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미국과 중국의 ‘콩 전쟁’  

딸기21 2019. 1. 14. 15:16

지난해 12월 13일, 중국 상무부가 미국산 대두를 수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해 7월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격화된 뒤 처음으로 중국이 미국산 콩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를 2019년 1월 1일부터 40%에서 15%로 한시적 인하한다는 것과 함께 발표된 중국 측의 화해제스처였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孟晩舟)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 소동 와중에 나온 조치이기도 했다.


2018년 12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에게 준 ‘선물’

 

미국 농무부의 스티브 센스키 부장관은 중국이 대두 113만톤을 구매하기로 했다면서 “큰 걸음(great step)”이라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예년엔 3000만~3500만톤을 사갔었다”면서 추가구매를 압박했다. 미국 대두수출협회도 중국 곡물회사 시노그레인과 그 산하 식품회사 코프코가 추가 구매를 할 계획이라면서 선적물량이 150만~200만톤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 발표 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양국 무역분쟁의 상징이던 콩 분쟁이 완화됐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기반의 핵심에 있는 농민들이 안도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2018년에 거둬들인 콩들이 갈 곳을 못 찾아 미국 중서부의 사일로마다 대두가 넘쳐나던 때에 중국이 수입을 재개해준 덕이다. 중국 상하이 투자회사 JC인텔리전스의 분석가 리쳉은 블룸버그에 “중국은 2019년 1분기 수요를 충당하게 됐고, 미국 대두농가들이 겪던 판매압박도 누그러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트위터에 “농부들, 사랑해요”라는 글을 올렸다. 중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이날 시카고 선물시장도 요동을 쳤다. 그러나 여전히 대두 선물 가격은 지난해 3월 최고점일 때에 비해 14%나 낮은 상태였다. 

 

 

중국은 세계에서 대두를 가장 많이 소비·수입하는 나라다. 중국의 대두 소비량은 2012년부터 2017년 사이에 7485만톤에서 1억1218만톤으로 뛰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물량은 1301만톤에 1455만톤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5년에는 작황이 좋지 않아 생산량이 1178만톤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나머지 수요는 수입으로 충당한다. 2017년 세계 대두 교역량의 60%가 중국으로 향했다. 콩요리를 해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쇠고기를 먹는 중국인들이 늘어난 탓이다. 대두는 거의 전량 가축 사료로 쓰인다. 중국은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사료용 콩을 수입해왔으나 미국과 분쟁이 벌어지자 미국산 대두를 끊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압력에 결국 수입을 재개했다.


미국산 대두 94%는 ‘유전자변형’

 

미국은 대두를 팔아야 하고, 중국은 사들여야 한다. 언뜻 보기엔 수요공급이 맞아떨어져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사례다. 하지만 속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대두가 무역분쟁의 주요 이슈가 된 것은, 양국 간 ‘미래의 농업기술전쟁’을 열어젖힐 핵심 작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8일이었다. 이날 중국 농무부는 유전자변형(GM) 작물의 수입을 추가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이날 새로 승인한 5개 품종은 독일 바이엘사가 개발했고 현재 바스프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RF3 카놀라(유채씨 기름), 글리포세이트 성분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몬산토의 MON88302 카놀라, 다우듀폰의 파이오니어 DP4114 옥수수, 그리고 다우듀폰 자회사 애그리사이언스의 DAS-444-6-6 대두와 신젠타의 SYHT0H2 대두였다. 

 

지난 9월 21일 미국 인디애나주의 브라운스버그의 농장에서 한 농민이 콤바인으로 대두를 수확하고 있다. 미국산 대두의 60%를 사들이던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자 대두값이 폭락했고 농민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한시적으로 ‘휴전’하면서 대두 수입을 일부 재개했고, 유전자변형(GM) 대두 품종의 수입도 추가로 승인했다. 브라운스버그 _ AP연합뉴스


