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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무, 0의 세계

딸기21 2003. 2. 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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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무, 0의 세계 The Nothing That Is a Natural History of Zero

로버트 카플란 (지은이) | 심재관 (옮긴이) | 이끌리오 | 2003-02-10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와 없음의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숫자 ‘영(0)’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존재하는 무 0의 세계’는 0이라는 숫자를 통해 존재의 역설을 증명하고,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0이라는 숫자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고대유적을 모아놓은 박물관을 돌며 0이 남긴 자취와 그것이 취해온 다양한 형태들을 파악하는 것이다(‘숫자 따라 세계여행’ 식의 나열로 읽지 말고 저자의 안내를 따라 상세하게 밑줄 쳐가면서 읽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 문명이 남긴 정신과 상상력의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시간과 사상의 강물을 헤쳐온 0의 여정’은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고비를 넘나든다. 바빌로니아에서 탄생한 0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렸다. 숫자에 기하학적(시각적)으로 접근했던 피타고라스 시대의 수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 0을 보는 투시경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0은 인도에 가서 다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카, 수냐, 아카사, 암바라 같은 여러가지 이름을 거느리고. 0은 장소를 옮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만한 없음’이라는 인도 특유의 공(空) 사상과 맞물리며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바다 건너 마야에서 이 불가사의한 존재는 시간과 결합돼 어둠의 주술사로 변신하기도 한다. 시간의 메커니즘에 집착했던 마야인들의 순환론적 세계관,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시간의 주기성이 이 곳에서 0을 이해하는 열쇠다. 0은 달력의 첫 장과 끝 장 사이, 시간의 주기가 끝나고 시작되는 교차점에 위치한 불길한 숫자. 그래서 그들은 종말의 얼굴을 한 0의 앞에 제물을 바쳤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보자. 중세가 되면 0은 신비로운 연금술과 만난다. 기독교의 직선적 세계관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운운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0은 악마였다. 그러나 0은 ‘살아남았다’. 상업의 발흥과 함께 복식부기법이 퍼지면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사이에 있는 균형추로 되살아났다. 수학(이성)의 시대가 종교의 시대를 흔들기 시작하고 오늘날 보는 것과 유사한 방정식이 등장하면서 0은 드디어 문제의 해답을 주는 친구, ‘인수분해라는 춤의 안무자’가 된다. 미분적분 단계에 오면 0은 ‘극한’이라는 개념과 만나면서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안내자로 모습을 바꾼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그것을 기호화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합성체를 만들어낸다. 이런 작업을 거듭 거치면서(반복적 추상화) 인간은 ‘현재 바라다 보이는 전망을 뛰어 넘어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당나귀가 사자가 되고 싶어하듯 허풍을 떨며 마치 자기가 숫자인 것처럼 행세했던 0이라는 놈”(15세기 프랑스 문헌)은 당당히 숫자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넘어, 위계질서에 젖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알레고리와 변화의 리듬을 부여하는 존재로 격상된다.


숫자의 세계를 수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냥 ‘수학책’이다. 이 책의 묘미는, 수학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한껏 찔러준다는데 있다. “인류의 역사는 0의 역사다”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되겠지만, “상상력과 이성이 만나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며 이 세계를 이끌어왔다”고 하면 그럴듯한 얘기로 들리지 않겠는가.


역사의 강물을 따라 흘러온 독자에게 저자는 재미난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무(無)’라는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을까? 뒷부분에서 저자는 ‘완벽한 진공’을 포함해 ‘무’를 눈으로 보고 싶어했던 과학자들의 몇가지 실험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영, 즉 ‘무’가 세상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는 없을까. 공간의 끝과 시간의 시작이 만나는 곳, 우리의 0이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없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옴팔로스(세계의 배꼽)는 어디일까. 아인슈타인에게 물어보라.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0의 세계관’의 중심에는 20세기의 거인이 서있다. 때로는 악마의 얼굴로, 때로는 산술판의 빈 자리로, 때로는 열쇠로 여겨졌던 0은 최근 들어 ‘1’이라는 짝을 만났다. 디지털 세상을 이끄는 코드, 세상의 지배자가 되려 하는 0의 위력은 21세기에 더욱 커져갈 것이다.



