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대립 혹은 공생’ 엘리자베스 워런과 페이스북  

딸기21 2019. 3. 18. 16:08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70·매사추세츠)이 지난해 말 2020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해 대권 레이스의 시동을 걸었다. 워런은 민주당 내 대표적인 진보적 정치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살찐 고양이’로 불리는 월스트리트 자본 규제를 외쳐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워런은 최근에는 페이스북 등 ‘테크 자이언트’들의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멤피스의 더글러스고교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멤피스 _ AP연합뉴스


 

페이스북은 워런의 광고를 일시 삭제하며 ‘소셜미디어 권력’으로 맞섰다. 그러나 뒤이은 보도는 워런 대 테크 자이언트들의 싸움이라는, 드러난 구도와는 사뭇 다른 사실들을 보여줬다. 워런도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에 소속된 이들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치의 한 축이 된 소셜미디어, 선거자금과 슬로건의 괴리, 현실 정치에 뛰어든 진보 정치인의 이상과 한계 등 여러 이슈가 워런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워런에게 기부금 낸 샌드버그

 

지난 12일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워런이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 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후원받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워런에게 낸 샌드버그의 기부금은 2700달러. 이를 포함해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워런이 받은 돈은 총 9만달러다. 두 차례 상원의원 선거에서 워런에게 200달러 이상 기부한 이들의 명단을 분석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워런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수백만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으고 있다면서, 그중 상당액이 실리콘밸리에서 오고 있다고 썼다.

 

과거 민주·공화 양당 대선후보들이 기업 기부금은 물론 수상쩍은 ‘우익자본’들까지 끌어다 썼던 것을 생각하면 실리콘밸리의 개인 기부자들이 낸 9만달러가 윤리적으로 유독 엄청난 문제일 것 같지는 않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구글 모회사 알파벳으로부터 36만달러,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7만달러를 받았다. 애플과 아마존 직원들도 샌더스에게 돈을 보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이들이 누구에게 얼마를 기부할지는 각자의 자유다.

 

문제는 워런이 지금 ‘테크 자이언트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런은 이달 초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작은 기업들을 흡수해 공룡처럼 몸집을 불리는 것을 거세게 비난하며 이런 인수·합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 IT기업들이 자기네 플랫폼을 이용해 “작은 기업, 새로운 기업들을 쫓아내고 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가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에 거액을 쓰고 있고, 아마존 같은 회사들은 노동자 처우도 형편없다고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 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행사에 참석해 정보기술 분야에 관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오스틴 _ 로이터연합뉴스


 

워런은 이 이슈를 캠페인 초반 핵심 안건으로 부각시켰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스타트업 기업들의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 참석해 페이스북과 아마존, 구글의 인수·합병을 맹비난했다. “플랫폼을 운영하거나 가게를 경영하거나, 둘 중의 하나만 하라. 둘 다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했다.


IT 공룡들 쪼개는 ‘워런 플랜’

 

워런은 “빅 테크”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걸 깨야 한다면서, 반독점 조치들을 취해 인수·합병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250억달러(약 28조원) 이상을 버는 플랫폼 기업들이 또 다른 플랫폼을 자기네 사업과 연결하려 할 때에는 지분 보유를 금지하고, 사용자 정보와 데이터 공유도 막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 ‘워런 플랜’이 통과되면 아마존의 마켓플레이스, 구글의 애드익스체인지, 구글 서치는 다른 플랫폼 사업체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게 된다.

