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 알우데이드. 카타르 남동쪽, 걸프(페르시아만)의 바닷물이 내륙을 비집고 들어온 좁은 해협이다. 카타르 정부가 개발을 막고 있는 이 지역에선 물길 사이로 파도가 일고 철새들이 오간다. 바닷가에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주변엔 사막이 펼쳐져 있고 듄들이 솟아 있다.
북쪽 내륙에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다. 지난 9일 그곳에 미군 B52 전폭기가 착륙했다. ‘이란의 위협’에 대비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가 전폭기를 보냈고, 한동안 철수시켰던 패트리어트 시스템도 다시 배치하는 중이다. 이웃 아랍국들과 다투고 이란과는 미묘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카타르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세 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핵심에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이곳이 미군의 전략사령부이자 병참기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걸프전이 낳은 사막의 기지
수도 도하에서 30km, 사막 가운데에 있는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카타르 영토이지만 카타르만의 것이 아니다. 인구 260만명 중 자국민은 11%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체류 외국인’인 카타르는 병력이 1만1800명에 불과하다. 카타르 공군 사령부가 알우데이드에 있지만 사실상 기지의 주인은 미군이다.
기지가 생긴 계기는 1991년 미국과 아랍국들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걸프전이다. 인구가 적고 군사력이 거의 없는 카타르는 미국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탈냉전 이후 안보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전략컨설팅회사 글로벌시큐리티의 분석에 따르면 카타르의 전략은 ‘일단 기지를 지으면 미군이 온다’는 것이었고, 1996년 10억달러를 들여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기지를 짓는 것도 미군 공병부대가 했으니, 건설비는 거의 미군 계좌로 들어간 셈이다. 3년 뒤 당시 카타르 국왕이던 셰이크 하마드가 미국에 1만명 규모의 병력을 주둔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예상대로 미군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군기지는 국내 반발 때문에 골칫거리가 돼가던 차였다.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가 2001년 9·11 테러를 계획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도 사우디 내 미군기지에 대한 반감이었다. 실제로 미군기지와 미군 함정을 겨냥한 테러도 벌어졌다. 사우디에서의 미군 작전 자체에도 한계가 있었다. 사우디와의 군사협정은 미군이 ‘사우디 내 안보’를 위해서만 활동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미군도 2003년까지는 모두 철수했다. 반면 카타르와 미국이 1999년 맺은 군사협력협정에는 활동영역 제한이 없었다. 미군이 알우데이드의 무기와 병력을 가지고 카타르 밖에서도 군사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후 알우데이드는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가 됐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 공격 때 알우데이드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올랐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공군도 이 기지의 토네이도GR4 전투기들을 가지고 ‘헤릭 작전(아프가니스탄)’과 ‘텔릭 작전(이라크)’을 벌였다. 호주군의 F/A-18 호넷 전투기와 허큘리스 수송기도 알우데이드를 기지로 썼다. 영국의 주력 전투기들은 2009년 모두 철수했지만 여전히 영국 공군은 알우데이드의 시설을 쓰고 있다. 2016년 이후로는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에 다시 이 기지가 동원됐다. 지난해 시리아에 미사일을 퍼부은 미군 B-1B 폭격기도 알우데이드에서 출발했다.
현재 걸프에 주둔 중인 미군은 약 4만명이다. 미군 제5함대가 있는 바레인과 쿠웨이트에 약 2만8000명, 카타르에 1만~1만1000명이 있다. 이밖에 일부가 이라크 등에 주둔하고 있다.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 세 왕국은 연간 6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미군 주둔비용의 약 6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르 군대의 주요 무기는 80% 가까이가 프랑스제였지만 알우데이드의 성장과 함께 미국산 무기 비중이 늘었다. 카타르는 군사력을 현대화한다며 MIM-104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만 120억달러를 썼다. 알우데이드를 운영하는 것은 오만 공군과 전쟁물자비축(WRM) 계약을 맺은 미국 민간군사회사 다인코프다.
아랍 갈등과 카타르의 줄타기
3750m 길이 활주로를 갖춘 사막 가운데 공군기지는 비밀리에 운영됐다. 기지의 존재가 ‘공식화’된 것은 2002년 3월이다. 딕 체니 당시 미국 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기지를 방문했다. 1년 뒤 미국은 바그다드 공습을 시작했고, 사우디의 프린스술탄 공군기지에 있던 중부사령부 공군작전센터가 알우데이드로 옮겨왔다. 알우데이드는 임대료가 없다. 미군은 이 기지를 공짜로 쓴다. 설비를 고치고 늘리는 비용도 카타르가 낸다.
