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아마존이 기름 부은 글로벌 ‘당일배송’ 전쟁...택배의 미래는

딸기21 2019. 4. 3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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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 당일배송, 자정 전 주문하면 새벽 배송. 유통과 소비의 흐름이 빨라지고 삶의 속도도 빨라진다. 물류에 휩싸인 사람들의 노동은 힘들어진다. 전 세계가 ‘당일배송’의 영향권 아래에 드는 날도 곧 올까. 
 

아마존이 글로벌 ‘당일배송’에 시동을 걸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미국 아마존은 지난 26일(현지시간) ‘24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늘리기 위해 올 2분기에만 8억달러(약 9300억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동안 ‘프라임 고객’들에게 주문 뒤 48시간 내 무료 배송을 해왔는데, 배송시간을 절반인 24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당장은 프라임 회원에 한해 서비스하겠다고 했지만 프라임 회원 숫자만 이미 1억명이다. 아마존은 지난달 ‘35달러 이상 구매고객’으로 프라임 회원 가입의 문턱을 낮췄다. 

 

“더 빠르게, 우리의 목표”
 

아마존 최고재무책임자(CFO) 브라이언 올사브스키는 “(2분기에) 배송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자는 주로 북미 지역에서 이뤄지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올해 1분기 순익이 35억6000만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로 늘어났다고 발표하면서 24시간 무료배송 계획을 함께 공개했다. 그날 아마존 주가는 올라갔고, 월마트나 타깃 등 미국 시장에서 경쟁을 벌여온 다른 유통업체들 주가는 떨어졌다. 아마존은 이미 세계 50여개 도시에서 24시간 내 배송, 혹은 당일배송을 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선 프라임나우라는 이름으로 ‘2시간 내 배송’ 서비스까지 한다.

 

FILE PHOTO: Amazon boxes are seen stacked for delivery in the Manhattan borough of New York City, January 29, 2016. REUTERS/Mike Segar


 

올초만 해도 아마존의 실적이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회사 측에서 영업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는 추산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외국기업 투자 규제를 강화하면서 아마존이 인도 시장에서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1분기 순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억달러에서 2배로 뛰었다. 올사브스키 CFO는 “우리가 인건비 부담 등을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고 했다. 
 

아마존에 따르면 배송에 들어간 비용은 올 1분기에 전체 비용의 21%였다. 2017년과 2018년만 해도 30%가 넘었는데 배송비용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아마존은 줄어든 부담만큼 배송서비스에 투자를 할 계획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쟁 업체들에게도 (배송시간을 줄이라는) 압박이 심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가 간 주문에서도 배송시간은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1998년 미국의 코즈모닷컴이라는 업체가 몇몇 도시 지역에서 ‘1시간 내 배송’이라는 택배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소매업체들의 경쟁은 상품경쟁이 아닌 ‘배송 전쟁’이 됐다. 아마존을 필두로 미국 UPS의 메트로포스트 서비스, 구글 익스프레스, 아마존 프라임 같은 배송서비스들이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우버나 지역 소매업체, 스타트업 회사들과 손잡으면서 상품이 배달되는 속도는 급속히 빨라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도어맨’ 같은 스타트업이, 시카고에서는 ‘위딜리버’라는 회사가 앱으로 주문받은 물건을 1~2시간 안에 고객의 집앞에 가져다놓는다.

