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핀란드 강타한 아동 성학대 동영상

딸기21 2019. 4. 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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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파일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부 아동을 상대로 한 성학대와 폭력이 담긴 것들이었다. 피해자는 모두 6~15세의 남자아이들이었다. 
 

파일들은 온라인에서 조직적, 상업적으로 유통됐다. 파일을 만들어 퍼뜨린 사람들을 잡아 조사해보니 거대한 ‘포르노 네트워크’의 일부였음이 드러났다. 핀란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이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이웃이 아이들을 노렸다


지난달 27일, 핀란드 경찰청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성학대와 폭력행위를 저지른 자국민 5명을 검거하고 이들로부터 성학대 동영상 제작 장비들과 파일을 무더기로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 일레(Yle)에 따르면 경찰은 주범 1명의 집에서만 전자장비 138개와 400시간 분량의 동영상, 96테라바이트 분량의 관련 파일을 압수했다. 
 

피해자들은 6~15세의 남자아이 6명으로, 모두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가해자들 역시 같은 지역에 사는 남성들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자들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동안 이웃 아이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왔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신분이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범행이 일어난 지역을 밝히지 않은 채 “아주 작은 도시”라고만 설명했다. 

 

핀란드 일레(Yle) 방송 웹사이트 캡처


 

가해자들과 피해 아이들은 아는 사이였고, 피해 아이들끼리도 아는 사이였다. 부모들은 이웃을 믿었고, 아이들이 ‘옆집 남자’와 간혹 시간을 보내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선량한 이웃으로 보였던 이들은 아이들에게 마약을 투약한 뒤 가학행위를 했다. 어떤 아이는 10시간씩 약물에 중독된 상태로 폭력을 당해야 했다. 핀란드 경찰청의 산나 스프링가레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아동 대상 성범죄이자 폭력범죄로 보고 수사 중”이라며 “주범 1명은 수사를 위한 구금 기간이 최대 1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에게는 아동 성학대와 특수강간, 불법촬영 등 최대 22가지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들은 아이들에게 필로폰 따위를 투약한 뒤 성폭행을 하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불법촬영물을 유통시키는 네트워크에 올렸다. 범행을 ‘실시간 중계’하기도 했다. 영상들은 핀란드를 넘어 유럽 여러 나라로 흘러갔다. 유럽 곳곳에 퍼져 있는 이 네트워크에 올라온 영상들을 조사해보니 아동 성학대나 성폭행을 촬영한 것뿐 아니라, 피해 아동이 살해됐거나 사지가 절단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있었다. 나치를 찬양하고 악마 숭배를 묘사한 영상도 있었다. 
 

불법촬영물 네트워크에 대한 수사는 핀란드를 넘어 17개국으로 확대됐다. 핀란드 경찰이 당초 수사에 착수했던 것도 동영상을 포착한 외국 기관의 제보에 따른 것이었다. 10여년에 걸쳐 범죄가 일어났는데 피해 아동들은 입을 다물었고 부모들은 눈치채지 못했으며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폭행=난민 범죄’라더니


이 일이 알려지기 전까지 헬싱키를 달군 성범죄는 이주민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난민으로 들어와 오울루라는 지역에 살던 남성들이 같은 동네의 10대 여자아이들을 성폭행한 사례들이 올초 잇달아 보도된 것이다. 19명의 남성들이 범죄자로 지목됐고, 2명은 최근 2년6월~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피해자도 모두 이주민 소녀들로 추정된다. 
 

인구 550만명의 핀란드에는 이라크·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시리아에서 온 이주자 약 3만명이 살고 있다. 다른 유럽국들에 비하면 난민이나 이주자가 적은 편이지만, 2015년 시리아인들이 대거 유럽으로 향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덩달아 난민 반대 기류에 휩쓸렸다. 오는 14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오울루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반난민·반무슬림 정서는 더욱 커졌다. 
 

유하 시필라 총리와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이 “핍박받는 이들이 이곳에서까지 공격과 불안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며 난민 반대 여론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핀란드인들의 당’은 어느새 지지율이 10%를 넘어섰다. 지난 1월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받아선 안 된다는 청원에는 개설된 지 이틀 만에 2만5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주민들의 성폭력에 격앙돼 ‘못된 무슬림들’의 행태를 손가락질하던 터에 아동 성학대 불법촬영물 사건이 터졌다. 경찰에 따르면 동영상 네트워크는 “유럽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로 이어져 있었다. 이주민에 반대하는 여론이 고조됐던 지난 1월 19개 인권단체들과 성소수자 단체들은 “오울루 사건은 성범죄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의 일부임을 보여준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지원을 늘리는 법을 요구해왔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묵살당해왔다”면서 오울루 사건이 이주민을 몰아내는 데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핀란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연합(EU) 기본권위원회(FRA)에 따르면 EU 내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이 많이 벌어지는 나라 중 하나다. 당국이 여전히 성폭력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2017년 열 살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23세 남성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폭력에 의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성폭행만을 강간으로 인정하는데 당시 어린 피해자가 ‘삽입에 반대하지 않았고’ ‘폭력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핀란드 법무부는 ‘국제기준에 맞게’ 법률을 고쳐, 동의 없는 성행위를 폭넓게 강간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최근 검토하고 있다. 

 

‘성평등’ 북유럽의 이면


주변 북유럽 국가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세계 최초로 아이들의 체벌을 금지한 스웨덴 역시 지난해 핀란드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의사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어린이 환자 52명을 성폭행하거나 성적으로 가학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두 살 유아까지 있었다. 지난해 9월 이 의사가 법정에 서게 되자 현지 언론들은 그가 ‘스페인계’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스웨덴은 성평등지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투’ 바람이 어느 곳보다 거세게 일어났던 곳이다. 
 

지난달 국제앰네스티는 핀란드의 성범죄 대응을 비판한 자료를 냈다. 이 단체가 인용한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에서 2017년 5만명 정도의 여성들이 성적 폭력을 겪었고, 1245명은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수사가 이뤄진 것은 그중 71%였고, 기소돼 법정까지 간 것은 209건에 불과했다. 유죄판결이 나온 것은 기소된 사건의 17%에 그쳤다. 아동 성학대 불법 동영상 사건 뒤 핀란드 언론들은 “이 나라에서 이런 범죄가 드러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성범죄와 법적 대응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덴마크에서는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가 코펜하겐의 대규모 시위를 불렀다. 지난달 4일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강간 문화’와 성폭행범의 면책특권이 유행병처럼 만연해 있다”면서 “정부는 덴마크가 평등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핀란드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 역시 성범죄에 관대했다. 2017년 성폭행 5100건 중 94건만이 기소됐다. 인권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덴마크 정부는 성관계 때 여성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 EU 기본권위원회가 낸 보고서에서 스웨덴과 덴마크는 성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들에 속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올초 71세 남성이 온라인으로 필리핀 여성들에게 성학대를 가해 징역 1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돈을 주고 온라인 동영상을 구매하면서, 3~5세의 어린아이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적 도구로 삼는 영상을 ‘주문’했다. 검찰이 밝힌 피해자는 48명이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NRK방송 등은 전했다. 2017년 덴마크에서도 70대 남성의 필리핀 아동 성학대가 드러난 적이 있다. 이주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고 유럽인들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오히려 부유한 유럽인들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지구상에 여성과 아이들이 안전한 곳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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