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 공유 회사인 에어비앤비와 이스라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에어비앤비가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촌’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집 가진 사람들이 ‘호스트’가 돼서 자기 집을 숙소로 등록해 숙박객을 받는 플랫폼 기업이다. ‘정착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 유대인들이 살게 만든 마을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동쪽,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에 이런 정착촌들이 산재해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의 알무가이르 마을을 헐고 새 유대인 정착촌을 짓겠다고 하자 지난 25일 마을 앞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새총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알무가이르 _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그 마을들을 잇는 도로를 만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지나다니거나 우물을 파는 것까지 통제하며 사실상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만든 정착촌에 현재 이스라엘 국적자 60만명이 산다. 이스라엘은 올들어서도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부근에 새 정착촌을 짓겠다고 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를 불렀다.
유럽,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이런 정착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유명인사들은 ‘이스라엘 BDS(보이코트, 투자 중단, 제재) 캠페인을 해왔고, 정착촌에서 생산한 이스라엘의 수출품을 막는 운동도 벌어졌다. 유럽연합은 2016년 정착촌에서 생산한 이스라엘산 물품에 ‘메이드 인 정착촌’ 딱지를 붙여 구분하겠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와 거래 안 해”
에어비앤비는 정착촌 주민들이 숙소로 등록해서 자기네 플랫폼을 통해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에어비앤비가 ‘반이스라엘적’이라거나 대단히 윤리적인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정착촌에 대한 세계의 민심을 알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역사적 분쟁거리가 돼온 점령지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많다”면서 “미국 법은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들이 이 영토에서 사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퇴거당해야 했던 곳에서 기업들이 수익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서안의 정착촌에서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숙박시설은 약 200곳이다. 에어비앤비는 “191개국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서 우리의 책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팔 분쟁의 핵심인 서안의 정착촌에 있는 숙박시설 명단을 삭제하기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반발했다. 이스라엘의 행정수도 격인 텔아비브에선 에어비앤비 숙박업소 등록을 철회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시의회가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8000여개 숙박시설에 매기는 세금을 높이라고 시 당국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여기까지는 이스라엘과 기업들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가 이스라엘 편을 들며 끼어들었다.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지난 15일 주 정부와 계약업체 직원들이 에어비앤비 시설을 이용하는 걸 금지하겠다고 했다. 드산티스는 에어비앤비의 결정이 “이스라엘을 상업적으로 차별하는 것”이어서 주 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드산티스는 사우스팜비치의 유대인연합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공개서한’을 발표함과 동시에, 주 정부 직원들이 공무 출장 때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납세자들의 돈이 반이스라엘 정책을 가진 기관으로 흘러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에어비앤비는 회사의 결정이 BDS 운동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회사 대변인은 “연간 우리의 중개를 통해 플로리다를 방문하는 사람이 450만명”이라며 “호스트들과 방문객들을 이어주는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현지 언론 탬파베이타임스에 따르면 플로리다에서 에어비앤비에 숙박시설을 등록한 사람은 4만5000명이며 지난해 오간 돈이 8억1000만달러(약 9048억원)에 이르렀다.
‘떠오르는 우익 정치인’ 드산티스
에어비앤비 이용자가 특히 많은 마이애미, 탬파베이, 힐스버러의 호스트들은 주 정부와 기업의 갈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만 지난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9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고, 피넬라스 카운티는 이 플랫폼을 통해 44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1978년생인 드산티스는 공화당 소속으로 지난 8일 취임했다. 예일대와 하버드 법대를 나왔고 미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플로리다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공화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유독 강경한 보수파다. 낙태에 반대하고,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프로그램인 ‘오바마케어’에 반대했다. 공교육 강화에도 반대한다. 총기 규제에도 물론 반대해서, 미국총기협회(NRA)가 우호적인 의원으로 분류하며 ‘A+’ 등급을 매기기도 했다. 인권 문제에선 낙제점을 받았다. 2017년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캠페인은 성소수자 인권정책에서 드산티스에게 0점을 줬다.
지난 11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론더데일에서 론 드산티스 주지사가 지난해 2월 일어난 파클랜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이달 8일 취임한 드산티스는 총기규제, 낙태, 성소수자 인권, 오바마케어, 이란 핵 합의 등에 모두 반대해온 보수강경파 정치인이다. 포트론더데일 _ AP연합뉴스
그는 이민자들에게 너그러웠던 오바마의 정책에도 반대했다. 탬파베이타임스는 드산티스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반이민 정책에 ‘드물게 강력히 찬성하는’ 정치인이지만, 그에게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스로가 이민자의 후손이고, 유대인 이민자 후손들의 지지를 얻어 주지사가 된 사람이 이민에 반대하고 나선 꼴이다.
