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 Abraham Lincoln's DNA & Other Adventures in Genetics 필립 R. 레일리 (지은이) | 이종인 (옮긴이) | 시공사 | 2002-09-27 저자의 솜씨: 글도 잘 쓰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유전학 역사상의 사건들을 버무려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다. 다만 지나친 낙관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일 뿐이므로 책을 읽는 재미가 그 때문에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일반적-전문적 접근의 양갈래를 잘 오가며 이해하기 쉽게, 심지어는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역자의 솜씨: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의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

[스크랩] 열쇠와 자물쇠-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에서

필경 오래된 집들은 어느 것이나 다 그럴 것이다. 나의 집에는 열쇠들과 자물쇠들이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열쇠라면 내 서랍 속에 넘치도록 가득 들어있다. 가장자리를 곱게 접어 감친 V자형 맹꽁이 자물쇠형 열쇠, 속이 빈 막대기 열쇠, 이중 걸쇠를 여는 다이아몬드형 열쇠, 공격용 무기 같은 거대한 뭉치 열쇠, 레이스처럼 예쁘게 깎은 반지모양 열쇠,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인 만능 열쇠. 신비스러운 것은 바로 그 점, 즉 집 안의 그 어느 자물쇠에도 이 열쇠들에 순순히 복종하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는 분명히 해두고 싶어서 그 모든 열쇠들을 하나하나 다 테스트해 보았다. 파스칼의 표현처럼 그것들은 식욕증진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났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

딸기네 책방 2002.10.20

[스크랩] 마음이 전하는 말들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마음이 늘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더니,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어느 한곳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향수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털어놓게 하고, 또 어떤 때는 사막의 해돋이에 동요되어 소리 죽여 흐느끼게 했다. 보물 얘기를 할 때면 거세게 뛰다가도, 그의 눈이 사막의 끝없는 지평선을 따라가다 길을 잃을 때면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가 연금술사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길을 갈 때조차도 마음은 결코 고요히 있는 법이 없었다. 그는 사막의 길을 가는 내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부리는 술책과 꾀를 알게 되었고,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두려움이 가시고,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어느..

딸기네 책방 2002.10.06

[스크랩] 엘뤼아르의 '시론'

시는 실제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말이 많은 내 친구들에게 숲속에 태양이 침대 속에서 몸을 맡긴 여자의 아랫배와 같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내 모든 욕망을 이해합니다. 비오는 날 수정이 언제나 사랑의 무료함 속에서 소리를 울린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사랑의 시간을 지연합니다. 내 침대의 많은 가지 위에서 결코 동의를 표시하지 않는 새 한 마리가 집을 짓는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나의 불안을 함께 나눕니다. 움푹 파인 샘물의 밑바닥에서 푸른 풀잎을 살포시 열며 강물의 열쇠가 돌아간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여전히 내 말을 믿고 더욱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모든 나의 거리와 끝없는 거리와 같은 나의 이 조국을 솔직히 노래한다면 당신들은 이제 내 말을..

딸기네 책방 2002.10.06

[스크랩] 살렘의 왕 멜키세덱

조그만 도시인 타리파의 경사지에는 예전에 무어인들이 건설한 오래된 요새가 있었다. 그 요새의 성벽 위에 앉으면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바다 건너 아프리카 땅도 시야에 들어왔다.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그날 오후 요새의 성벽 위에 앉아 불어오는 레반터(동풍)를 맞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양 여섯 마리가 주인이 바뀐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끊임없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먹이와 물 뿐이었다. 멜키세덱은 부두를 떠나는 작은 배 한 척을 보았다. 그 젊은 양치기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후에도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의 일이었다. 신들은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신들에게는 자아의 신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살..