강낭콩, 완두콩, 병아리콩 같은 먹거리 이름만 익숙한 이들에게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이런 곡물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변형시킨 품종들은 나날이 늘고 있고, 농업은 이제 GM 작물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은 세계 최대 GM 작물 생산국이고, 중국은 최대 수입국이다. 중국은 외국산 GM 수입 허용 품종을 차츰차츰 늘려가는 방식으로 시장을 열어왔다. 그러나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2017년 7월부터는 신규 허용을 하지 않았다. 미국산 대두에는 25%의 추가관세까지 매겼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분쟁이 격화되는 걸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 1일 90일간의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나 중국은 5종의 수입을 새로 승인했다. 이미 허가한 GM 작물 26종의 승인기간도 3년 더 연장해줬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오래 기다려온 승인을 중국이 마침내 내줬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두업계와 카놀라를 생산하는 캐나다 농업단체들은 환호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 6월 관련기구 심의에서 이 품종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타이밍을 엿보다가 양국 정상이 만난 뒤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몬산토·바이엘이 개발한 J101과 J163 같은 대두 품종들이 추가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자동차나 통신장비나 에너지공급원도 아닌 콩을 놓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GM 비중이 매우 높다는 대두의 특성 때문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대두 물량은 대부분이 유전자를 변형시킨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몬산토에서 만든 ‘라운드업레디’다. 이 품종은 몬산토가 만든 제초제에 내성을 지녔다. 제초제를 뿌리면 곡물의 필수아미노산이 파괴돼 식량 가치가 줄어든다. 이를 막기 위해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지니도록 곡물 유전자를 조작해, 씨앗과 제초제를 짝지어 파는 것이 농업생명공학 회사들의 전략이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심어진 미국의 농장. 사진 manufacturing.net


GM 대두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은 1994년이었다. 1995년에는 캐나다, 1996년에는 일본과 아르헨티나, 1997년에는 우루과이, 1998년에는 멕시코와 브라질, 200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차례로 GM 대두 종자를 팔 수 있게 해줬다.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제초제 내성 GM 대두는 1997년 미국 전체 생산량의 17%에서 2001년 68%로, 2014년 94%로 늘어났다. 면화와 옥수수가 그 뒤를 잇는다. 제초제 내성 면화와 옥수수, 해충에 강하게 유전자를 바꾼 면화와 옥수수 품종이 전체 생산량의 75~90%를 차지한다.


중국의 무기가 된 신젠타

 

중국 국유기업인 켐차이나(中國化工集團)는 2017년 스위스의 농업생명공학기업 신젠타를 인수했다. 켐차이나는 인수자금 430억달러, 우리 돈으로 52조원이 넘는 금액을 현금으로 주겠다는 조건을 앞세워 신젠타를 집어삼켰다. 중국 기업의 외국 기업 인수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몬산토도 신젠타에 눈독을 들였지만 차이나머니에 밀렸다. 

 

시진핑 주석은 중산층의 식량 소비가 늘어나는 반면 농지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성 높이기’를 강조해왔다. 그 해법이 GM 작물 생산을 늘리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특허권이었다. 그런데 신젠타를 인수함으로써 중국은 특허권을 대거 확보했고, 미국과 경쟁할 발판을 만들었다. 미국의 몬산토와 듀폰, 유럽의 신젠타와 바이엘이 경쟁하던 농업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최근 몇년 새 인수합병이 줄을 이었다. 듀폰이 다우케미컬과 합치고, 바이엘과 몬산토가 하나가 되는 식으로 기업들이 계속 몸집을 불렸다.

 

주로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이 시장은 ‘중국 기업 신젠타’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지각변동을 맞았다. 2000년 유럽 제약업체 노바티스의 농약 부문과 아스트라제네카가 합병해 탄생한 신젠타는 미국 콩 종자의 10%, 옥수수 종자의 6%를 공급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미국 내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료 미국 농무부


켐차이나로 넘어간 뒤에도 중국 종자시장에서 신젠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신젠타의 중국 종자시장 점유율은 1%에 그쳤다. 신젠타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한 비율도 2.8%에 불과했다. 다우듀폰이 2008년 중국 기업과 합작해 세운 산베이시드보다도 적다. 하지만 앞으론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켐차이나는 중국 내에 2015년말 기준으로 4600개의 종자업체들을 보유하고 있다. 신젠타의 GM 대두와 옥수수 씨앗들을 중국 전역에 퍼뜨릴 판매망이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중국이 이번에 새로 수입을 허용한 5종 중 2종이 대두인데, 그 중 하나는 신젠타가 특허권을 갖고 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장을 열어주면서 ‘중국 기업’의 곡물을 수입하기로 한 셈이다. 더불어 중국은 자체 개발한 GM 작물 수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지난해 9월 베이징의 벤처기업 다베이농그룹이 개발한 대두 종자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엔 미국산 원자재와 미국이라는 거대한 수출시장이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며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기엔 두 나라가 서로 너무 얽혀 있다. 하지만 최소한 ‘콩 전쟁’은 현실이며 앞으로도 계속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까. 세계의 땅과 사람과 밥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