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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상]라프토와 김대중, 그리고 이명박

토롤프 라프토(Thorolf Rafto). 노르웨이 베르겐 경제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사람이다. 라프토가 인권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공산정권 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1968년 ‘프라하의 봄’ 때였다. 라프토는 체코 개혁파들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동유럽 민주화 전반으로 관심과 활동을 넓혀갔다. 1973년에는 소련의 오데사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소련의 국내정치를 비판하는 칼럼을 이탈리아 신문에 실었다. 1979년 라프토는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했지만 공산정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심지어 공안요원들이 라프토를 붙잡아 구타하기까지 했다. 라프토는 1986년 6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시..

브라이언 그린, '멀티유니버스'

멀티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박병철 옮김. 김영사 '엘러건트 유니버스'하고 '우주의 구조'는 매우매우 어렵고 뭔소린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멋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멀티유니버스는... 브라이언 그린의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목의 책에 끌리진 않았을 것 같다. 원제는 이고, 한국판 제목이 다중우주를 내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한국판 제목이 더 나은 듯하다. 오래 전에 사뒀던 책이 책장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이사해서 책장을 정리하는 도중에 발견되어 뒤늦게 읽었다. 숨겨진 실체라니. 뒷부분에서 저자는 그 '실체'의 하나가 수학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수학에 문외한인데다 워낙 어려운 내용을 뭉뚱그려 '의미는 이런 거야~' 식으로 설명해놨기 때문에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전작들이 끈이론을..

토머스 프리드먼, '늦어서 고마워'

오랜만에 읽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내가 오랜만에 읽은 게 아니고 이 아저씨가 오랜만에 내놓은 책이겠지, 아마도. 프리드먼의 책은 를 비롯해 경도와 태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뜨겁고 평평한~, 세계는 평평하다 등등 전부 읽었다. 만델바움과 함께 낸 하나만 빼고. 프리드먼의 책을 찾아 읽기는 하지만 언제나 별로라고 생각했다. 말투가 싫어... 그런데 이번 책은 좀 달랐다. 일단 재미는 있었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계, 너무나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를 견지하면서 우리 모두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프리드먼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대기계(기술의 변화), 대자연(기후변화), 그리고 무어의 법칙(변화의 속도를 곱배기로 만드는)같은 ..

딸기네 책방 2017.10.12

[구정은의 세상]김성주, 김광석, 가족

"결혼은 1년에서 350~360일은 정말 행복한데, 나머지 열흘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명절, 날카로운 말끝이 가슴에 닿아 생채기를 냈다. 가족을 설득하고 화내고 싸우는 일이 지겨워진 우리 부부는 왜 결혼이란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지 후회가 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몇 번 반복하면 이 짓이 익숙해질까." 지인은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올렸다. 결혼과 더불어 생기는 가족에 대한 고민들. 추석이 낀 달에는 한방병원에 찾아가 ‘화병’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연중 가장 많고, 그런 이들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4배라는 언론 보도도 눈에 띄었다. 여느 해보다 길었던 추석 연휴는 지나갔다. 가족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명절은 끝났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을 다시 곱씹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방송..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A History of Modern Africa: 1800 to the Present리처드 J. 리드. 이석호 옮김. 삼천리 아프리카의 지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뒤 19세기 이후 주요 지역들의 역사를 훑는 책이다. 두께가 상당하다. 지역과 테마가 교차하게 돼 있어서 좀 어수선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거대한 대륙 전반을 다루는 것이니... 서방의 대륙 침략과 땅 나눠먹기가 진행되는 사이 아프리카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띈다. 어느 식민지에서나 비슷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프리카에서도 일부는 열강에 저항했고, 일부(혹은 대다수)는 그저 희생됐거나 협력했거나 열강의 움직임 속에서 발 디딜 터를 잡기 위해 애썼다. 협력하면서도 밀고당기기를 했고, 얻어낼 것을 얻어..

딸기네 책방 2017.10.08

아픔이 길이 되려면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책 (동아시아)을 읽었다. 이미 김 교수의 인터뷰를 읽으며 감동을 받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말 너무나 좋다. 아프고 슬프지만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22쪽) 저자는 사회의 건강이 개인의 몸에 새겨진다고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역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폴 파머를 비롯한 외국 학자들의 책을 보면서, 국..

딸기네 책방 2017.10.08

길 가다가 변을 당할 확률이 높은 나라들

보행자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관련된 통계를 찾느라 OECD 데이타 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저기 나와 있는 나라별 숫자는 '길 가다 변을 당할 확률'이랄까, 그런 걸 일종의 지수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OECD의 설명을 빌면 길에서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그 자리에서 숨지거나 혹은 사고로 30일 이내에 숨지는 사람 숫자와 건수, 주민 수와 교통수단 수를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길에서 자폭테러를 당할 경우' 같은 것들도 모두 반영한 수치라고. 수치들을 들여다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띈다. 조지아는 독립한 뒤에 계속 거리 상황이 안 좋아졌구나. 러시아는 늘 나빴고 지금도 나쁘구나. 그나마 나아진 것이 저 정도. 인도는 차량이 늘면서 갈수록 악화. 한국은 국가의 경제수준에 비해 꾸준히 -_-..

중간착취자의 나라

중간착취자의 나라이한. 미지북스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아니, 따지고 들면 전 세계의 모든 문제는 이리로 귀결된다 해도 될 것 같다. 노동력이 값싼 물건이 되고, 더불어 일을 하는 사람도 값싼 상품이 돼버린. 이 책의 저자는 변호사다. 책은 비정규직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효과,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사례집이나 현장과 밀착된 연구서라기보다는, 뭐랄까, 비정규직 개념과 정의를 중심으로 원리원칙을 다지고 드는 학술서같은 느낌. 프롤로그는 인력관리 아웃소싱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의 인터뷰다. 도급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급 금액, 기간, 인원, 결원율 한계죠. 이를테면 몇 억으로 도급 금액을 줄 테니 이 사업장에..

딸기네 책방 2017.09.25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나는 열 살 때까지 북부 독일의 숲으로 피난을 가서 6년 동안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진 것은 아주 적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를 애완용으로 키웠고 딱정벌레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 이제는 그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생생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난 이미 그런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후 나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덫을 놓는 법을 배웠다. 메인에서 만난 스승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게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 오두막은 벌써 지어놓은 상태다.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7쪽) 얼마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글. "상암동 난지공원 북쪽에 요런 게 몰래 지어져 숨어있다. 동네 주민인 우리 회사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도서는 거의 없어 주민들을 외면한 도서관이라는데." 어떤 곳인가, 그냥 심심해서 검색해봄. 웹사이트의 이사장 인사말은 이렇게 돼 있다. "2017년은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으로 일평생을 조국 근대화와 굳건한 안보 구축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의의 율법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통해 이 나라 국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철 같은 의지의 국민으로 환골탈태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