2017년 6월 사우디와 카타르의 갈등에 불이 붙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영공을 닫고 ‘카타르 보이콧’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카타르를 압박할 지렛대로 삼은 것이 알우데이드 기지였다. 그해 7월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사우디 편을 들면서 알우데이드의 미군을 빼낼 수 있다고 을러댔다. 트럼프는 “우리가 (카타르를)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돈까지 내주면서 우리를 부르는 나라가 10곳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카타르가 미군의 우산을 필요로 하듯, 미군도 카타르가 필요하다. 군사전문지 밀리터리타임스는 미국이 앤서니 지니 전 중부사령관을 특사로 보내 카타르 측에 ‘중동 전략에는 변화가 없음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알우데이드를 떠나기는커녕 시설을 늘리라고 요구했고, 지난해 1월 카타르 정부는 미군 주거시설 200채를 더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양국의 협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할리드 알아티야 카타르 국방장관은 렉스 틸러슨 당시 미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 등과 만난 뒤 알우데이드를 미군의 ‘영구적인 기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1월에는 미 국방부와 카타르가 알우데이드를 확장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도하에서 전략대화를 가진 마이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셰이크 모하메드 알타니 카타르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역내 안정과 양국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알우데이드는 미국 안보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양해각서는 미국과 카타르의 갈등이 봉합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카타르와 아랍국들과 껄끄러운 사이다. 막대한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미래 국가’를 만들려 하는 카타르는 산유량 한계에 부딪친 사우디나 오만 같은 이웃 군주국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늘 손가락질하지만, 미국 전문가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중동 정치·경제·사회의 최대 위험요인은 낙후된 전제왕정국가 사우디다. 카타르의 ‘젊은 왕실’은 아랍 형제들뿐 아니라 역내 모든 파트너들과 적당한 관계를 맺으면서 생존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소국 카타르 입장에선 특히 바다 건너 이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카타르와 이란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을 공동소유하고 있다. 면적 9만7000㎢, 걸프의 거대한 천연가스전 가운데 노스필드는 카타르가, 사우스파르스는 이란이 개발한다. 이 가스전 때문에라도 두 나라는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카타르는 기술력이 떨어지는 이란의 천연가스 추출을 돕고 있으며, 이란을 맹비난하는 아랍의 ‘험한 입’에 동참한 적이 없다. 카타르와 갈등이 극심했을 때 아랍국들은 카타르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돈을 댄다고 비난했다. 이란은 아랍국들의 카타르 보이콧을 비판하면서 “대화로 풀라”며 도하의 우방 편을 들었다.
호르무즈 위기가 폭발하면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기지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란 혁명과 옛소련의 아프간 점령 뒤부터다. 1980년 1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카터 독트린’을 계기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알우데이드는 걸프전을 계기로 만들어졌지만 애당초 이 기지가 겨냥한 것은 이란이었다. 2000년 4월 윌리엄 코언 당시 미 국방장관은 카타르를 방문해 알우데이드의 기능을 논의하면서 ‘미군 항공모함이 걸프에 있지 않을 때 군사적 위기가 벌어지면’ 육상에서 당장 전투기가 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미국이 당시 상정한 위협은 이란이었다.
걸프에서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가리켜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의 체크포인트”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바다를 통해 옮겨지는 원유의 3분의1이 이곳을 통과한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래로 호르무즈는 미국과 이란 간 대치의 무대가 돼왔다.
한동안 잠잠했던 호르무즈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 뒤 다시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은 이란이 긴장을 높이는 도발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고, 이란도 지난 3월 해상훈련 등 무력시위를 늘렸다. 지난 4월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국제적인 수로관리 규칙을 (미국이) 부정한다면 해협을 닫겠다”고 했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양국 고위 인사들의 설전이 벌어졌다. 미군 항공모함이 걸프에 배치되더니 전투기들이 알우데이드로 날아갔다.
호르무즈에서 실제 충돌이 벌어진 것은 이란-이라크전 때였다. 1988년 4월 미군 프리깃함이 이란 어뢰에 부서지자 미군이 이란 함정들을 침몰시켰다. 그 뒤로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었다. 2016년 1월 미 해군 함정이 이란 영해의 파르시 섬에 접근했다가 미군 10명이 억류됐다. 그때만 해도 관계가 좋았기에 존 케리 당시 미 국방장관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 긴급대화에 나섰고 미군들은 하루만에 석방됐다.
다시 두 나라가 부딪친다 해도 극히 제한된 군사행동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싱크탱크인 크라이시스그룹은 군사전문가를 인용해 “이란의 해군력은 미국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므로 ‘바다에서의 게릴라전’처럼 벌어질 것”이라고 봤다. 미국도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할 생각은 없으며, 항모 배치 등을 통해서 동맹국들에게 ‘에너지 흐름과 역내 안전을 보장할 의지와 힘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카타르 등 곳곳에서 대리전을 벌여온 미국과 이란이 직접 부딪친다면 역내에 미칠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몇년 전만 해도 케리-자리프 대화와 같은 고위급 채널이 열려 있었고 양국 간에 핵협상을 하면서 쌓아온 신뢰가 있었지만 트럼프 집권 뒤 모두 무너졌다.
<기지국가>를 쓴 미국 학자 데이비드 바인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장래에 일으킬지도 모르는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군 기지를 세우는 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시킬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고 말한다. 기지가 오히려 우려했던 그 위협을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는 알우데이드에도 적용된다.
항모와 전투기로 위협하는 미국, 내부에서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이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카타르. 폭격기들이 알우데이드에서 이란을 향해 날아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중동은 또 어떤 아수라장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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