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시리아 최고 부자라는 사메르 포즈(44)를 그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아만홀딩그룹을 이끄는 그를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 신흥재벌들에 비유해 ‘시리안 올리가르흐’라 칭한다.
2011년 내전이 터지자 시리아 정부군은 다마스쿠스, 알레포의 주거지역과 시장과 유서 깊은 옛 도심에 드럼통 폭탄과 미사일을 퍼부었다. 무너진 집들을 남기고 시민들은 피란길에 올랐다. 주민이 떠난 폐허에서 포즈 같은 사람들은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의 포시즌스호텔은 사우디아라비아 갑부인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가 갖고 있었는데, 알왈리드 왕자가 왕실 권력투쟁에서 밀려 2017년 구속됐다. 그 후 이 호텔도 포즈가 사들였다.
‘시리안 올리가르흐’
변호사 출신 사업가인 포즈는 지난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돈을 벌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애국심을 들먹이면서 그는 땅을 사들이고 돈을 번다. 그 과정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도움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이, 이달 11일에는 미국이 포즈를 경제 제재 대상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제재를 받든 안 받든 포즈는 내전으로 돈을 벌었고 지금은 ‘재건사업’을 하고 있다.
포즈는 런던에서 웹사이트와 인터넷 방송을 만들어 ‘재건 펀딩’을 한다. 카리브해의 조세회피처 세인트키츠앤네비스에 15만달러를 투자하고 그 섬나라 여권도 얻었다. 돈 앞에선 복잡한 내전 구도도 아무 의미 없다. 터키 매체 TRT월드 등에 따르면 포즈는 아사드 정권에만 줄을 댄 것이 아니라 아사드의 적이었던 극단주의 무장세력과도 곡물 거래를 했다. 아사드 정권과 싸운 쿠르드계 민병대 YPG에게도 식량을 팔았다.
세계은행은 8년간의 전쟁으로 시리아 전체 주택의 3분의 1이 무너지거나 파손된 것으로 본다. 내전 전에 2100만명이던 인구는 급감했다. 해외로 떠나 난민이 된 사람이 560만명에 이른다. 660만명은 집을 떠나 나라 곳곳에 흩어진 국내 유민이 됐다.
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한 싸움으로 내전이 시작됐지만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세력들이 끼어들고 쿠르드계 민병대가 가세하면서 전선이 뒤엉켰다. 미국과 러시아의 폭격에 터키, 이란, 프랑스, 아랍국들까지 끼어들었다. 최대 피해자는 시민들이다. IS 세력은 거의 사그라들었지만 오랜 내전에도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기는커녕 ‘다시 아사드’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아사드에 여전히 맞서고 있는 세력은 대체로 비아랍계 소수민족들이나 외국 지원을 받는 집단들이다. 민간인 11만명 이상이 숨진 대가가 이것이라면 참혹하다.
난민 집 빼앗아 부동산 개발?
“러시아와 이란에 감사한다. 터키와 미국은 떠나라.” 지난 18일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교장관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전이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됐다.
전황은 확실히 아사드 쪽으로 기울었다. 시리아 내전을 분석하는 수리야크맵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시리아 국토 18만5000㎢ 중 62.17%는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홈스, 하마, 라타키아, 데이르에조르 같은 도시들이 정부 통제를 받고 있다. 쿠르드가 주축이 되고 아르메니아계, 체첸계 등이 가세한 시리아민주군(SDF)은 27.7%를, 주로 터키의 지원을 받는 또 다른 반정부군은 9.26%를 차지하고 있다. IS 손에 남아 있는 곳은 1.15%뿐이다.
판세가 거의 정해지자 재건 논의가 고개를 든다.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에 4000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시리아 정부 예산은 겨우 90억달러이고 재건사업에 책정된 돈은 달랑 10억달러다. 시리아 내 모든 은행의 자산을 합쳐도 1조7000억파운드, 약 35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자란 재건비용은 어디서 메울까. 정부가 탐내는 것은 피란민들의 재산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2015년 5월 주지사와 시장들이 투자회사를 만들 수 있게 한 ‘포고령 19’를 발표했다. 이듬해 1월에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공자산에 민간기업들이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법안 10’이다. 이 법안은 거주자가 소유를 증명하지 못하는 부동산을 정부가 몰수할 수 있게 했다. 난민들이 남기고 간 집과 땅을 정부가 갖겠다는 것이다. 난민들 재산을 빼앗아 친아사드 인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조치가 발표되자 다마스쿠스 주지사는 새 도시를 개발할 투자회사를 만들고 사장을 겸임하기 시작했다. 법안 10에 따라 발표된 개발계획 중 가장 큰 것은 다마스쿠스 시내를 재건하는 ‘마로타시티 프로젝트’인데, 포즈 같은 개발업자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 게 뻔하다.
