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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시리아에 남을 미군 200명, 사막에서 무얼 할까  

딸기21 2019. 2.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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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명은 남겨 두겠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에 ‘승리’했다면서 시리아에 들어가 있던 미군을 모두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두 철군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일자 한걸음 후퇴했습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 시리아에 미군 200명 정도를 잔류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라크·요르단 국경과 인접한 시리아 동부 알탄프 군사기지 주변의 미군들. 로이터


앞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를 했습니다. ‘200명 잔류’ 계획은 그 통화 직후에 발표됐습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평화유지를 위한 200명가량의 소규모 그룹이 당분간 시리아에 남을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당분간’이 얼마 동안일지, 어디에 남아 무슨 일을 하게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남게 될 미군들이 유엔 지휘를 받을 것인지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3국이 국경을 맞댄 알탄프

 

현재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시리아에 들어가 터키 국경과 인접한 지역에서 치안유지를 돕고 있지요. 미국 정부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미군은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하면서 시리아 내 ‘반 IS 진영’을 지원할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국방부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길 거부했으나,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군이 시리아 북동부와 알탄프 지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미국이 시리아에 군대를 보낸 것은 2015년 말입니다. 그 해 6월 이라크 북부 대도시 모술에서 극단주의 무장조직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이슬람 칼리프국가’를 선언했고, 미국이 정보전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이 터져나왔습니다.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쳐 광범위한 영역을 손에 넣자 다급해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상군을 들여보내는 대신 ‘아랍연합군’과 영국·프랑스 ‘동맹군’들을 동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군은 소규모로 시리아에 들어가 현지 반정부 진영 중 이슬람주의와 거리를 둔 세속주의 진영과 반IS 민병대를 지원하고 훈련시키는 역할만 했습니다.

 

미군이 남아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소규모일지언정 남아 있게 될 가능성이 높은 알탄프는 미국이 만든 시리아 내 군사기지 중 하나입니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면 광활한 사막지대일 뿐, 근처에 이렇다할 도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탄프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시리아의 홈스 주에 속한 알탄프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을 넘나드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는 사막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국경에는 3개의 통행로가 있고, 그 중 하나가 알탄프입니다. 시리아에선 알탄프라 부르지만 이라크 쪽에서는 ‘알왈리드 국경통행로’라고 부릅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국경을 넘어가면 이라크 안바르 주입니다. 

 


알탄프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이 만나는 곳일뿐 아니라, 남쪽으로 불과 20km 남짓한 곳에 요르단 국경도 접하고 있습니다. 사막 가운데 변경초소이지만 중동 3개국이 만나는 요충인 셈입니다. 이 국경 통과지점에서 24km 떨어진 곳에 미국은 군사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라크 국경을 등지고 시리아 쪽으로 지름 55km의 반원형 구역에 미군기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55km지역’이라 통칭한다고 합니다. 2016년 지어진 기지에서 미군은 IS 공격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시리아 내 반IS 군대를 훈련시킵니다. 


사막에서 벌어지는 다국적 각축전

 

다마스쿠스-바그다드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곳이니, 이 지점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2015년 IS와의 전쟁이 시작된 초반에는 IS가 알탄프를 장악했습니다. 미군이 지원하는 ‘신(新)시리아군’이라는 조직이 이듬해인 2016년 3월 이곳을 빼앗았습니다. 그해 영국군 특수부대도 미군에 가세했습니다. 

 

2017년 3월에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혁명사령부군’이라는 조직이 국경지대를 넘겨받았고, 한동안 닫혀 있던 국경통행로를 민간인들이 오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교전이 이어졌으며 미군은 IS 세력과 시리아 친정부군을 잇달아 공습했습니다. IS와 맞서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과도 대척점에 서 있는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 무기로 무장하고 영토 탈환작전에 나서면서, 알탄프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시리아 내전의 축소판이 됐습니다.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미군뿐 아니라 시리아 안팎의 여러 조직들이 이곳을 넘봅니다. 이른바 반군조직들만 해도 이 일대에서 ‘자이시 우수드 알 샤르키야’(동쪽의 사자 부대), ‘순교자 아흐마드 알아브도 부대’ 등 5개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이란대로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군과 군사조직들을 훈련시키면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있지요. 시리아 정부에 대한 입장은 달라도, IS를 퇴치하려는 목적은 미국과 같습니다. 시리아 친정부 군사조직들 중 이란의 지원을 받는 집단들도 알탄프 국경초소 인근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자칫 양측이 충돌이라도 하면 시리아 사막에서 미군과 이란의 소규모 ‘대리 충돌’이 벌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양쪽 모두 자제를 해왔습니다. 미군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집단들에게 “IS만을 공격하라”는 지침을 내보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당초 트럼프 정부의 계획대로 모두 철수하고 알탄프 기지도 문을 닫으면, 이 중요한 국경통행로가 친이란계 반군들에 장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내에서 안보 전문가들과 국방부 관리들이 트럼프의 섣부른 철군 계획에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200명의 미군들, ‘평화유지’ 가능할까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 최근 몇 달 새, 트럼프 정부가 시리아 사태와 거리를 둔 사이 친이란계 반군과 친미 반군들 사이에 작은 충돌들이 몇 차례 벌어졌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는 알탄프 미군기지가 ‘불법’이라면서 수차례 철수를 요구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러시아가 미군에 알탄프 철수를 요구하며 “기지를 없애지 않으면 폭격하겠다”고 을러대기도 했습니다. 미군은 ‘증파’로 대응했고요. 

 

중동 지역에서의 미군 군사활동을 총괄하는 중부사령부는 지난해 9월 알탄프 기지 일대에서 대규모 작전을 하면서 “IS 퇴치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국경지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위로 보고 반발했습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지난 14일 “미국이 불법적으로 시리아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 사람들과 주변국들의 걱정거리”라며 철군을 촉구했습니다. 


알탄프 기지에서 20km 떨어진 루크반 난민캠프의 시리아 난민들. AP


 

알탄프 기지에서 20km 떨어진 곳에는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시리아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루크반 난민촌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런 난민촌들에 구호기구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수시로 ‘봉쇄’를 하면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습니다.

 

미군은 시리아 내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10여곳에 군사기지를 만들었습니다. 데이르에조르 지역의 알오마르 유전,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하는 아인알아랍(코바니), IS의 근거지가 있던 라카 주의 알타우라흐 등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철군을 한다 하면서도, 이 복잡한 요충지대를 그냥 두고 떠날 수 없다는 판단 속에 결국 트럼프 정부는 부대를 남겨두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달 15일이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출발한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지 8년이 됩니다. 미군 철수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사막의 군사기지에 남을 200명 규모의 미군이 인도적 재앙을 막는 역할을 할수 있을지, 러시아와 이란이 가세해 ‘국제전’으로 비화한 내전의 향방은 어디로 흘러갈지는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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