓은 물통들도 오늘 반드시 드리겠다고 빌었다) 물값을 내려면 돈이 있어야지. 아파트 안에 있는 현금지급기가 하필 고장나서 은행까지 내려가 돈 10만원 찾음. 음료수랑 바나나, 우유(바나나우유가 아니라 바나나하고 우유란 얘기다. 난 집에 우유 떨어지면 에너지가 5분의1로 줄어든다) 사고.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