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마틴 브룩스, '초파리'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초파리 An Experimental Life 마틴 브룩스 (지은이), 이충호 (옮긴이) | 이마고 를 읽은 뒤 인도라는 주제를 좀 더 읽어볼까 하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두꺼운 를 포기(!)하고 다시 유전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며칠새 유전자에 관한 책 2권(와 )을 읽었는데 둘 다 내용이 제법 있는 책들이다. 그렇지만 전자는 주제의식에 비해 재미가 없었으므로 생략하고 에 대해서만 소개를 하자면. 유전자라는 말, 과학전공자들끼리만 소곤소곤하는 단어가 아님은 분명하다. 신문에건 어디에건 툭하면 등장하는 '흔한 단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앞에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원제는 Fly: an experimental life인데 우리나라 번역본에..

마하트마 간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간디.

마하트마 간디 -Rediscovering Gandhi 요게시 차다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한길사 .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인물이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읽고 나면 글로 남기고 싶은 감상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마지막장을 덮고 난 지금 오히려 내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내가 최근 세운 계획 중의 하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이해'를 해본다는 것도 들어있었다. 850쪽이 넘는 긴 전기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의무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었다. 지난해 인도史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할 거리들이 별로 없었다.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편적인 몇가지 어..

딸기네 책방 2002.08.07

[스크랩] 라픽 샤미 '말하는 나무판자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

다니엘 삼촌은 타고난 발명가였다.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지닌 삼촌이 세 번이나 구속되어 고문을 받았던 건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구속은 별 것 아닌 일로 시작된 싸움 때문이었다. 손님 하나가 수리비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삼촌은 손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손님의 친척이 비밀경찰이라는 것을 몰랐던 삼촌은 시계를 가져가기 전에 수리비를 달라고 고집했다. 말이 말을 부르고 언성이 높아지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당신이 사기꾼이라는 건 우리 가게에 들어설 때 벌써 알아봤지." 삼촌이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예언가라도 되나?" 손님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래 예언가다." 흥분한 삼촌이 말했다. "어디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지." 손님이 빈정댔다. "그래, 난 예..

딸기네 책방 2002.06.21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

1001개의 거짓말 라픽 샤미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문학동네 | 2002-04-08 오랜만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책을 읽었다. 라픽 사미의 소설이라면 예전에 '한줌의 별빛'을 읽은 적이 있다. 시리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소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것이었는데, 아주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우화라면 우화이고, 또 주인공 사딕의 주장대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거짓말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이 다단한 세상에서 선뜻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엇이든 진실의 일면과 거짓의 일면을 갖고 있는데. 순환논법에 회의론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유려한 말솜씨로 사딕이 풀어내는 여러가지..

딸기네 책방 2002.06.21

마이 퍼니 베이비 - 엄마 되는 험한 길

마이 퍼니 베이비 김지윤/대원씨아이 "내가 아주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내 선배 부인 얘긴데, 실화야. 쌍둥이를 낳고 두달만에 임신이 됐는데 또 쌍둥이였대. 무더운 여름인데 집에 에어컨이 없었던 거야. 두번째 쌍둥이가 태어나니까 남편의 눈길이 싸늘해지더래. 집안은 네 아이로 와글와글. 이 누나의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와병중. 그런데 하필 옆집이 공사중이라 여름에 창문도 못 열어놓고, 방 두개짜리 좁은 집에서..." 남편이랑, 아내랑 여름밤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틀어놓고 마루에 드러누워 나누는 납량특집 엽기괴담의 내용입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쌍둥이 남자아기들을 키우는 종민이와 수진이,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어린' 부부에게는 임신, 출산, 더위가 그야말로 납량특집이지요. 간담..

