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27

[구정은의 ‘수상한 GPS’] 미 정보기관 연례보고서, ‘중국’ 언급이 85차례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29일(현지 시간) ‘세계위협평가’ 연례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북한 핵 위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기조보다 ‘위협적으로’ 평가한 반면, 이란의 ‘핵 야심’은 사실상 중단된 걸로 봤고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위험성 또한 상존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모저모로 트럼프의 기조와 엇갈리는 것들이 많다는 점을 미국 언론들은 집중해서 보도했습니다. ATA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2006년부터 매년 만들어 공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러 정보기관들이 모아온 정보들을 분석·정리한 것으로, 국가정보국장이 상원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9·11 뒤 생겨난 ‘국가정보국장’ DNI는 보통 국가정보국장이라 합니다만, 이 영어약칭 자체가 그 인물의 직책을 말하..

[기협칼럼] 불과 글, 기자와 글

뉴미디어로 뉴스의 형태가 바뀌면서 신문기자들도 영상을 고민하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20여 년 동안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지만 글이 아닌 무언가 다른 형태로 생각을 내놓는 것에 아직 나는 익숙하지 않다. 글이 아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 해서 딱히 ‘글쓰기’를 놓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고민’은 대학 시절 일본 적군파 다미야 다카마로가 책에 썼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글쓰기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글쟁이’라든가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다. 신문기자이지 작가나 시인은 아니니까. 그렇게 나는 기자의 글과 시인의 글 사이에 분..

[구정은의 ‘수상한 GPS’] 에어비앤비와 이스라엘, 플로리다와 ‘쿠바 유대인’  

숙박 공유 회사인 에어비앤비와 이스라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에어비앤비가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촌’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집 가진 사람들이 ‘호스트’가 돼서 자기 집을 숙소로 등록해 숙박객을 받는 플랫폼 기업이다. ‘정착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 유대인들이 살게 만든 마을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동쪽,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에 이런 정착촌들이 산재해 있다. 이스라엘은 그 마을들을 잇는 도로를 만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지나다니거나 우물을 파는 것까지 통제하며 사실상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만든 정착촌에 현재 이스라엘 국적자 60만명이 산다. 이스라엘은 올들어서도 요르단..

[구정은의 ‘수상한 GPS’]미국과 중국의 ‘콩 전쟁’  

지난해 12월 13일, 중국 상무부가 미국산 대두를 수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해 7월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격화된 뒤 처음으로 중국이 미국산 콩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를 2019년 1월 1일부터 40%에서 15%로 한시적 인하한다는 것과 함께 발표된 중국 측의 화해제스처였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孟晩舟)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 소동 와중에 나온 조치이기도 했다. 트럼프에게 준 ‘선물’ 미국 농무부의 스티브 센스키 부장관은 중국이 대두 113만톤을 구매하기로 했다면서 “큰 걸음(great step)”이라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예년엔 3000만~3500만톤을 사갔었다”면서 추가구매를 압박했다. 미국 대두수출협회도 중국 곡물회사 시노그레인과..

[구정은의 세상]아고라와 유치원···국회의원들을 벌 주려면

다음이 아고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사이트에 “그동안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납니다”라는 안내글을 올렸다. 여론광장의 큰 축이던 게시판들은 ‘게시물 백업’이라는 최후의 서비스와 함께 사라진다. 아고라도,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네르바’도, 이젠 지나간 이름들로 남게 됐다. 싸이월드나 프리챌처럼 한 시절 사람들을 끌어모으다가 쇠락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적지 않지만 아고라의 소멸은 ‘빛이 바래기 마련인 추억’을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자 초년병 때, PC통신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우누리 아이디 @koje***는 무엇무엇이라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유저 반응이 기사에 인용되곤..

[기협 칼럼] 취약한 사회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다. IPTV로 즐겨 보던 중국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만, 인터넷만 끊긴 게 아니고 전화가 아예 먹통이 된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났구나 하면서 동네를 서성이다가 3G 연결망이 이어진 곳을 찾아 뉴스를 확인했다. KT 아현지사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보기술(IT)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통신사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이날 먹통 사태에 대해 대뜸 꺼낸 말은 “KT가 금융사업에 치중하면서 엔지니어들을 많이 잘라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우리 부서의 이혜인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 그동안 KT가 구조조정을 참 많이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 회사만..

[구정은의 세상] 맘들의 분노, 맘들을 향한 분노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아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멋대로 빼내 물건을 사고, 월급도 수당도 마음대로 정해 보너스를 챙기고 아들딸에게까지 줬단다. 엄마들이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다. 경기 김포에선 아이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 학대교사로 지목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 없는 젊은 엄마들, 제 아이만 귀한 줄 알고 헛소문에 휘둘려 ‘신상털기’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다. ‘맘카페’는 온라인 적폐로 지목됐다. 엄마들의 분노, 엄마들을 향한 분노. 비난과 손가락질의 강도를 보면 후자가 훨씬 더 센 것같다. 근래 여론의 바로미터처럼 돼버린 청와대 청원을 보면 사립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고 처벌을 강화하라는 청원에는 8000여명, 아동..

[구정은의 세상] 평화상 뒤의 실력자(?), 노벨위원회의 토르뵤른 야글란트

올해 노벨평화상은 드니 무퀘게와 나디아 무라드에게 돌아갔군요. 논란 많았던 근 10년의 수상자 선정에 비춰 보면, 올해에는 '받을 만한 사람' '줄곧 거론되던 사람'에게 줬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전쟁 중 성폭력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요. 잘 알려진 대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대개 정하지만 유독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됐다는데 (사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지는 100년 밖에 안 됐어요;;) 왜 그렇게 정한 것인지는 노벨이 직접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무언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서 수상자를 정할 것 같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습..

[구정은의 세상]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

[기협 칼럼]가난은 날씨가 되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오니 무더위가 그래도 좀 수그러들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8월 초의 그날, 스포츠 중계하듯 기상청의 공식 측정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여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을 취재하고 온 기자의 기사엔 찜통 더위 속에 방안에 누워 선풍기 한 대 틀어 놓고 하루를 보내는 어떤 이의 코멘트가 들어 있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잠을 자야만 시간이 가니까 잔다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더운날 오체투지를 하던 쌍용자동차 사람들,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 말씀’을 외치던 사람들, 이 여름 한국의 풍경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며칠 전부터 예보가 흘러나오고, 더위를 식혀줄까 가뭄을 해갈해줄까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