 

워런은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들을 ‘망 사업자’로 규정하고, 자사 제품을 자사 판매망에 올리는 행위는 할 수 없게 하겠다고 했다. 거대기업들이 이미 인수한 회사들에 대해서도 시장 경쟁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인수·합병을 무효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합병의 예로는 아마존이 소매업체 홀푸드와 자포스를 사들인 것, 페이스북이 왓츠앱과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것, 구글이 내비게이션 앱 웨이즈와 주거자동화 전문회사 네스트와 인터넷 광고회사 더블클릭 지분을 매입한 것을 들었다. 워런은 “경쟁을 촉진하고 기술부문의 혁신을 자극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미국이 치열한 기술 분야 경쟁에서 계속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런이 언급한 거대기업들의 주가는 일시 떨어졌다. 언론 반응은 엇갈렸다. 블룸버그통신에는 “워런이 왜 상원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는 논평이 실렸다. 그러나 기업 경쟁력을 무시한 ‘IT 해체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광고 삭제’로 대응한 페이스북

 

워런의 주장에 대한 페이스북의 대응은 즉각적이었지만 경솔했다. 지난 10일 페이스북은 워런의 대선 광고를 삭제해버렸다. 광고에는 페이스북의 왓츠앱 합병을 비판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를 노출되지 않게 함으로써 페이스북은 ‘우리 서비스에서 우리 회사를 욕하는 광고를 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워런에게 보내려 한 셈이다. 워런의 광고 3개를 보이지 않게 처리하면서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의 광고정책에 역행하기 때문에 내려졌다”라는 안내 메시지를 붙였다.

 

‘광고 검열’이라는 비판이 일자 페이스북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 워런 광고를 노출시켰다. 회사 대변인은 “우리 회사 로고를 (마음대로) 씀으로써 우리 정책을 위반했기 때문에 광고를 없앴지만, 논란을 재점화하지 않기 위해 복구했다”고만 밝혔다. 워런은 이 해프닝이야말로 “페이스북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내 광고를 되살려줘서 고맙지만, 나는 한 명의 검열관이 소셜미디어를 지배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렇게 워런과 기업들의 싸움이 한창 벌어지는 와중에 ‘샌드버그도 워런에게 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워런 측은 ‘투명함’을 강조하며 불끄기에 나섰다. 워런의 대변인 크리스틴 오스먼은 “워런은 로비스트의 돈이나 팩의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고액 모금꾼들과도 거래하지 않는다. 억만장자들과 슈퍼팩의 후원도 받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팩(PAC)’이라 불리는 정치활동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모금기구들이다. 시민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후보와 선거캠프에 기부할 수 있는 돈은 소액으로 제한돼 있지만, ‘독립적인 선거운동기구’에는 얼마든지 낼 수 있게 돼 있다. 선거자금법의 이런 빈틈을 악용해 명목상 독립된 팩을 꾸려 돈을 모아 특정 후보 지지광고를 내보내는 식이다. 특히 거액 기부자들이 막대한 돈을 내는 기구를 ‘슈퍼팩’이라 부른다.


‘위선’이 문제일까, ‘검열’이 문제일까

 

워런은 C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빅 테크 기업의 경영진이나 직원들의 기부금을 거절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억만장자들을 위해 워싱턴(의회)에 있는 게 아니다.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모두가 경쟁할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기부금과 상관없이 워런 플랜을 밀고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아닌 개인 이름으로 내는 기부금은 받겠다는 것이다. 워런에게 돈을 낸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는 “(워런이)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점잖은 논평만 내놨다.

 

공개적으로 기업을 비판하면서 그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의 기부금은 받아온 워런이 문제인 걸까, 워런의 말처럼 광고까지 검열하며 ‘지나친 권력’을 행사하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인 걸까. 일각에선 워런의 ‘위선’을 지적하며 과연 워런 플랜이 제대로 추진될지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하지만 광고를 삭제한 페이스북 행동이 더 큰 문제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월간지 배니티페어는 “페이스북은 워런의 광고를 없앨 때와 복구할 때 이용자들에게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면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독점적인 권력은 워런의 비판에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워런과 여러 정책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공화당의 극우보수파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이 문제에선 워런 편을 들었다. 페이스북의 ‘지나친 권력’을 비판한 워런의 12일 트위터 글을 리트윗하면서 크루즈는 “워런의 글을 인용하는 건 처음인데, 이번엔 워런이 옳았다”고 썼다. 폴리티코는 이런 논란 속에서도 “워런은 테크기업들의 돈을 받고, 페이스북에 광고를 올리고, 아마존에서 책을 팔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의 막강한 영향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현실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