딸기네 책방 2002.10.01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Tuva or Bust!: Richard Feynman's Last Journey 랠프 레이턴 (지은이), 안동완 (옮긴이) | 해나무2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오래동안 생각해오던 자금성에도 가고 싶고,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이집트, 이란, 이라크, 터키에도 가보고 싶고, 시원한 밤바람 맞으러 홍콩에도 가보고 싶고, 축구 보러 스페인에도 가고 싶고.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어디에든 가고 싶다. (랠프 레이튼. 해나무刊)이 가져다준 위안이 있다면, 굳이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리교사인 랠프 레이튼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우연히 투바라는 곳에 가고 싶다는..

우주 양자 마음

우주 양자 마음 The Large, The Small And The Human Mind 낸시 카트라이트 | 로저 펜로즈 | 스티븐 호킹 | 에브너 시모니 (지은이) 김성원 |최경희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2-10-30 언제인가, '괴델의 정리'를 놓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학자가 수학적 원리로 풀리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일종의 불가지론을 선언하다니. 공리(公理)란,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의식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 돼버리는가. 큰 물리학(고전물리학)과 작은 물리학(양자물리학)의 간극, 정신(의식)과 물질의 간극.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정한 의미의 거시이론'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의 지침인 양자론의 통합은 물리학자들의 지상과제다. 그런가 하면 물질로 이뤄진 ..

리얼리티에 질려버렸던 기억들

앞서 내가 니나와 다니엘라를 동경했다는 얘기를 했고, 빵빵이가 니나에 대한 을 올려놓은 걸 봤다. 덕분에, 생각난 김에 문학 이야기를 좀 하려고. 소설 읽은지 오래됐다-정확히 말하면, 예전에 읽던 그런 종류의 을 읽은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시리즈의 마지막권을 지난 주에 끝냈지만 너무 긴 세월(3년)에 걸쳐 읽다보니 긴장감이 확 떨어져버렸고, 후배가 갖고 있는 베르베르의 의 첫 몇장을 슬쩍 넘겨보다 놓았고, 어제는 스타벅스에 커피한잔에 팔아넘길 요량으로 이라는 연작소설집 중 전경린의 글을 보다가 집어치웠다. 맨처음 소설에 염증을 느낀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도 대학교 3학년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비롯해 한국단편소설들을 연이어 쭉 읽다가 어느 순간 지쳐버렸다. 이라는 것은 상..

딸기네 책방 2002.09.12

<제국의 패러독스> 미국 중도우파의 '건전한' 시각?

제국의 패러독스 The Paradox of American Power: Why the World's Only Superpower Can't Go It Alone 조지프 S. 나이 (지은이) | 홍수원 (옮긴이) | 세종연구원 | 2002-07-29 | 원제 조지프 나이(Joseph Nye) 만큼 우리나라 언론에 코멘테이터로 자주 등장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미 9.11 테러 1주년 특집을 다루는 여러 신문에서 나이의 이야기가 나왔고 인터뷰까지 다뤄졌다. 지금은 그 유명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학장으로 있지만 클린턴 정권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것을 포함해 명실상부한 로서의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나이의 저서 중에는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과 그 책은 성격이 좀 다르지만 스타..

딸기네 책방 2002.09.05

미카엘 엔데, '기관차 대여행'

어렸을 때 봤던 가 다시 출간됐다는 복음을 이제 접했다. 오늘 알라딘에서 '용케 생각난 김에' 미카엘 엔데의 책들을 찾아보니 길벗에서 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돼 있었다. 엔데는 나 로 아주 유명하지만 이상하게도 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아서였는지, 엔데의 첫 작품인 를 먼저 읽었다. 1부는 원제 그대로 였고, 2부는 이었는데 모두 두 권씩으로 돼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몇번을 들춰가며 보고, 삽화를 들여다보고, 머리와 가슴과 손과 간과 내장에까지 꼭꼭 간직해놨다. 그 뒤로 도 보고 , 도 봤는데 모두 아주 재미있었지만 만큼은 못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것의 줄거리를 보니, 제목에서부터 의역을 해서인지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나지를 않았다. '알퐁소 12시15분전 임..

딸기네 책방 2002.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