딸기네 책방 2002.05.25

13억의 충돌 - 시장의 신화와 중국의 선택

13억의 충돌 - 시장의 신화와 중국의 선택 한더치앙 (지은이), 이재훈 (옮긴이) | 이후(시울) 13억의 충돌. 이른바 '신좌파'로 불리는 중국의 소장 경제학자 한더치앙은 중국의 시장경제 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도약 아닌 '충돌', 그것도 13억명의-. 지구상 인구 5분의1의 운명이 달린 이 실험에 대해 현지의 젊은 경제학자가 내쏟는 비판은 시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 다소 구태의연하고, '유행에 뒤떨어진' 소리처럼 들리는 주장이다(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요즘 유행이 그렇다는 얘기다). 책꽂이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책을 찾다보니 본의 아니게 이 책을 주교재로,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을 부교재로 삼아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됐다. 한더치앙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딸기네 책방 2002.05.25

리처드 르원틴, '3중 나선'

3중 나선 - 유전자, 생명체 그리고 환경 리처드 르원틴 (지은이), 김병수 (옮긴이) | 잉걸 리처드 르원틴의 '학자적 면모'를 드러내 주는 책이라고 알라딘 서평에는 써 있었는데. 과학과 철학의 문제, 생물학(방법론)의 도그마와 오류들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결국 유전자, 생명체 그리고 환경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과학은 은유다'라는 그의 지적만큼은 과학痴인 나에게는 큰 격려가 됐다.(저자의 목적은 그런 류의 위로사를 쓰는 것은 절대 아니었겠지만) 과학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너무 작은 미립자, 너무 큰 우주,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은유'들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실상 실체를 보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은유를..

조너선 스펜스, '칸의 제국'

칸의 제국 조너선 D. 스펜스 (지은이), 김석희 (옮긴이) | 이산 . 서양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금세기 이전까지 여러 차례의 접촉(주로 정복과 관련있는)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모습은 바로 저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접근 방법은 늘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무지하게 칭찬했던 는 정통 역사책 글쓰기를 보여주는 반면 또다른 저술인 (게을러서 서평을 못 올렸습니다--;;)는 황제의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아주 훌륭합니다. 은 마르코 폴로에서부터 보르헤스까지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적어놓은 텍스트들을 꼼꼼이 분석해서 '서양인의 마음 속에 비친 중국'을 설명합니다. 마르코 폴로 이후 서유럽의 탐험가들과 예수회 선교사들, 중국을 방문한..

딸기네 책방 2002.04.25

[스크랩] 마르코폴로와 쿠빌라이칸의 대화

"네가 한사코 말하지 않는 도시가 아직 하나 있다" 마르코 폴로는 고개를 숙였다. "베네치아." 칸이 말했다. 마르코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지금까지 폐하께 말씀드린게 베네치아 말고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자 폴로가 말했다. "저는 다른 도시를 설명할 때마다 항상 베네치아에 대해 무언가를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호수의 수면에 잔물결이 일었다. 송나라 때 지은 오래된 왕궁의 구릿빛 물그림자가 산산이 부서져 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반짝거렸다. "기억 속의 이미지란 것은 일단 말 속에 붙박이면 지워지는 법입니다." 폴로가 말했다. "베네치아에 대해 이야기하면 베네치아를 완전히 잃어..

딸기네 책방 2002.04.13

[스크랩] 곤충이 살충제를 이기는 방법

조너던 와이너의 에서 읽은 겁니다. "이 세계적인 저항운동을 연구하는 진화학자들은 네 부류의 적응이 일어난 것을 본다. 공격받는 곤충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로가 네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적인 저항운동'이란, 다름아니라 살충제에 맞선 곤충들의 저항을 얘기하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들을 위해, 어느 한 종류의 동물을 아예 절멸시키겠다는 생각을 서슴지 않고 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 '살충제'라는 핵폭탄(벌레들 입장에서는)을 만들어냅니다. 하긴, 같은 인간들을 겨냥해서도 핵폭탄을 터뜨리는 종이 우리들일진대, 그깟 나방이나 나비, 파리 따위야 안중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곤충들은 '적응'을 합니다. 토인비 식으로 보자면 인간의 도전에 대한 곤충의 '응전'인 셈입니다. 첫째, 곤충은 그냥 피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