<책 중에서>


“세상은 무엇부터 시작되었을까?”라는 문제에 대한 그럴듯한 답에서 0을 찾을 수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 문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의 결론은 땅과 바다는 애초에 보이지도 않았고 빛과 형태도 없었으며, 하느님은 prope nihil, 즉 거의 무에 가까운 것으로부터 그 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완전히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형체 없음(formlessness)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아무런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16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현대의 관점이 그의 사상과 유사한가를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빅뱅 후에 우주가 차차 식어가자 물질과 반(反)물질은 거의 대부분 상쇄되어 순수한 방사선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대칭은 완벽하지 않았다. 쿼크와 반쿼크 1억쌍을 짝짓고 나면 한 개의 쿼크가 남았다. 이 여분의 쿼크가 바로 물질의 토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별을 이루고 행성을 이루고 마침내는 갈매기와 우리들로 진화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공간의 끝과 시간의 시작, 그 어느 곳에도 영이 웅크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명 사물들의 정가운데에서 영을 찾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영은 양팔 저울의 받침대이고, 양팔에는 음수와 양수가 각각 달려있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중앙은 어디일까? 제우스가 독수리를 날리던 시절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순전히 이론적 근거에 입각하여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을 확립했다.

우주의 중심인 이 지구의 중앙을 초기 이슬람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지붕’이라 불렀고, 인도인들은 랑카섬으로 불렀다. 마왕 라바나가 랑카섬에 미로로 된 요새 야바나코티를 지었다. 그 설계도는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에서 아틀라스의 아들들이 지었다는 왕궁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아틀란티스는 그 죄악으로 인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1560년 코페르니쿠스가 결정타를 날리기 전부터 다양하고 주목할 만한 비판을 받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세대에 걸쳐 활동했던 스토아학파는 물질로 된 우주가 무한한 진공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다양한 상상의 결과를 결합하자. 그러면 지성의 힘으로 그대들은 이 세상과 그 움직임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중심도 둘레도 없는 바퀴 속에 바퀴가 끊임없이 들어있는 그림, 혹은 구(球) 안에 구가 무한히 들어가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쿠자누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중심은 태양으로 옮겨졌고, 50년이 지난 케플러 시대에도, 또 세월이 좀더 흘러 뉴턴 시대에도 중심은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달랐다. 그는 뉴턴에 대한 공격을 공간에 대한 것으로까지 밀고 나갔다. 뉴턴에게 있어 공간이란 그 안에 놓여있는 물체들 간의 관계가 의미를 갖게 해주는 하나의 틀이었다. 반면 라이프니츠에게 있어 공간은 서로 연관된 물체들의 단순한 순서일 뿐이었다. 이들 물체가 없다면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뉴턴의 생각에 따르면 비어 있는 완벽한 공간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다스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그 공간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계이며, 따라서 항상 하느님은 그 시계의 태엽을 감아야 했다.


이 논란은 용어와 수사법, 논쟁자들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년이 지난 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그 논란은 단번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절대 운동을 언급하기 위하여 절대 공간을 지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은 관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완벽한 것에서는 변화를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공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라이프니츠의 이런 생각을 거꾸로 뒤집어버렸다. 각자가 관측하는 곳은 각기 다른 좌표계이며, 이 좌표계 하나하나는 자신의 중심, 즉 영을 가지고 있다. 좌표게가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좌표계에 대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경우에 그 좌표계 안의 성원들에게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 좌표계로부터 관측된 사건은 발생 시간과 장소가 좌표계마다 다르게 기록되지만, 이 사건들을 규율하는 법칙은 차이가 전혀 없는 동일한 것으로 읽힌다. 이것이 상대성원리인데, 중심점이 있는 절대 공간의 개념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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