오바마 정부가 쿠바 관타나모섬 미군기지 ‘테러용의자 수용소’를 폐쇄하려 했던 것에도 반대했고 이란과의 화해에도 반대했다. 2013년에는 ‘팔레스타인책임법’이라는 걸 발의해, 이스라엘을 인정할 때까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자고 했다. 3년 뒤에는 ‘이스라엘 라벨링 차별방지법’이라는 걸 내놨다. 유럽측 조치에 맞서, 서안 정착촌에서 만든 물건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수적이라 한들, 정치인이니 유권자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지사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나선 것은 자기 주장을 지지할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이애미헤럴드에 따르면 플로리다는 미국의 여러 주들 중에서도 유독 이스라엘과 많이 거래한다. 플로리다와 이스라엘의 교역액은 2017년 기준으로 약 2억9000만달러였다. 기계부품이나 소비재도 수출하지만 플로리다의 군수공장들도 이스라엘 덕을 본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원조를 해주기 위해 ‘해외군사금융(FMF)’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내 군수회사들은 이 돈을 지원받아 무기를 만들어 이스라엘에 내준다.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에어리프트테크놀로지, 소니케어, 파워로직스 같은 기업들이 이 제도의 수혜자다. 거대 군수회사 록히드마틴도 플로리다의 레이크랜드에 공장을 두고 있다.
플로리다의 ‘쿠바 유대인’
경제적 이유 말고도 플로리다에는 친이스라엘 주지사를 뒷받침해줄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유대인 주민들이다. 플로리다의 유대인은 약 62만명으로 전체 주민의 3.2%를 차지한다. 비중만 보면 미국 50개 주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유대인 주민 숫자로 보면 뉴욕 176만명, 캘리포니아 123만명에 이어 세번째다. 미국 내 유대인 716만명의 10분의1 가까이가 플로리다에 사는 것이다.
이들은 뉴욕이나 뉴저지 같은 ‘윗쪽’ 동부 유대인들하고는 다르다. 동북부 유대인들은 현대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벌이는 도발과 비윤리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플로리다의 유대인 공동체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미 유대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미국-이스라엘 협력기구(AICE) 웹사이트에 따르면 플로리다에 처음 유대인이 정착한 것은 1763년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 반유대 정서가 고조되던 19세기 후반부터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해, 1940년에는 2만5000명에 이르렀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증해 1960년에는 17만5000명이 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에 있는 유대박물관. _ 위키피디아
이후의 유대인 이주자들은 유럽이 아닌 남미를 거쳐온 이들이 많았다. 마이애미애만 유대인이 12만명이 넘는다. 오래 전 이민온 이들의 후손이 아니라, 외국서 태어나 플로리다로 온 ‘1세대 이민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에 정착했다가 플로리다에 재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쿠바에서 온 보수 성향이 강한 유대인들이다. 쿠바와 유대인을 연결짓기는 쉽지 않지만,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찾아간 1492년 이미 유대인들이 항해에 동참했다고 한다. 16~17세기에 유대인 이주자들이 쿠바에 살림을 풀었고, 18세기에는 암스테르담의 무역상들과 교역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당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였던 곳에 유대인들이 정착했다. 이들은 스페인에 맞서 식민지 해방투쟁을 벌인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를 지지하기도 했다. 1910~20년 사이에는 터키와 동유럽의 유대인들이 쿠바로 많이 건너갔다. 모두가 폴란드 출신인 것은 아니었지만 통칭 ‘폴라코스(폴란드 사람)’라 불렸다.
공화당으로 옮겨가는 유대인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당시 1만5000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혁명 이후 그중 94%가 쿠바를 떠났다. 혁명정부가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 주민 대다수가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었던데다 쿠바 정부가 친팔레스타인 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엑소더스가 벌어진 것이다.
떠난 주민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로 향했고, 일부는 플로리다 등지로 갔다. 쿠바 정부는 1973년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었다. 현재 쿠바의 유대인은 1500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 중 85%가 아바나에 산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걸로 분류돼 왔으나 점점 공화당 지지자가 늘고 있고, 2012년 대선 때와 2016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와 도널드 트럼프 지지가 작게나마 우세했다.
플로리다의 남미 출신 유대인들은 드산티스의 우군이다. 지난해 10월 선거 때 미국 최대 유대계 신문 주이시프레스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드산티스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드산티스는 선거 유세 때 유대교회당인 시나고그를 찾아 “당선된다면 미국에서 가장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주지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지구는 둥글고, 세계는 이어져 있고, 시간은 흔적을 남기며 흐른다. 에어비앤비와 이스라엘 문제에 플로리다 주지사가 나선 배경에는 세계를 돌고 돌았던 유대인들의 역사는 물론이고, 쿠바 혁명처럼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고리까지 엮여 있다. 언젠가 평양이나 개성에 에어비앤비가 문을 열고, 북한의 공유경제와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이슈가 되는 날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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