 

속도전 불붙은 아시아

리서치인사이츠라는 컨설팅업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지역에서 2억명 이상이 지난해 온라인쇼핑으로 물건을 배달받았다. 이 지역 온라인상거래 규모는 3500억달러 규모였는데, 특히 당일배송 시장은 전년 대비 3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마존은 미국 시장에서 배달하는 물건의 20~25% 정도를 당일배송으로 처리한다. 애드로이트마켓리서치의 2018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라인 상거래 시장은 2조달러 규모였으며, 당일배송 시장은 인터넷·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면서 급속히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2017년 소비자들에게 간 물건의 51%가 당일 배달된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 배송시장은 A-1익스프레스, DHL그룹, UPS 같은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아마존, 알리바바, 이베이, 라쿠텐, 잘란도, 그루폰 등 소매업체들도 나서서 배송 속도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아시아의 속도전이 특히 눈에 띈다. 보고서는 세계 당일배송 소매 거래의 36%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쿠팡, 마켓컬리 같은 배송업체들이 생긴 뒤 국내에선 ‘새벽배송’이 장보기를 대체하고 있다. 2015년 100억원대였던 한국의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2018년 4000억원대로 커졌다는 닐슨코리아 분석도 있다.
 

아마존은 배송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미 택배코드 개편 등 밑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시장분석가 안드리아 쳉은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실은 글에서 “아마존이 원데이 쉬핑(one-day shipping·당일 선적)을 새로운 업계 기준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썼다. 속도를 내세운 아마존의 전략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없지는 않다. 월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 공룡들이 아마존을 따라잡으려 분투하고 있지만, 수익성 낮은 소매시장에서 성장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마존의 주력 사업분야는 데이터 판매와 광고부문 등이고, 배송속도를 높이는 것은 일단 시장점유율을 높여놓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동조건이 나빠지는 걸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마존의 이번 배송시간 단축 발표가 나온 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기즈모도는 “아마존의 계획은 노동자들에겐 지옥”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아마존과 계약한 배달업체 직원들은 이미 이전부터 추가수당 없이 연장근무를 하고 있고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존이 속도 드라이브를 걸면 그 부담을 결국 이들이 덮어쓰게 되리라는 것이다. 

 

무인배송, ‘택배의 미래’?
 

‘노동자’일 때와 ‘소비자’일 때, 사람들의 관점은 180도로 바뀐다.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2016년 미국, 중국, 독일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해 분석한 ‘택배, 최종 배송지의 미래’라는 보고서가 있다. 조사 결과 배송의 관건은 역시나 속도였다. 특히 중국의 소비자들 중 30% 이상이 배달 속도를 우선순위에 놓았다. 그런데 응답자의 국적에 상관없이 ‘속도’에 추가비용을 내겠다는 비중은 적었다. 더 빨리 물건을 받고 싶지만, 돈을 더 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 응답자들의 절반 가량이 추가요금을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들이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말한 비용은 1달러가 못 됐다. 더 빨리 배달해야만 하는 업체들로서는 다른 부분에서의 ‘착취’를 피할 수 없는 구조다. 

 

매킨지가 예상한 택배의 미래 (자료: 2016년 ‘택배, 최종 배송지의 미래’ 보고서)


 

혼잡한 도심에서 내 집 문앞까지,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물건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비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고서는 결국 자동화된 운송수단을 이용한 배달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운전 인력을 줄이는 중간 단계를 거친 뒤에 ‘사람 없는 택배’가 현실화될 수 있다. 사물함이 달린 자율주행차(AGVs)를 이용해 물건을 가져다놓는 ‘AGVs-로커’ 모델이나 드론 택배가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매킨지는 드론 택배가 2025년 미국에서만 25만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택배는 심야와 휴일 배달도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조건 이슈를 비껴갈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들었다. 택배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새벽배송이 이미 자리잡은 한국과는 한국과는 상관 없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드론 배달은 화물 크기가 제한돼 있고, 무엇보다 드론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와 직접 관련돼 있으니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크라우드소싱 배달’이라는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누군가가 물건을 가져다주길 원하면, 그 순간 그 곳에 다녀갈 수 있는 사람이 앱을 통해 요청을 받고 택배원이 돼주는 일종의 ‘공유배달’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드로이드’라 불리는 소형 무인카트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배송을 해줄 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것은 사람들이 ‘빨리빨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람의 속도는 뒤쳐지고 사람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기술발전과 욕망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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