재건 비즈니스, ‘대리전 2라운드’
내부에서 조달하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한 아사드 정부는 결국 외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두바이의 저널리스트 마크 타운센드는 지난달 TRT월드 기고에서 “시리아를 둘러싼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진단했다. 내전에 개입한 나라들이 재건 비즈니스를 놓고 또 한 차례 대리전을 벌일 것이라는 얘기다.
러시아는 지중해에 면한 시리아의 타르투스 항구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러시아가 기지 땅을 빌려 쓰는 것이지만 형식은 ‘투자’다. 아랍 매체 알모니터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 스트로이트란스가스는 지난 4월 5억달러를 투자하는 대가로 49년간 이 항구를 운영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다. 홈스 지역의 전력 공급과 다마스쿠스 공항철도 건설도 맡기로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시리아 정부와 에너지 채굴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에너지 부문에서 당장 수익을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시리아 석유매장량 25억배럴(추정치) 중 95%는 SDF가 장악한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최근 시리아 정부와 다마스쿠스에 주택 20만채를 새로 짓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연간 60억달러가량을 시리아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혁명수비대는 이란 최대의 경제집단이기도 하다. 유라시아뉴스는 “이들이 중국 기업들과 손잡고 시리아 통신·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같은 걸프 국가들은 시리아 내전 기간에 반정부군을 지원했다. 그런데 최근엔 은근슬쩍 아사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올초 아부다비에서는 ‘UAE-시리아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으로 민간기업들 포럼이 열렸다. 사우디와 UAE는 다마스쿠스의 대사관도 재개관했다. 이들은 시리아에서 경제적 이익을 거두기보다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쳐다보는 아사드
지난해 1월 뉴스위크는 “아사드의 시리아 장악, 최대 승자는 중국”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 언론에 늘 등장하는 뻔한 헤드라인이지만, 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무알렘 시리아 외교장관이 최근 베이징 방문에서 재건 지원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내전이 시작된 이래로 무알렘 장관은 2012년과 2015년, 그리고 이번까지 3차례 중국을 찾았다. 아사드 정권과 싸우는 이슬람 무장세력 중에는 중국이 미워하는 위구르 단체 ‘투르키스탄 이슬람당’ 조직원도 있다. 시리아는 중국을 향해 ‘공동의 적’을 강조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아사드 정권과 공식적으로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4월에 70여개국 대표들이 참여한 시리아 재건회의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고, 같은 해에 ‘시리아 재건 무역박람회’를 열었다. 지난해와 올해 중국이 시리아에 투자한 돈은 20억달러 정도이지만 지난해 7월 ‘중국-아랍 협력포럼’을 개최하면서 향후 23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리아 옆에 있는 레바논의 항구도시 트리폴리가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계획 노선 위에 있는 이상, 시리아로도 돈이 들어갈 것은 확실하다. 중국은 시리아 홈스와 트리폴리를 잇는 철도를 짓는 계획을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중국 국영석유회사 CNPC는 시리아의 양대 석유회사인 SPC, 알푸라트석유에 투자를 했다. 무알렘 장관은 이번 방중에서 지중해 항구도시 라타키아에 특별무역지대를 만드는 구상을 논의했다.
인도도 시리아를 기웃거린다. 인도는 내전 발발 전인 2009년에 시리아 인프라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지난달 인도 정부가 시리아에 사절단을 보내 협력계약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내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인도적 재앙도 계속되는데, 시리아를 둘러싼 논의는 부동산과 석유로 이동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식처와 의약품이다. 하지만 그들을 맞는 것은 집과 의사들이 아닌 포즈 같은 상어들과 외국 자본이 짓고 있는 빌딩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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