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스크랩] 체 게바라, 몇편의 시들

(에 실려 있는 몇편의 시들이다. 이산하 시인이 묶은 것과는 조금 순서를 바꿨다. 시의 행들도 내 마음가는대로 읽기 위해 시인이 편집해놓은 것하고 다르게 붙이고 떼고 했다.)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 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

딸기네 책방 2002.12.01

매트 리들리, '붉은 여왕'

붉은 여왕 The Red Queen 매트 리들리 (지은이), 김윤택 (옮긴이) | 김영사 과 를 통해 국내에서도 탁월한 과학저술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매트 리들리가 性선택 이론을 근간으로 인간의 성격과 행태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학습이냐, 본능이냐. 저자의 주장은 두 가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의 공통점은? 유전자 과신론자가 아니라, 유전자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는 건, 그들을 해야 된다는 얘기랑은 다르다. 를 부정하면서 모든 것을 과 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리들리의 주장대로 하고 맞닥뜨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 난 리들리의 책들을 참 좋아한다. 특유의 재치있고 명쾌한 설명. 낙관적이면서도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

크리스토퍼 히친스, '키신저 재판'

키신저 재판 The Trial of Henry Kissinger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은이) | 안철흥 (옮긴이) | 아침이슬 | 2001-12-08 역시나 책꽂이에 얹어두고 있다가 다시 꺼내 읽었는데 뜻밖에 술술 넘어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 중 하나라는 히친스는 여러 사료와 증언들을 종합해서 키신저라는 인간이 저지른 비열하고 잔혹한 행태들을 까발리고, 그의 무책임하고 저급한 변명과 거짓말을 맞받아친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워드 진 보다는 표현이 좀 격렬하고, 노엄 촘스키보다는 덜 신랄하다. 문체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내용에서는 충실도나 역사의식으로 보나 두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촘스키의 와 묶어서 읽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는 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까. 지..

딸기네 책방 2002.11.19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전쟁 사이먼 리브 (지은이) | 한영탁 | 황의방 (옮긴이) | 중심 | 2001-11-10 지겨운 감이 없잖아 있어 제껴놓고 있던 책 2권을 내쳐 읽었다. 사이먼 리브의 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 둘 다 지난해 9.11 테러 뒤부터 줄곧 책꽂이 한켠을 장식하던 것들인데 드디어 해치웠다. 은 북리뷰팀에서 가져다준 것을 책꽂이에 꽂아만 놓고 있다가, 갑자기 손이 그리로 가는 바람에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원제(The New Jackals)에서 알 수 있듯, 20세기 최고.최악의 테러리스트로 꼽혔던 자칼의 뒤를 잇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는 93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의 주범인 람지 유세프, 후반부는 지난해 9.11 테러의 마스터마인드 오사마 빈..

딸기네 책방 2002.11.19

신의 방정식

신의 방정식 God's Equation ; Einstein, Relativity and the Expanding Universe 아미르 D. 악젤 (지은이), 김희봉 (옮긴이) | 지호 아마 신(神)은 하늘나라에 간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났을텐데, 아인슈타인에게 뭐라고 했을까. 얼마전부터 이 홈페이지를 통해 교류를 하게 된 김희봉님의 번역서다. 과학서적 번역가로서는 아주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해서 보증수표 받은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믿음이 유효했다. 아인슈타인의 마당방정식(기존 용어로 얘기하면 場이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면서 아인슈타인의 일생과 사람됨을 같이 보여주는데, 위인전 중에서 재미있는 위인전처럼 재미있다. 마당방정식을 만들어가는 아인슈타인의 연구는 유클리드기하학(공간)에서 非유클리드..

바라바시, '링크'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Linked: The New Science of Networks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은이), 강병남, 김기훈 (옮긴이) | 동아시아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 A,L. 바라바시의 를 읽었다. 재미있다가 재미없다가 또 재미있다가 다시 재미없어졌다가 했는데, 과학저술로서 아주 탁월한 편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 책은 복잡한 네트워크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들은 어떤 구조를 갖는지, 그 네트워크들이 갖는 취약점과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네트워크의 연구가 갖는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네트워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개념들을 아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웹과 같은 친밀한 네트워크와 종래의 각종 수학퍼즐들을 소재로 풀이하고..

[스크랩] 파블로 네루다, '시'를 만나게 된 이야기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 시집이 한 권 있었다. 일월서각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제목에 '제3세계'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집은 지금까지도 '왜 못 챙겨놨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 중의 하나다. 그 책에 나왔던 글들, 아주 신랄하면서도 처절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을 그 뒤에는 보지 못했다. 파블로 네루다니, 옥타비오 빠스니 하는 이름들을 알게 된 것도 그 책을 통해서였다. 중남미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시인들의 작품도 꽤 많이 들어있었는데 모두 내게는 문화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의 가난을 촌철살인의 문구로 찔러대는 글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시아라 하면 타고르밖에 몰랐던(그것도, '동방의 등불') 나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이나 유럽 아닌 곳에..

딸기네 책방 2002.11.01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 Abraham Lincoln's DNA & Other Adventures in Genetics 필립 R. 레일리 (지은이) | 이종인 (옮긴이) | 시공사 | 2002-09-27 저자의 솜씨: 글도 잘 쓰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유전학 역사상의 사건들을 버무려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다. 다만 지나친 낙관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일 뿐이므로 책을 읽는 재미가 그 때문에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일반적-전문적 접근의 양갈래를 잘 오가며 이해하기 쉽게, 심지어는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역자의 솜씨: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의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

[스크랩] 열쇠와 자물쇠-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에서

필경 오래된 집들은 어느 것이나 다 그럴 것이다. 나의 집에는 열쇠들과 자물쇠들이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열쇠라면 내 서랍 속에 넘치도록 가득 들어있다. 가장자리를 곱게 접어 감친 V자형 맹꽁이 자물쇠형 열쇠, 속이 빈 막대기 열쇠, 이중 걸쇠를 여는 다이아몬드형 열쇠, 공격용 무기 같은 거대한 뭉치 열쇠, 레이스처럼 예쁘게 깎은 반지모양 열쇠,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인 만능 열쇠. 신비스러운 것은 바로 그 점, 즉 집 안의 그 어느 자물쇠에도 이 열쇠들에 순순히 복종하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는 분명히 해두고 싶어서 그 모든 열쇠들을 하나하나 다 테스트해 보았다. 파스칼의 표현처럼 그것들은 식욕증진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났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

딸기네 책방 2002.10.20

[스크랩] 마음이 전하는 말들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마음이 늘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더니,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어느 한곳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향수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털어놓게 하고, 또 어떤 때는 사막의 해돋이에 동요되어 소리 죽여 흐느끼게 했다. 보물 얘기를 할 때면 거세게 뛰다가도, 그의 눈이 사막의 끝없는 지평선을 따라가다 길을 잃을 때면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가 연금술사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길을 갈 때조차도 마음은 결코 고요히 있는 법이 없었다. 그는 사막의 길을 가는 내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부리는 술책과 꾀를 알게 되었고,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두려움이 가시고,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어느..

딸기네 책방 200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