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20

[구정은의 세상] 평화상 뒤의 실력자(?), 노벨위원회의 토르뵤른 야글란트

올해 노벨평화상은 드니 무퀘게와 나디아 무라드에게 돌아갔군요. 논란 많았던 근 10년의 수상자 선정에 비춰 보면, 올해에는 '받을 만한 사람' '줄곧 거론되던 사람'에게 줬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전쟁 중 성폭력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요. 잘 알려진 대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대개 정하지만 유독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됐다는데 (사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지는 100년 밖에 안 됐어요;;) 왜 그렇게 정한 것인지는 노벨이 직접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무언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서 수상자를 정할 것 같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습..

[구정은의 세상]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

[기협 칼럼]가난은 날씨가 되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오니 무더위가 그래도 좀 수그러들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8월 초의 그날, 스포츠 중계하듯 기상청의 공식 측정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여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을 취재하고 온 기자의 기사엔 찜통 더위 속에 방안에 누워 선풍기 한 대 틀어 놓고 하루를 보내는 어떤 이의 코멘트가 들어 있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잠을 자야만 시간이 가니까 잔다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더운날 오체투지를 하던 쌍용자동차 사람들,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 말씀’을 외치던 사람들, 이 여름 한국의 풍경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며칠 전부터 예보가 흘러나오고, 더위를 식혀줄까 가뭄을 해갈해줄까 은..

[구정은의 세상]대통령이 할 일, 민주노총이 할 일  

한낮의 기온은 40도 가까이 치솟고. 남쪽 바다는 아열대로 바뀌어가고. 추위도 더위도 불평등해서, 힘든 사람은 이 폭염을 더 힘들게 견뎌내야 하고. 여전히 거리엔 천막 하나 펼쳐 놓고 농성 중인 사람들이 남아 있고.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이 여름의 풍경들. 그래도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KTX 해고 승무원들 문제처럼 오래도록 끌어온 이슈들이 해결되는 걸 보면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누군가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고,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미완의 승리이자 부족한 타협책일 터다. 그래도 그 고통에 사회가 공감했고, 지난한 세월의 마무리를 짓게 됐다는 건 말 못할 아픔 속에 거둬낸 성과다. 그 힘든 싸움을 해낸, 이겨낸 분들을 ‘피해자’라는 말로 표현하는 건 어쩐지 죄송스럽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쌍..

[기협 칼럼]가짜난민

제주도에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인들을 비난하며 반대 시위를 하고, 이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청와대 청원을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상상했던 대로인 동시에 상상 이상이다. 이미 난민 유입문제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던 구미 국가들도 한국의 이런 노골적인 모습에는 좀 놀란 것 같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섬으로 도망쳐온 예멘 난민 500명에 한국인들이 분노했다”고 적었고, 독일 도이체벨레는 “한국인들은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들어오자 저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은 “한국의 반 난민 백래시가 전쟁을 피해 망명지를 찾아온 예멘인들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백래시(Backlash)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역작용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나는 걸 백래시라..

[구정은의 세상] 김정은과 샤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았다.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는 '에어포스원'을 타고 미국으로 떠났고, 김 위원장도 한밤중 창이공항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싱가포르의 세인트레지스 호텔에 묵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굉장히 비싼 방일 것은 분명하다. 세상 일은 참 재미있다. 싱가포르의 세인트레지스 호텔. 원래 이 호텔은 존 제이콥 아스토르4세(John Jacob Jack Astor IV)라는 미국 기업가가 창업한 호텔 체인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호텔은 뒤에 스타우드로 들어갔고. 스타우드는 2016년 매리어트에 인수됐다. 당시 중국 안방(安邦)보험이 스타우드를 사들이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세계에서 전방위로 인수합병전을 펼치던..

시리아와 북한, 오바마와 트럼프

국제관계에서 솔직함 혹은 정직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상과 현실은 어떤 기능을 할까? '기능'이라고 하니 너무 추상적이다. 좀 더 쉽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나쁜 나라, 나쁜 지도자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하고 때려주는 게 좋을까, 일단 싸움은 막고 사람들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을까. 이렇게 물으니 또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굉장히 복잡한데. 버락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고, 솔직하지 못했고, 무능했다. 최소한 시리아 문제에서라면. 바샤르 알아사드라는 독재자를 몰아낼 뜻이 없으면서 나쁘다고 지탄했고, 쫓겨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미국이) 쫓아내야 한다' '쫓아내겠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란이 물밑에서 협상을 해주고, 그래서 러시아가 아사드의 안전보장을 해주면서 시리아가..

[구정은의 세상] 밥값과 평화

대학시절의 어느 겨울, 한 달 동안 ‘알바’를 했던 회사가 있었다. 종일 서서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아 있기로는 좋은 회사였다. 4대보험에 가입시켜줬고,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야쿠르트와 초코파이를 줬다. 가끔씩 그 회사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출근하기 너무나 싫어 회사를 그만둘까 했던 기억, 그리고 국. 밥과 함께 나오는 그 국 말이다. 끼니 때마다 국물을 싹싹 퍼먹는 내게, 1cm 깊이로 퍼주는 국은 언제나 모자랐다. 낯선 분위기에서 쭈뼛거리느라고 밥 퍼주는 분에게 ‘국 더 달라’는 말도 못한 채 한 달 동안 점심을 먹었다. 기숙사는 공짜였다. 앉은뱅이 탁자 하나에 텔레비전을 놓아둔 동료 방에 놀러가기도 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대개들 지하철 요금을 ..

[기협 칼럼] 청와대와의 경쟁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리고 만 하루 동안 청와대 페이스북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라며 회담 사실을 공개한 글로 시작해 두 사람이 만나는 사진, “회담 결과는 27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힐 예정”이라고 예고한 글, 현장의 영상, 회담 결과를 전하는 문 대통령의 동영상, 발표문 전문, 기자회견 문답, NSC 상임위원회 회의결과 브리핑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와 트위터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그대로 올라왔다. 영상 제작 뒷이야기같은 ‘팬서비스’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들은 남북 정상의 ‘번개’를 재빨리 속보로 전했고, 시민들 관심은 높았고, ..

[구정은의 세상]남북의 시간은 같이 흐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서는 민족, 혈통, 핏줄이 훨씬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남북 정상의 산책과 회담과 만찬의 순간순간들을 담은 동영상들이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정상회담 덕후’들이 곳곳에 생겨난 모양이다. “누군가 방명록에 사인하는 걸 실시간 생방으로 지켜볼게 될 줄이야”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정상회담은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다. 민족의 운명, 공동번영, 자주통일. ‘민족’은 얼마나 무거운 말인가. 핏줄이나 혈통, 이런 것들이 강조하는 무언가를 생각하면 중압감이 든다. 나 개인을 넘어선,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무언가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 앞에서 개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